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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어느 허름한 술집, 후배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를 보다 자연스레 등록금 이야기가 나왔다. 한 잔 두 잔 술잔이 돌고 이제는 남한테 못했던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실직하신 뒤로 더 이상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후배의 말에 난 이미 등록금 때문에 빚을 졌다고 밝혔다.

선배는 어쩌다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게 됐어요?

사실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별로 잘하지 못한 터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국립대 영문과에 겨우겨우 입학했다. 그나마 국립대라 등록금이 비싸지 않아서 형편없는 성적에도 부모님께서 대학 진학을 허락해 주신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법조인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 수능을 다시 보고야 말았다. 그렇게 입학한 서울 소재 사립대학 법학과, 이미 자퇴한 국립대의 신입생 등록금(입학금까지 포함)이 약 170만 원이었는데 이 사립대는 400만 원이었다. 비싸다고 한탄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학자금 대출을 신청해 등록을 마친 뒤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1학년이 지나고 2학년, 즉 4학기째까지는 말이다. 그러다 3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 어느 날 또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기 위해 접속한 홈페이지를 살펴보다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내가 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 정부보증을 통해 은행 대출 받은 돈이 1000만 원을 훌쩍 넘어있었다.

'천만 원? 진짜 천만 원도 넘게 빚을 졌네?'

스무 살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지났지만 철부지였던 것이다. 당시 대학졸업까지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신 부모님께서 학자금 대출 원리금을 대신 갚아주고 계셨다. 하지만 졸업하자마자 이 돈은 바로 내가 갚아야 한다.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빚쟁이'가 된 것이다. 그 때 즈음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생활비를 줄여보고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빚을 지면서까지 학교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았어요?

고시공부를 하러 신림동으로 가지 않고 계속된 나의 대학생활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알바'였다. 돈을 벌어야 했다. 등록금을 마련할 수는 없더라도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으며 최소한 내가 쓸 생활비는 스스로 벌고 싶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꽤 여러가지 알바를 해 봤다.

공사현장에서 막일을 할 때에는 덩치는 큰데 일을 못한다며 아저씨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웨딩홀 뷔페에서 음식이 가득한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가다 와장창 접시를 한 번 깨니까 다시는 연락이 안 오더라. 유명 언론사 빌딩에서 7개 층을 돌며 집기비품 수백 개에 라벨 붙일 때에는 정말 서러웠다. 한두 명만 더 써도 훨씬 빨리 끝날 일을 나한테만 시키는 게 정말 악덕 업주처럼 보이더라. 이런 일들보다는 훨씬 몸이 편한 일인 과외도 해 봤고 지금은 자취방에서 1시간 반이나 걸리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시간이나 서서 한 시간마다 교체되는 학생들과 대면하는 일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쉽지 않다.

고시에 합격해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봐요?

당초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내게 대학생활에서의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새내기 시절 읽었던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은 결코 법조계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언론에 매번 비치는 검찰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조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떡검'이니 '개찰'이니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러다 2007년 갑자기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로스쿨은 한 학기 등록금이 천만 원이 넘을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 때 '더 이상 교육이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할 수 없고 나 같은 사람은 법조인 되기도 하늘의 별따기구나' 하는 좌절감이 들더라.

생각해보면 검사라는 직업을 꿈으로 삼았던 게 참 후회스럽기도 하다. 내가 진짜 꿈꾸는 건 사실 어떤 직업이 아니라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사회정의라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정치계나 시민단체 등 수많은 곳에서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활동을 하고 싶다. 그게 내가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고 입학한 대학생활에서 느끼고 경험한 바탕이 아닌가 싶다. 돈 많은 사람만 대학 편하게 다니고, 돈 없는 사람은 알바하랴 공부하랴 힘들게 사는 것이 옳은 상황은 아니잖나.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등록금 문제만도 심각한데……

요즘도 언론에 대학 등록금문제와 청년실업이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대학별 등록금동결(또는 인하)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해라고 본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학교는 2월까지만 해도 캠퍼스 내 그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다른 대학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래카드 하나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 대학들에서 학생총회가 성사돼 협상이 타결됐더라. 그런데도 우리학교 내에는 허접한 플래카드와 휑한 대자보만 붙어있었다.

2007년에 총학생회의 등록금운동이 나름대로 성공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학교로부터 한 학기 학자금대출 금액의 이자를 지원받았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학교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일이다. 이런 경험도 있는데 도대체 왜 현 총학생회가 움직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않고서는 학교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야 한다. 우리가 공부하러 대학 왔지 등록금 내기 위해 일하러 대학 온 건 아니잖나.

씁쓸한데 이런 얘기 그만하죠~

씁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만둬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 제32조에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 헌법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인 지켜야 할 가장 높은 법이고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다. 그래서 등록금문제 해결하라고 총학생회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건 헌법을 지키라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먼저 내세웠던 사람들은 그들이다. 곧 2012년 총선과 대선도 다가오고 있으니 모든 국민들, 특히 대학생들은 절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앞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보자. 변화는 깨어있는 사람들한테만 보인다.


태그:#등록금, #대학생, #교육권,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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