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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미안해요. 엄마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어요."

1980년 5월 하순, 광주에서의 유혈사태가 한창이던 이맘때였다. 한 선배로부터 서울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에 호응하는 시위를 하자는 제안을 받은 나는 후배들에게 전화해서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그러자 후배들마다 엄마 걱정시켜드릴 수 없다거나 이젠 나서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 자신도 광주에서의 참혹한 죽음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의 반응에 별다른 서운함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나만이라도 나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몇몇 선배들과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며 시위를 선동하다가 구속되어 평생 기억하기 싫은 모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궁금하다. 군부쿠데타 세력에 의한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던 그 해 5월 18일 아침,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두 잠잠해졌는데 광주 전남대 학생들은 무슨 용기로 총검을 꼽은 계엄군에게 맞서 투석을 하며 민주화투쟁에 불을 붙였을까? 나처럼 조국을 위한 의무감이 잠시 공포를 잊게 했을까? 본래 용감무쌍한 청년들이었을까?

세월이 30년이나 흘러, 우리가 몸소 겪었던 1980년대 민주화투쟁의 감동이 중동 여러 나라를 뒤흔드는 광경을 본다. 튀니지에서, 이집트에서, 리비아에서 불어오는 재스민 혁명의 바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옛 학생운동 내에서는 아랍은 고유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잘하고 있다거나 리비아의 가다피는 민중주의의 상징적인 지도자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는 사태들을 보면 독재가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는 말은 잘못된 평가였고 실제로는 무서워서 침묵했었다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가다피의 자국민에 대한 학살을 지켜보면 '모든 독재는 다 나쁘다'는 주장을 부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혹독하게 독재를 하는 부모가 나쁜 것처럼, 국민의 행복한 미래라는 명분을 내세워 독재하는 모든 권력은 '악'임에 분명해 보인다.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면 잘못된 것이다.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보는 여러 사람이 내게 북한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다. 북한이 진짜 잘 돌아가기 때문에 굶주리고 자유가 없어도 아무도 시위에 나서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너무나 철저한 독재를 하기 때문에 시위를 하지 않는가를 묻는 것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사이에는 북한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완벽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고 아마 요즘도 그렇게 믿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완벽한 민주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민주주의란 어떤 형식적으로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우는 과정 자체 혹은 그것을 보장하는 분위기 가 아닐까? 1970년대에도 1980년대에도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제도였지만 오늘의 민주주의 수준에 비해 훨씬 낮았던 것처럼,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국내와 국외여행의 자유가 없는 나라,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마음대로 볼 수 없는 나라, 다양한 사상으로 나뉜 정치정당들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 조국을 버리고 이민을 떠날 자유가 없는 나라,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조건에 하나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나라를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북한 권력이 항일독립운동가 출신들로 이뤄졌다거나, 노동자 농민을 위하려는 목적으로 나라를 만들었다거나 하는 것은 이제 와서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살인자도 개과천선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아무리 착했던 사람이라도 말년에 나쁜 짓을 하면 악인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당 주도하에 경제를 살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당독재 권력이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이야말로 이미 북한에서 실행해왔고 처절히 실패해온 방식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진정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배울 것은 정부 주도의 경제운영이 아니라, 이에 앞서 거주이전과 해외여행의 자유, 사적 소유의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외정보의 완전한 자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자유와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들이 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북한의 경제를 살리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내세우는 사회주의의 원론에 근거해 보더라도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의 장점 위에 더욱 발전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이지 봉건제로의 회귀가 아니다.

토지의 국유화, 기업의 국유화, 거주이전과 여행의 부자유, 출신성분에 따른 제한, 지도자의 신격화 같은 것들이야말로 봉건제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닌가? 냉소적으로 보자면 자칭 사회주의공화국인 북한은 실제로는 사회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봉건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유도하는가이다. 북한에 대한 평가가 같은 사람이라도 그 방식에서는 서로 많이 다른 것 같다. 민주파들은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차츰 개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보수파들은 더욱 궁지로 몰아 항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주민들을 자꾸 대외적으로 눈뜨게 만들어 스스로 민주적 권리를 찾도록 유도하자는 이들도 있는 반면, 북한 내부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31돌을 맞아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민주주의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남한이든 미국이든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이 민주화의 경험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주민들 스스로, 그것이 반드시 혁명적인 변화는 아닐지라도, 점진적이고 온건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북한의 민주화, 북한주민 스스로의 민주화투쟁이야말로 북한을 살리고 남한을 살리고 나아가 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정말 북한의 민주화가 가능할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엄마 때문에' 투쟁에 동참할 수 없다던 그 후배들은 얼마 후에 다들 두려움을 털어내고 일어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봉들이 되었다. 겁 많던 나보다 더 열심히, 용감하게 투쟁에 나섰다. 중동의 오늘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역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설사 잠시 멈추더라도 기어이 다시 굴러가고야 만다. 그것이 오늘의 인류를 만들어낸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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