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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메이크업_나타샤 채(Natasha Che)
▲ 모델 김가람 헤어/메이크업_나타샤 채(Natasha Che)
ⓒ 마이클 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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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난 여러 가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난 학자이며, 사회 평론가, 작가, 또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어떠한 이유인지 사람들은 이러한 역할들이 서로 배타적, 아니 아예 모순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 모든 역할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각각의 분야에서 사회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의견을 표출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예술적인 작품을 창조해내곤 한다. 에릭 라슨 같은 학자는 1893년 시카고 국제 무역 박람회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베스트셀러 <데블 인 더 화이트 시티>를 써서 역사와 소설이 완벽하게 접목된 새로운 장르의 시대를 열었다. 사진작가인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논란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사진작가도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고 예술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요즘 나는 사진작가로서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아무래도 메시지나 사연이 담긴 사진과 테마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이것이 패션을 더욱 재미있고 매력적이게 만들어준다. 피사체를 찍는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고, 또 기록 사진과는 달리 패션 사진과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 안의 모든 요소를 작가가 결정하고 조정할 수 있다. 어떠한 테마를 택하든, 스타일과 패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선택한 사진은 운과 계획이 합쳐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사진은 최근 들어 자주 같이 작업하는 새로운 모델 김가람이다. 그녀는 내가 가르치는 사진 교실의 모델이기도 하다. 비록 수업일지라도 우리는 진짜 잡지 사진촬영 못지않게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갖은 창의성을 발휘했다. 내가 제시한 '근대 게이샤'라는 아이디어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한 명이 흥미를 보였고, 그녀 나름대로 이 테마에 대한 해석을 내어놓았다.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에 옮기는 데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창조적인 과정을 더욱 역동적이고 흥미롭게 만든다.

우리는 김가람의 창백한 얼굴에 검정 아이라이너가 아닌 빨강 아이라이너를 하기로 했다. 그 모습은 근대 게이샤라는 아이디어와 꽤나 잘 어울렸다. 거기에 귀걸이를 하고 스튜디오 부엌에서 찾아낸 값비싼 나무젓가락 한 쌍을 더했더니 매우 흥미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사진 찍기에 훌륭했다.

또한 모델에게 강렬하고 직접 내리쬐는 조명을 비춰서 그녀의 얼굴을 더욱 강조하고 싶었다. 그녀를 쭈그려 앉히고 허망한 표정을 주문했다. 꽤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화된 사진을 보니 이 사진이 흑백이었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흑백 사진에서는 그녀의 얼굴색이 사라질 것이고, 붉은색은 검은색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흑백 필름 같은 느낌으로 1950년대를 연상시키는 사진

흑백으로 변모한 이 컷은(흑백으로 바꾸는 과정은 그저 사진에서 색을 없애는 간단한 과정이 절대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역사 속 한 장면을 포착한 사진처럼 보였다. 거기에 필름 그레인과 선명도 강조 필터, 콘트라스트 필터를 더했다. 내가 원한 이미지는 그 옛날 코닥의 흑백 필름 같은 느낌으로 1950년대쯤을 연상시키는 사진이었다.

아마 그녀는 미군들을 위한 클럽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용산 미군 부대 라운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50년대나 1960년대 사이에 한국에 주둔했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인물 사진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성인이 된 그들의 손자들이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20대에 참전한 한국전 이후로 빛을 보지 못한 귀중한 사진을 다락에서 발견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나는 이러한 사진들과 그 뒤에 숨어 있는 사연들이 너무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어떤 한국 친구들은 이 모델이나 테마가 한국 역사에서 나온 것치고는 너무 일본 냄새가 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오키나와와 서울을 오가던 미군들에게는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여주인이 운영하는 바에서는 그녀를 '마마상'이라고 부른다. 또한, 많은 웨이트리스나 호스티스들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발음하기 쉽게 '유미'나 '숙희'라는 이름으로 종종 불렸다.

나에게는 이러한 이미지를 재창조해내는 작업이 오래된 상자 밑바닥에서 옛날 사진을 찾아내는 것 다음으로 좋다. 물론 전자가 후자만큼 만족감을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시각적으로 과거와 소통을 꾀하는 작업은 여전히 재미있다. 지나치게 자주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 근대사는 참 재미있다.

역사학자로서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옛날 사진들을 찾는다면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사진작가로서 나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패션 사진작가로서 나는 계속해서 흥미로운 사회의 여러 가지 단면들을 패션과 스타일을 통해 보여줄 것이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걸친 나의 역할이 합쳐져서 하나의 사진 안에 담기고 있다.

(*번역 - 이은별)

덧붙이는 글 | 마이클 허트 기자는 1994년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처음 와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한국에 다시 왔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에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셜 네트워크 매거진'Yahae!를 준비하고 있다.



태그:#사진,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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