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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지스함이 SM-3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 ABMD 미국 이지스함이 SM-3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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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일본 오키나와와 미국 괌까지도 방어하는데 한국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신동아 6월호>에 따르면, "괌이나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이 발사되는 경우에도 한국군이 이를 대신 요격해주는 콘셉트가 여러 차례 도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개념은 한미간의 국방연구기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와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등 청와대가 운영해온 안보전략 회의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적어도 개념 수준에서는 한미간의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이 이미 한반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고 있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동안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가 미국 MD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온 MB 정부와 군당국의 해명을 더더욱 신뢰할 수 없게 한다.

1단계와 2단계 찍고 3단계로?

<신동아> 보도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한미간의 MD 논의가 1,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징후가 농후해 보인다는 점에 있다. 최근 MD 문제가 다시 공론화된 것은 미국 국방부 고위 관료들이 4월 13일 한미간의 MD 협력이 가속화 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4월 15일 한미간의 MD 약정서는 '공동연구'를 위한 것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국(MDA)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사이에 작년 9월에 체결된 것이라며 "현재로선 국방부 산하기관 연구로 시작했지만 연구 결과가 나오면 국방 당국 차원의 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간에 약정이 체결된 지 7개월 동안 '쉬쉬' 하다가, 미국 정부가 먼저 말하자 이를 확인해준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동아>에 따르면 이미 한미 국방연구기관 사이의 공동연구는 2009년 여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KIDA와 미국의 국방분석연구소(IDA)가 이미 기본적인 개념 검토를 마치고 작년 9월부터는 "KIDA-MDA 공동연구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MDA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MD 사업을 총괄하는 펜타곤 산하의 주무부처이다. KIDA와 IDA 사이의 공동연구가 한미간 MD 협력의 1단계라면, KIDA-MDA는 그 다음 단계가 되는 셈이다.

군당국간의 논의도 구체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동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MD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올해 3월 하와이에서 열린 확장억제정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오는 10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위협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구체적인 수단을 함께 가동해보는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을 처음 실시한다는 합의"도 이뤄졌다. 이는 이미 당국간 협의를 거쳐 합동 연습이라는 3단계의 MD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평택을 주목하는 이유 

MB 정부 일각에서 오키나와와 괌까지 한미간 MD를 넓히자고 하는 이유는 이들 지역에 있는 미군 기지가 한반도 전쟁 발발시 중요한 전초기지이자 후방기지라는 데 있다. 미국으로부터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미 MD를 오키나와와 괌까지 확대할 경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고 그 파장도 만만치 않게 된다.

우선 MD 시스템부터 달라진다. 북한 미사일 요격을 위한 '한국형 MD'는 한국군의 패트리어트 PAC-2와 주한미군의 PAC-3가 핵심이고, 이는 주로 북한의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을 겨냥한 '하층 방어' 시스템이다. 그런데 미사일 방어 범위를 오키나와와 괌으로까지 확대하기 위해서는 '상층 방어'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패트리어트 미사일보다 요격 고도가 높고 범위도 넓은 최종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 이지스함에 스탠다드 미사일-3(SM-3)을 장착하는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 그리고 적의 미사일 발사 탐지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는 X-밴드 레이더 및 최첨단 첩보 위성, 전투지휘관리통신본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한국이 이들 시스템을 미국으로부터 '구매'해 배치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엄청난 비용과 외교적 파장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 영토·영해에 이들 시스템을 '배치'할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과 펜타곤은 X-밴드 레이더, THAAD의 배치 지역으로 한국을 유력하게 검토해왔고, SM-3를 장착한 이지스함도 한국을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있다.

평택과 제주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동북아 군사력의 핵심기지로 삼기 위해 확장공사를 벌이고 있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와 '오산 공군기지'에는 이미 PAC-3와 관련 레이더 및 본부가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평택기지의 패트리어트 시스템으로는 오키나와나 괌으로 날라가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THAAD 및 X-밴드 레이더,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가 지상배치용으로 개량하려는 SM-3 등이 구비되어야 요격을 시도해볼 수 있다. 앞으로 평택에 이들 시스템이 배치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까닭이다.

제주, '평화의 섬'에서 '신냉전의 섬'으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가장 선호하고 있는 MD가 바로 ABMD라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부시 행정부 때 전략적 중심 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면서 해군력의 60%를 이 지역에 집중시키기로 했다. 뒤를 이은 오바마 행정부도 이러한 방침을 거듭 확인하면서 이지스함을 MD용으로 대폭 개량하고 있다. 이미 작년까지 20척의 이지스함에 SM-3 미사일을 장착했고 그 수를 앞으로도 계속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미국이 이지스함을 비롯한 해군력을 이 지역에 집중시키고 있다면 추가적인 해군기지의 필요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지도를 펼쳐보면 알 수 있듯이, 제주도는 오키나와와 괌으로 날라가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MB 정부는 한편으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강정마을을 파헤치면서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데 한국의 기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최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를 미국 해군 및 MD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면,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아니라 '신냉전의 섬'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씻을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MD 늪'에서 빠져나와야

오늘날 유럽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수그러들 것으로 보였던 미국-러시아 간의 '신냉전' 논란은 최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럽 MD' 구축을 강행하면서 재점화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유럽 MD'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유럽을 겨냥한 미사일 재배치, 미국과의 핵군축 협정 탈퇴 등 반격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MD 논란이 미국·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라면, 냉전이 끝나지 않은 동북아에서는 더욱 복잡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MD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를 크게 자극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 평택과 군산 등 한국의 서남부에 미국 패트리어트 시스템이 배치되자 여러 차례에 걸쳐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하층 방어'에 대한 반발이 이 정도라면, 한미간의 MD 협력이 오키나와와 괌 방어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될 경우 중국의 반발과 대응 수위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한국이 미국 MD에 편입되면, 한중관계는 완전히 물 건너갈 것이라는 우려 섞인 경고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 '전략동맹'을 추구하면서 MD에도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MB 정부 임기 내에 한미간의 MD 협력 수준을 대폭적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만약 MB 정부 임기 내에 오키나와와 괌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 MD에 합의를 이룬다면, 차기 정부가 이를 뒤집기도 힘들어진다.

그리고 막대한 예산 낭비와 군비경쟁, 그리고 이로 인한 안보 불안을 초래할 MD 참여에 따른 고통은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국민과 국회가 더 늦기 전에 MB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아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태그:#MD, #제주해군기지, #평택,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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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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