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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집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라면 면발만 넣었고 스프를 넣는 것을 깜빡하고 컴퓨터를 하다가, 무려 20분을 보냈습니다. 그사이 라면과 함께 유리냄비가 많이 그을렸습니다. 방에서 나오신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너 라면도 하나 못 끓여? 바보야?" 순간, 저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냥 막 큰 소리를 지르고 화가 나고 분해서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그게 길고 긴 사춘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갈수록 예민해졌습니다. 97년 IMF,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시던 가게를 처분하시고 아버지는 매일 집에서 벼룩시장을 통해 다른 가게를 알아보셨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베이비시터를 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 돈도 많이 벌고 효도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의지과잉이었던 것일까요. 학업에 대한 지나친 경쟁의식, 압박감에 대한 화풀이를 괜한 어머니께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TV뉴스에 나오는 가정폭력'을 보면 갈수록 격한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나오잖아요. 저는 처음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지나치게 예민했던 사춘기를 겪은 저로서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가해자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심한 상처를 주는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워서 점점 더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사춘기의 절정은 대학진학 때였습니다. 제가 좋은 대학에 가서 효도하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1차적으로 가족이었는데, 정작 그런 사실은 망각한 채, 제 자신만 힘든 줄 알았습니다.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셔서 아침을 차려주시는 어머니. 공부하고 있는 제 방에 조용히 들어오셔서 제가 좋아하는 과자 2봉지를 두고 말없이 나가시는 아버지.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누차 다짐했는데, 결국 저는 지나친 압박감을 못 이기고 무너졌습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부족한 제 자신의 탓이었음에도, 저는 그 점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부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못난 저를 어머니께서는 함께 우시면서 감싸 안아주셨습니다. 일평생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신 어머니께서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더 나은 가정환경이었다면 너는 더 잘 될 수 있었을텐데…"라며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따사로운 햇살로, 사춘기는 끝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어머니와 '량강도 아이들' 영화 시사회를 보았습니다. 어느 극장이 그렇듯 손을 꼭 잡은 연인들로 많이 붐비었습니다. 가게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시고 퇴근하는 어머니와 평생 처음 본 영화였습니다. 영화시사회를 어머니와 처음 보고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영화관에 온 연인들 속의 수줍은 많은 여성처럼 저런 시절이 있으셨겠지…. 못난 자식 뒷바라지 하시느라 이런 건 사치라고 생각하셨겠지.'

정말 죄송했습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부모의 최고 기쁨이라고 하는데 도리어 제가 어머니라는 한 가냘픈 여인의 인생에 커다란 짐만 지워드린 건 아닌지 정말 죄송했습니다.

오늘 저녁, 학교 운동장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께서 한 짐 가득 옷가지를 실은 유모차를 미시면서, "학생! 이문동 가야 돼. 어딘 지 모르겠어. 나 올해로 아흔 살 먹었어. 옛날엔 그렇게 똑똑했는데, 이제는 길도 도통 모르겠네" 하시면서 울먹이셨습니다. 저희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1시간에 걸쳐 이문동 파출소 부근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 문득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부모님과 자식은 평생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자식은 어머니의 몸 일부에서 나와 어머니의 젖을 먹고 따뜻한 품 안에서 자라납니다. 그런 자식이 어른이 되면,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 늙으시는 게 아니라 점차 자식이 성장하는 과정 정반대로,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갑니다. 부모님의 크나큰 은혜를 자식이 조금이라도 갚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서운 노인병인 치매는 어찌 보면 부모님께서 가장 순수한 아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처음 태어났을 때 똥오줌을 못 가리는 자식을 매번 웃는 얼굴로 기저귀를 갈아주시면서 그렇게 귀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살아생전에 조금이나마 갚으라고 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에, 어머니는 곤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 새벽 5시가 되면 여지없이 일어나셔서 가게에 나갈 준비를 하시겠지요. 언젠가는 부모님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제 어깨에 얹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날을 꿈꾸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전생에 어머니와 아들은 연인관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의 속을 가장 많이 상하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주는 상처가 제일 아픈 법이지요. 그런 어머니의 깊은 상처가 아물기 전에 효도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당신을 존경하고, 너무나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제일 불효자입니다' 응모글



태그:#사춘기, #치매, #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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