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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널리스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 표지
ⓒ 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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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나이가 있다. 대담하게도 자기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중학생이 된 자기 딸아이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일이란다.

<애널리스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용대인 지음/페이퍼로드/13,500원)은 헝그리 정신밖에 가진 것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저자가 몸담고 있는 세계로 두려움 없이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아프니까 청춘"이기도 하지만 "청춘이니까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학벌 차별도 남녀 차별도 없이 오직 노력과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곳이 여의도 애널리스트 바닥이라고 역설하는 저자의 손짓은 무척이나 유혹적이다.

틀릴 수밖에 없는 숙명

문제는 그 직업이 애널리스트라는 데 있다.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딴 사람보다는 잃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은 상식일 터. 직접 투자자만 수백만에 이르는 주식시장에서 누군가가 원망과 욕을 먹어야 한다면, 가장 손쉬운 대상은 바로 애널리스트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의 주가에 대해 발언해야 하기에 틀릴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업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주식과 채권이라는 투자대상에 대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애널리스트는 어떤 형태로든 '말을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러므로 그 발언이 틀릴 수밖에 없는 직업입니다. 투자자들이 이런 애널리스트의 한계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투자자들도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근거 있는 뭔가를 읽고서 검토하고 생각할 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점에 애널리스트들이 있는 것입니다."

애널리스트(analyst)와 항문을 의미하는 애널(anal)의 앞소리가 비슷해서인지, 증권 포털사이트마다 육두문자로 그들을 씹는 글들이 넘쳐난다. "애널리스트 믿지 마라"는 막말도 난무한다. 이 책의 저자 용대인은 애널리스트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가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오해보다 더 마음 아팠던 건 애널리스트가 뭐 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무지라는 것이다. 무지는 오해에 수반되는 최소한의 관심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혹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애널리스트에 대해 모르면 애널리스트가 아예 진로 선택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는 우려가 이 책을 쓰게 된 절박한 동기였다. 

저자는 기꺼이 욕먹을 각오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논란을 유발할 만한 제목에서도 그런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좋은'이란 수식어가 자기 미화나 변호라는 옹색한 동기에서 나온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책을 읽다 보면, 그토록 좋은 직업의 세계를 잘 모르거나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진심어린 외침이 들리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애널리스트 세계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애널리스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애널리스트가 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인지에 대한 설명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유혹하는 글쓰기'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접어들면, 마치 신입사원들에게 OJT(On the Job Training)를 하듯 리서치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여태까지 한 번도 활자화된 적이 없는 내용들을 기교 부리지 않고 담았다고 한다.

"만일 학교에서 배워서 가능한 것이라면 대학에서 박사를 딴 사람이나 유명한 해외 MBA 출신을 시키면 될 겁니다. 그러나 불가능합니다. 학교와 시장은 완전히 다른 곳임을 수많은 실패 사례가 말해줍니다. 대학교수와 애널리스트는 무술 이론 선생과 격투기 선수만큼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미화도 과장도 없이 서술하겠다는 서두의 다짐만큼이나 저자의 글은 거침없이 달린다. 터무니없는 오해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일갈을 날리기도 한다. 과거에 자신이 썼던 보고서에서처럼, 저자는 변화구가 아니라 강속구로 승부한다. 때로는 표현이 진솔하다 못해 거칠다는 느낌마저 주는 대목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을 다 덮고도 남을 만한 장점이 있다.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젊은이들을 향한 뜨거운 배려와 응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같은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남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해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성공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고 증언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애널리스트 세계의 본질을 알게 되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본인의 딸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 그런지 '유리천장 없는 여자들의 천국'인 애널리스트 세계의 특성도 강조하고 있다. 
 
"얼마나 사람이 귀하면 애 낳으러 간 아줌마 애널리스트들에게 전화해서 출근을 빨리 하라고 독촉까지 하겠습니까? 출산휴가 간 여직원들이 내심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는 여의도 밖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용대인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용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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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무것도 아닌' 청춘들에게 띄우는 초대장

현재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인 저자는 현역 애널리스트 시절, 저격수를 의미하는 스나이퍼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모두가 '매수'를 외쳐도 투자자의 이익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단칼에 '매도'를 외쳤던 고지식함 덕분에 생긴 별명이란다. 2009년 한국 주식시장 전체를 통틀어 네 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투자의견 '매도' 보고서 중 세 건을 발표했던 그는 증권부 기자들 사이에서 소신파 애널리스트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 강직함이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자는 여의도에 입문할 당시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그 참맛을 느끼게 해준 사부님들의 은혜를 갚고 싶었다고 한다.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이 세계의 장점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009년 초에 현역 애널리스트를 마무할 무렵, 그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저자는 바쁜 현업 속에서도 잠과 휴식,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해가면서 이 책의 집필에 매달렸다. 주말과 여름휴가 내내 방에 틀어박혀 원고를 쓰느라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원형탈모가 세 군데나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의 자신처럼 지금 '아무것도 아닌' 젊은이들의 인생에 작은 선물 하나를 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책장 곳곳에 묻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저자는 자신을 불러만 준다면 지방대학 어디라도 달려가 학생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다고 한다. 학벌도 '빽'도 없는 젊은이들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계기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심은 이 책의 출간으로 끝나지 않은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송원 기자는 책 <애널리스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의 기획/편집자입니다.



애널리스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

용대인 지음, 페이퍼로드(2011)


태그:#애널리스트, #용대인, #페이퍼로드, #동부증권, #리서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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