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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질문] 서울에 사는 22살 직장인입니다. 상담실이 있다고 해서 용기내 메일 보내봅니다. 일단 제가 양성애자라는 걸 지난해에 알게 됐어요. 솔직히 아주 어렸을 때 성추행 비슷한 경험을 한 적도 여러번 있구요. 그거와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을 많이 사귀어 봤습니다. 하지만 모두 진심은 아니었고 그냥 사귀자고 하면 사귀고, 저나 남자들이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지는 등 그렇게 쉽게 쉽게 많이 만났어요.

중3 때 처음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아이에게 올인했지만 그 아인 절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받은 뒤 더더욱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다 고2 쯤 진심으로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났고 그게 두 번째로 제가 마음을 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헤어지게 됐고 그 때 남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 안 된다고, 그 어린나이인 고3 때 깨달았습니다. 밀고 당기기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어렸을 땐 무조건 밀거나 당기기만 해서 지치거나 질리거나 했죠. 솔직히 여자는 여우가 되는 게 맞는 것도 같고요. 시간이 지나 지금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제일 오래 만나고 있고 처음도, 지금도, 앞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지는 않습니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 것 같아요.

이젠 동성 얘기를 해볼게요. 여고 때 여자동생들 언니들이 되게 저를 좋아해줬고 동성애자인 동생 한 명도 저를 잠깐 좋아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아 여자도 여자를 좋아할 수 있구나, 어떻게 좋아하지? 같은 여자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가서 검색도 해보고 글도 많이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어렸을 때 나의 행동과 감정들, 친구를 정말 좋아했었던 것을 깊이 생각해 보니까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 왜? 이해 안 가'라는 생각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단지 여자일 뿐인 거야'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언니와 만났는데 그 언니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았고 제가 사귀자고 해서 사귀게 됐어요.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저는 2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고요. 언니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저를 만났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말하려고 했지만 사실을 알게 되면 날 떠날까봐, 날 버릴까봐, 날 싫어하게 될까봐 무섭고 두려워서 말을 못한 채 시간이 흐르다 언니가 사실을 알게 됐고 언니는 '너를 위한 방법이다'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저한테 화 한 번, 욕 한마디 안 하고 저를 위해서 헤어진거죠. 근데 저는 아직도 언니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습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서 잠깐 외로워 그런 걸 수 있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 2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언니한테 갈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지금도 적응 못하고 '자살하고 싶다' 이런 얘기하는데 그 아이한테 저까지 힘은 못 될 망정 헤어지자고 할 수도 없고 핑계는 핑계지만… 제가 지금 정말로 두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금 이 마음이 단지 욕심일까요? 이기적인 마음일까요? 정말 진심으로 두 사람이 좋아요. 이런 일은 없는 걸까요?

복잡하게 얽힌 사랑을 그린 영화 <클로저>
 복잡하게 얽힌 사랑을 그린 영화 <클로저>
ⓒ 마이크 니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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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가 어쩜 이렇게 묘하게 얽혔담? 삼각관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군요. 두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대가 부럽지는 않네요. 양쪽 다 불편한 상황이니까요. 한 사람은 군대 간 지 얼마 안 된 2년 사귄 남자친구 또 다른 사람은 그대에게 사랑을 알게 해준 언니. 둘 중 누구를 선택한다 해도 지금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에게나 상대들에게나 오래 남을 상처가 될 것 같네요. 어휴 갈 길이 태산.

과거 기억은 깨끗이 정리해서 관속에 집어 넣어야. 어렸을 때 성추행 당한 기억이 있다고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 때 마음의 문을 열고 남자에게 올인해서 두 번이나 사랑했는데 너무 가혹하게 차여 버렸고요. 그래서 남자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어지고 가까워지며 교감을 나누는 것에 서툴러져 버린 것 같네요. 결국 그대는 '역시 남녀 사랑은 밀당(밀고 당기기)이 돼야 해' '여자는 여우여야 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어요. 어쩌면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기준 삼아 그대만의 사랑의 행동규칙을 만들어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사귀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사랑에는 법칙이 없어요. 동성끼리도 밀당이 있을 수 있고요. 이성끼리도 밀당없이 한없이 사랑하기 바쁜 사람들도 있어요. 우선 그대 마음속의 긴장감을 푸세요. 안 좋은 과거 기억의 법칙에 맞추어 현재 사랑을 하게 되면 앞으로도 그런 아픔은 반복되고 그대의 마음은 더 다칠 거예요.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그대에게 나타난 환상속의 연인.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그대에게 '짜잔!'하고 나타난 그 언니가 당신의 마음을 흔들었군요. 계산할 필요 없고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좋은가 보네요. 그대에게 남자친구가 있음을 알았을 때 심한 말 한마디 없이 '쿨하게' 당신을 떠나준 그녀. 그런 그녀가 너무 그립고 군대있는 남자친구를 정리할 수도 있을 만큼 다시 만나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녀를 다시 사귀게 된다면 정녕 그 남친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나요? 혹시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은 아니고요?

인간에 대한 예의. 사람을 사랑하는 거 꼭 한 사람만 마음에 두라는 법 없고 사실 평생을 그렇게 살기도 힘들죠. 따라서 그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그대의 마음에서 내어놓기 싫으면 둘 다 간직하세요. 하지만 두 연인들에 대해서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요. 아무리 둘 다 좋다고 해도 실제로 피곤하게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잖아요? 지금 그들과 진지하게 한 번 대화해보세요. 대화 그리고 눈빛에서 진심은 느껴지거든요. 이번에 그들을 만날 때 말과 생각이 통하고 더 끌리는 사람을 선택하세요. 그리고 헤어져야 하는 사람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주세요. 더불어 내 아픔에만 귀 기울이지 말고 상대방의 심장에도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떻게 하면 우린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말이에요.

자신의 고민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여요. 세상에는 그냥 남들 사귀니까 사귀고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니까 자기들도 사랑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나이가 들면 공허해져요. 그게 사랑이었는지, 그렇다면 어떤 사랑이었는지, 그에게 나는 어떤 향기로 남을지 그런 거는 알지도 못하는 채 세월의 무게 때문에 사랑이라는 마음이 인생에서 더더욱 작아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대는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네요. 제 짧은 소견으로는 10년쯤 지나면 그대의 사랑사전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 응원할게요.

'레인보우 상담실' 윤솔지 상담가
 '레인보우 상담실' 윤솔지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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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솔지,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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