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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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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운계곡으로 들어서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했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식당을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방림면 사무소가 있는 방림리에 식당이 몇 개 있었다. 막국수 집은 패스. 요즘 막국수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더 이상 땡기지 않는데, 강원도는 어딜 가나 막국수 집이 널렸다. 여기도 막국수요, 저기도 막국수다. 막국수 집을 지나면서 막국수가 온 국민이 즐기는 '국민 음식'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길 가의 허름한 식당 안을 기웃거렸다. 한식과 중식을 같이 한다는 식당인데, 식사를 마친 흔적이 있는 탁자를 쥔장이 치우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고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밥 좀 먹어보자.

별다른 기대를 안 했는데, 이 집 된장찌개 맛이 환상이었다. 느타리버섯과 두부를 넉넉하게 넣고 끓인 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어른 손바닥만 한 빈대떡 한 장을 곁들여주는데, 그것도 맛나다. 기대 없이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유난히 맛날 때, 횡재를 만난 것 같다.

주방에서 나온 안주인에게 된장찌개가 맛있다고 인사를 건네니,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이란다. 어쩐지, 맛이 다르더라니. 안주인의 손끝이 여문 것이 분명하다, 반찬도 죄다 맛깔스러운 것이. 게다가 안주인, 미모가 보통이 아니다. 정말 예쁘다, 고 했더니 부끄럽다는 듯이 웃는다. 젊었을 때는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는 말을 덧붙인다. 지금도 그 미모가 별로 빛바래지 않았다.

카메라 들었을 뿐인데, 녀석들 날카롭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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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뇌운계곡로는 42번 국도에서 갈라져 들어간다. 그 길로 들어선다. 길은 계곡을 끼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처럼 구불거리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도 계곡을 따라 펜션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었다. 평일이라서 그럴까. 펜션에서는 대부분 사람의 기척이나 흔적이 엿보이지 않았다. 이 길에서도 금당계곡처럼 날이 저물면 잘 만한 곳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길을 어림잡아 짐작을 해보면 해가 지기 전에 뇌운계곡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렇듯이 걷는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 이런 길을 일삼아 걷는 사람이 또 있을 리 없지. 2차선 국도는 이따금 차량들이 지나갈 뿐 한산했다. 평창으로 가는 차량이라면 에둘러 가는 이 길로 굳이 들어와야 할 이유가 없다. 31번 국도를 타고 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길을 나는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면서 걷고 있다. 

계곡 물은 쉼 없이 흐르고 목이 길고 몸통마저 긴 두루미 같은 새가 이따금 날아오르는 게 보인다. 녀석들은 계곡의 바위에 앉았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라치면 너른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다른 바위 위로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내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아니 달려간다고 해도 계곡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도 녀석들의 경계는 날카로웠다. 총이라도 들었을까봐 그러나?

하긴 카메라를 들고 녀석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려니, 이게 총이라면 나도 모르게 표적(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총 한 번 만져본 적이 없으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뇌운계곡에서 안나푸르나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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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운계곡 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의 쥔장은 뇌운계곡이 좋다는 것도 다 옛말이라는 말을 했더랬다. 공사를 심심치 않게 해서 물이 많이 흐려졌고, 수량도 줄었다는 것이다. 나야 처음 보는 계곡이니 예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지만, 물이 너무 적어서 비라도 흠뻑 내리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래프팅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물은 빠르게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저 물이 흘러흘러 평창강까지 가겠지, 싶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내 발걸음에 맞추거나 혹은 더 빠르게 혹은 더 느리게 나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이따금 물소리는 바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기분 좋게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왼발의 긴장감이 사라진다.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느낌은 대체 뭐지, 하면서 왼발을 내려다보니 신발 끈이 끊어져 있었다.

끈을 묶지 않고 도르래를 돌려서 신발 끈을 조이는 편리한 신발인데 끊어진 것이다. 발이 금방이라도 신발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에 당황했다. 신발을 신는 게 아니라 질질 끌면서 걷게 생긴 것이다. 앞으로 서너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는데, 이를 어쩐다냐. 이런 상황이라면 10분도 채 걷지 못하고 퍼질러 앉겠다. 신발 도르래를 돌리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끊어진 부분을 서로 묶는 것으로 임시변통을 했다. 그렇게 하니, 발목 부분이 조여지면서 신발이 벗겨지지 않고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뇌운계곡
 뇌운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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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휴대용 간이의자를 꺼내놓고 앉았다. 계곡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시간도 더불어 그렇게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따금 자동차가 도로를 울리면서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가게에서 사서 배낭에 찔러 넣었던 커피를 꺼내서 홀짝거리면서 마셨다. 물이 많아지는 계절에 다시 와서 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오래도록 앉아 있어야겠다, 는 생각을 거기서 했다.

문득 이태 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흘러내려오는 계곡에서 잠시 멈춰 발을 담그던 것이 생각났다. 그 물, 발목이 잘려나갈 것처럼 차가워 2초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발을 빼곤 했더랬다. 냉기를 잊을 만하면 다시 발을 물 속에 넣었고.

시간은 물처럼 쉽게 흘러 그 때가 대체 언제였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물이 되어 흐른 시간은 지금 어디에 고여 있을까? 그곳에 시간에 새겨진 내 온갖 기억들도 그대로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앉아 있으려니 해가 지거나 말거나 그대로 오래도록 있고 싶어진다. 하지만 뇌운계곡 길이 어디까지 얼마나 이어지는지 모르니, 언제까지 미적거리면서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의자를 접어서 배낭 옆구리에 찌른 뒤, 배낭을 둘러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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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뇌운리를 지나 다수리로 이어졌고, 다시 계장리로 이어진다.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 다다른 곳에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 뒤에는 계장리 마을 표지석이 서 있고. 정자 이름은 서장루(西將褸). 계장리의 계장(鷄將)은 수탉을 의미하고, 닭은 서쪽을 의미하는 십이지신이란다. 그래서 이 정자의 이름을 서장루라 붙였다고 한다.

이름이야 무엇이건 간에 정자는 쉬었다 가기에 딱 알맞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마을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명당이었다. 그곳에서는 다수리에 있는 다수교가 보이고, 그 밑을 흐르는 평창강이 보였다. 해질녘이 되어서인가,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모텔 방에 잠금 장치만 3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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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평리에서 평창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와 다시 만났다. 이곳에서 평창은 그리 멀지 않다. 해가 지기 전에, 평창읍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예상대로 6시가 채 되기 전에 평창읍내로 접어들 수 있었다.

평창버스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텔에 방을 잡았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큰 건물이었다, 모텔은. 한데 쥔장이 방을 잘못 잡아주었다. 방 열쇠를 받아 들고 3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연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걸려있는 트레이닝복이었다.

여기 모텔에서는 손님에게 평상복으로 입으라고 트레이닝복을 제공하나?

다음에 눈에 띈 것은 화장대 위에 빨아서 곱게 널어놓은 남자 양말 한 켤레. 그제야 방 한쪽에 검은색 배낭이 얌전하게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이 방 임자가 있는 거잖아.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 늘 생긴다. 이래서야 한 백 년을 살아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카운터로 내려가서 다른 방 열쇠를 받았다. 쥔장,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아까 들여다봤던 방 바로 옆이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문을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 문을 잠그는 보조 잠금쇠가 3개나 된다.

모텔의 잠금쇠
 모텔의 잠금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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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모텔에서 잠을 잤지만 이처럼 잠금쇠가 많이 매달려 있는 모텔은 거의 없었다. 보조잠금쇠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이 잠금쇠의 의미는? 혹시 이 방이, 혹은 이 모텔이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 설마….

설령 그렇더라도 일단 들어왔으니, 이 방에서 이 밤을 묵어야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게 3개의 잠금쇠를 보면서도 전혀 겁이 나지 않더라는 거. 쥔장이 쓸데없이 돈 버려가면서 저것들을 문에 박아놨을 리는 없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겁을 상실한 것 같다. 그런 거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날 밤, 나는 그 방문을 잠근 뒤 잠금쇠 3개도 죄다 걸어 잠갔다. 겁을 상실한 내가 겁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니고, 쥔장이 사용하라고 돈을 들여서 문에 박아놓은 것이니 사용해주는 것이 최대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내 예상대로 그 밤에 그 누구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긴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나를 누가 업어갈 것도 아니요, 가진 것 없이 묵직한 배낭을 메고 찾아온 숙박객의 주머니를 털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다. 내가 가진 물건 가운데 가장 값나가는 건 낡을 대로 낡은 DSLR 카메라밖에 없었으므로. 이 방 역시, 대화에서 묵었던 모텔처럼 방이 밝아서 마음에 들었다.


태그:#도보여행, #강원도,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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