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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maest의 '동네 살리기 작전' 지도. 초록색으로 표시된 곳이 2004년에 시작된 1차 작전 지역, 오렌지색으로 표시된 곳이 2008년에 시작된 2차 작전 지역이다.
 Semaest의 '동네 살리기 작전' 지도. 초록색으로 표시된 곳이 2004년에 시작된 1차 작전 지역, 오렌지색으로 표시된 곳이 2008년에 시작된 2차 작전 지역이다.
ⓒ www.semaest.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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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를 거닐다 보면 일부 지역에 특정 상가가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 동쪽의 11구에는 원단 도매상가가 잔뜩 몰려 있고 12구에는 컴퓨터 상가가 몰려 있다.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오랜 세월 함께해온 빵집이나 정육점이 어느 날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이렇게 특정한 상점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는 것을 무방비 상태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파리지앵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구청과 파리 시에 고충을 토로했고, 문제점을 인식한 파리 시가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파리 시가 찾아낸 해결책은 '동네 살리기 작전(operation Vital Quartier)'이다. 2004년 파리 시는 이 정책을 도시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세마에스트(SEMAEST, Societe d'Economie Mixte d'Amenagement de l'Est de Paris, 파리 동부 도시계획 합동 경제 협회)'에 위탁했다.

파리 시는 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5750만 유로의 예산을 세마에스트에 이자 없이 빌려주었다. 세마에스트는 우선 센강 오른쪽(파리 북쪽)의 특정 상가가 몰려 있는 지역 및 상가 철수 지역 6곳을 선정하고, 지역상권 다양화를 위해 필요한 상가가 무엇인지 사전 조사에 착수했다.

세마에스트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가 리스트를 작성하고 나면, 파리 시가 빌려준 예산으로 비어 있거나 팔기 위해 내놓은 상가들을 구입한 후 내부 공사 수리를 한다. 그런 다음 광고를 내어 상인들을 모집하는데, 빵집이나 정육점 등 특별한 시설이 필요한 상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빵집과 정육점을 운영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경쟁하게 한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여러 서류를 받고, 여러 차례 서류 심사를 거친 후에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다.

소상인을 살리기 위한 파리의 전격 '동네 살리기 작전'

기자의 전화 인터뷰에 응해준 세마에스트 디렉터 알베르티니(Albertini)에 의하면,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들의 자질과 골목상권에 기여할 것인지 등이라고 한다. 많은 자본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선택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 분야에서 쌓은 오랜 경험과 능력만 인정되면 자본이 없어도 선발될 수 있다.

다른 일반상가를 개업할 때는 일종의 권리금과 은행 보증금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선발된 후보들은 그것들을 면제 받는다. 또한 영업 활성화를 위해 '첫 3개월 임대료 무료'라는 커다란 혜택을 누린다. 유일하게 부담해야 하는 것이 3개월 임대료에 해당하는 보증금인데, 일반 상가의 경우 1년치의 임대료 보증을 요구하는 현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한 조건이다.

이렇게 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으며 상가를 여는 상인들은 처음 1~2년 동안 세마에스트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업 후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임대료를 제때에 내기 어려우면 1년 후에 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 등이다.

2007년 10월 파리 2구 생 드니(ST-Denis) 거리에 구두 수선 가게를 낸 미카엘(Michael)씨는 세마에스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가게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생 드니 거리는 섹스 숍이 우글거리던 곳이었는데, 파리 시의 '동네 살리기 작전'으로 골목상권을 형성한 가게들이 서서히 섹스 숍을 대체하고 있다.

 생 드니 거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섹스 숍.
 생 드니 거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섹스 숍.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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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구두를 수리하고 만든 경험이 있는 미카엘씨는 꿈꿔오던 구두 제작소를 내었다가 망해 돈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나앉았었다고 한다. 그 후 미카엘씨는 세마에스트의 가게 임대 광고를 보고 서류를 제출해 선정돼 돈 한 푼 없이 가게를 인수하였다.

'첫 3개월 임대료 무료'가 미카엘씨에는 엄청난 힘이 됐다. 미카엘씨는 3개월 임대료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친구에게 빌려야 했지만, 다행히 사업이 점차 확장되고 많은 주민들이 가게를 찾아 이제는 걱정 없이 먹고살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지상 37제곱미터, 지하 21제곱미터인 가게의 임대료 2300유로를 빼고도 먹고살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미카엘씨는 점점 활기가 넘치는 생 드니 거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가게가 골목에서 자리를 잡으면, 그와 유사한 지역 밀착형 가게들이 연이어 들어서며 골목상권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이 구두 수선 가게 옆에는 와인을 시음하고 파는 와인 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유기농 야채 가게가 있는데, 모두 세마에스트의 도움으로 장사를 시작한 곳들이다. 또한 섹스 숍 거리였을 때는 주민들이 이 거리를 피하고 떠났으나, 골목상권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주민들이 속속 들어왔고 덩달아 인근 아파트 가격도 올라갔다고 한다.

 파리 2구 생 드니 거리의 구두 수선공인 미카엘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파리 2구 생 드니 거리의 구두 수선공인 미카엘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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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시음 및 판매장. 주인인 미레이(Mireille)는 20년간 요식업에 종사했다가 Semaest의 도움으로 이 가게를 열게 되었다. 그 옆에는 유기농 야채 가게가 보인다.
 와인 시음 및 판매장. 주인인 미레이(Mireille)는 20년간 요식업에 종사했다가 Semaest의 도움으로 이 가게를 열게 되었다. 그 옆에는 유기농 야채 가게가 보인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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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 살리기의 기본, 도서 정가제

문화의 도시 파리에서 서점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1981년 미테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도서 정가제를 적용하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형 서점으로부터 작은 서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의 다른 모든 제품이 자유 가격제를 적용받는 것에 비하면 도서 정가제는 파격적인 정책인데, 이 정책 덕분에 작은 서점들이 여럿 살아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도서 정가제에도 불구하고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한 파리 5·6구 지역에 위치했던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옷 가게나 신발 가게, 핸드폰 상점 등이 들어섰다. 이에 세마에스트는 2009년부터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한 특별 정책을 시행했다.

파리 6구, 뤽상부르 공원에 근접한 무슈 르 프랭스 거리에 문을 연 서점 'Le flaneur de deux rives(두 강변의 산책자)'는 이 정책의 혜택을 누렸다. 2010년 4월에 서점을 개업한 필립 우브라르(Philippe Ouvrard, 51세)씨는 1932년부터 서점이었다가 3년간 비어 있던 가게를 인수했다.

22년 동안 서점 주인과 출판인으로 활동했던 필립씨는 5년 전에 서점을 열 생각으로 가게를 하나 인수하려 했었다. 그러나 부동산이 중간에 개입해 이를 가로채는 일을 겪으면서 필립씨는 서점을 낼 생각을 아예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서점 인수에 관한 세마에스트의 광고를 보고는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으로 서류를 제출했고, 그 결과 꿈을 이루게 되었다.

서점 인수 후 필립씨는 주변 여러 곳에 있던 지베르(Gibert)라는 대형 서점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필립씨는 이 때문에 새로운 판매 전략을 세웠다. 다른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이하고 귀한 서적을 팔기로 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립씨는 역사와 정치, 그리고 초현실주의와 파리에 관한 책을 많이 구비했다. 개업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파리지앵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서점이 붐비게 되었다고 한다. 

 센강 왼쪽 강변인 파리 6구 무슈 르 프랭스 거리의 서점.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파스칼이 살던 집이 바로 옆에 있다.
 센강 왼쪽 강변인 파리 6구 무슈 르 프랭스 거리의 서점.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파스칼이 살던 집이 바로 옆에 있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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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슈퍼마켓 장려하는 프랑스 정부, 저항하는 파리 시

이러한 프랑스에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대형 슈퍼마켓이 점점 우세해지는 형편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 시에 면적이 300제곱미터 이상인 슈퍼마켓을 열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특별 허가 없이도 1000제곱미터까지 영업이 허락되고 있다. 사르코지 정부가 이런 대형 슈퍼마켓 장려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파리 시는 이렇게 법적으로 허용된 대형 슈펴마켓들이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가격을 책정하지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파리지앵들은 점점 대형 슈퍼마켓에 등을 돌리고 있다. 세마에스트 디렉터 알베르티니에 의하면, 10여 년 전부터 파리지앵 사이에서 대형 슈퍼마켓 대신 골목상권 이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한다. 규격화된 제품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보다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제품을 파는 골목 소상인을 선호하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실 '동네 살리기 작전'도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파리지앵 사이에서는 자동차 보유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파리지앵들은 그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게 되는데, 자전거로는 당연히 외곽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보다는 골목상권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것은 친환경 정책과도 관련이 있는데, 유기농 가게의 개설과 이용 확장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2004년에 '동네 살리기 작전' 1차 조치로 5750만 유로의 예산을 투여했던 파리 시는 이 작전이 성공하자, 2008년 '동네 살리기 작전' 2차분으로 5개 구역을 새로 선정하고 3000만 유로의 예산을 다시 투입했다. 1차 작전은 2015년, 2차 작전은 2021년에 마감하도록 되어있다. 이 마감 기간이 되면 세마에스트는 빌려준 가게를 세입자나 일반인에게 다시 팔아 파리 시에서 빌린 돈을 갚도록 되어 있다. 결국 파리 시는 10여 년 만에 자금을 회수함으로써 예산 손실 없이 동네 살리기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세마에스트는 2004년 '동네 살리기 작전' 이후 160여 개의 가게를 구입하여 지금까지 145곳의 다양한 지역 밀착형 골목 가게들을 형성하였다. 나머지는 현재 수리 보수 중이다. 일부 프랑스 소상인들은 이 작전으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사항이 많다.

 '동네 살리기 작전'으로 개업한 상가에 부치는 상표.
 '동네 살리기 작전'으로 개업한 상가에 부치는 상표.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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