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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현재 28살 이반(동성애자) 여성입니다. 여러가지로 답답해서, 점을 볼까 아님 정신과 상담을 받을까 고민하던 찰나 우연찮게 상담실 안내글을 보고 혹시나 좀 마음이 편해질까 해서 메일을 보냅니다.

스무살 이후로 찌던 살이 어느덧 90키로를 육박하는데요. 전 처음엔 몰랐는데, 얼마 전 어릴 때 알던 친구들을 만나고 제대로 충격받고 왔어요. 사람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 거냐며 한숨을 쉬더라구요. 일하는 게 바빠서, 그리고 외로워서 결국 음식에 집착하고 담배에 집착하고 몸과 마음이 많이 공허했어요.

요 근래 예전에 사귀던 사람과 연락이 닿았는데 만나자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도 않고… 운동을 시작해도 잘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겠고 마음은 조급한데 늘 그자리인 것 같아요. 나쁜일은 겹친다고, 잘 다니던 회사도 거의 망해서 뒤늦게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아직도 대출금이 한참 남았는데 모아둔 재산도 없고… 제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집니다.

생각해보니 유별나게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집착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어린 마음에 8~9살 때 유서를 썼었는데 어머니가 그걸 보고 절 매우 때리셨고, 청소년기 부모님 이혼도 좀 충격이었고,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만남과 이별 이런 것들? 결국 자살시도도 몇 번 했지만 다 실패였죠. 집에 있는 약이란 약은 다 모아서 80알 정도 먹고 병원에 실려가거나 목을 매볼까 했다가 무서워서 관두고…

그런데 요 근래 다시 자살충동이 자꾸만 들어요…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봤자 뭐하나, 엄마는 엄마대로 딸이 너무 무심하다 그러고, 회사는 개판이고, 제 모습은 초라하고… 글이 두서가 없네요. 그냥… 하고 싶은 일은 되게 많은데 현실은 시궁창 같아서요.


한국청년연대와 한대련, 청년유니온 등으로 구성된 청년실업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청년실업문제 막말에 대한 이재오 특임장관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의 임명 반대와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청년연대와 한대련, 청년유니온 등으로 구성된 청년실업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청년실업문제 막말에 대한 이재오 특임장관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의 임명 반대와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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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을 읽어보니 제 마음도 답답하군요. 달려가서 손이라도 얼른 잡아주고 싶습니다.

엄마와의 관계, 일을 해서 돈은 벌어야 하는데 회사는 개판이고,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많은데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정말 우울하고 냄새나는 시궁창 같다는 님의 말에 저도 백분 동감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 중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인생 불행 총질량 불변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생동안 겪는 불행은 겪는 시기만 다를 뿐이지 그 양은 누구다 똑같다는 우스갯소리입니다. 돈 많은 재벌들도, 얼굴도 몸매도 예쁜 배우들도 모두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죽는 인생, 구태여 내 자신이 인위적으로 시간을 앞당겨가며 목숨을 끊을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어요. 세상에 많은 사람들도 이왕 태어난 몸, 지금은 버둥대며 힘이 좀 들지라도 '반짝할 날'을 희망하고 다들 살아가는 거지요.

님은 아직 젊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 제목도 있던데 젊기 때문에 고민도, 생각도 그리고 아픔도 남보다 더 많은 거겠지요. 그래도 전 님의 글 중에서 '희망의 씨'를 하나 찾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되게 많은데'라는 그 말, 이 이유 때문에라도 님은 꼭 살아야 합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생각했던 것들도 하나씩 살펴보면 님의 그 마음을 꺾을 만큼 큰 벽이 되지는 못합니다.

영화 <김씨 표류기>, 회사 구조조정과 대출 문제로 자살을 시도한 남자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게 된다. 밤섬에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남자는 쪽지가 담긴 와인병을 발견하고 작은 희망으로 설레여 한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모습을 그린 영화.
 영화 <김씨 표류기>, 회사 구조조정과 대출 문제로 자살을 시도한 남자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게 된다. 밤섬에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남자는 쪽지가 담긴 와인병을 발견하고 작은 희망으로 설레여 한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모습을 그린 영화.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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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모녀관계. 장담하건대 이건 세월이 가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둘째, 성정체성 혼란. 이 문제는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보수 쪽 동성애 이론 자료에 의하면 사람은 원래 양성애자인 셈이고 10% 가량이 동성애자라 하더군요. 그러니 자신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살펴보시고 동성이든 이성이든 맘이 가는대로 사랑하세요. 너무 죄의식은 갖지 마시고요.

셋째, 부모님의 이혼. 이건 제 주위에 널린 케이스입니다. 평생을 밥상을 집어던지며 죽일 듯이 싸우는 부모를 보며 자라나는 것보다 백 번 낫습니다.

넷째, 모아둔 재산. 님의 나이에 모아둔 재산이 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입니다. 신체가 건강한데 이제부터 모으면 됩니다.

다섯째, 외로움. 인간은 원래 혼자입니다. 그래서 맘에 맞는 이들끼리, 몸을 대고 의지하고자 하는 겁니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고, 의지를 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거절하면 어쩌냐구요? 제 경우엔 '시도도 못해보는 소심함보다는 거절당해도 웃을 수 있는 용기'가 삶의 큰 에너지가 되더군요. 반세기 이상을 살아보니 거절당해서 민망했던 것보다 한 번 대시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더 속상하더라구요. "아님 말고"하고 웃어넘기면 되잖아요.

여섯째, 맘에 들지 않는 망가진 몸매. 이것이야말로 전적으로 님이 풀 수 있는 문제이네요. 남이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님의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굳이 살을 빼고 싶지 않다면 안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주위 친구나 가족, 직장동료의 눈에서 내 몸에 대한 부정적인 눈초리를 읽었고 그것이 맘에 걸린다면 하셔야 합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죠. 다 거짓말이에요. 사랑을 하면 '더욱' 예뻐진다는 말이겠지요. 일단은 예뻐져야 사랑이 찾아옵니다. 제가 말하는 예쁘다는 말은 성형의사들의 기준을 말함이 아니에요. 자기 몸을 바라보는 본인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이 싫어서 거울을 자꾸 외면한다면 그 순간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은 50킬로의 체중이든 90킬로의 체중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님은 벌써 오래전부터 거울을, 그리고 체중계를 외면하고 사셨을 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외면한다면 그 누가 나에게 사랑을 주며 관심을 가져줄까요. 그럼 자연히 외로워지고 외로우니 삶이 더 힘들어지고, 이런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직장문제. 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가진 능력을 이용해 일할 곳을 찾거나, 뚜렷한 비전이 없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라도 슬슬 능력개발을 해보는 것이 좋겠지요.

나쁜 일이 겹쳐서 왔다고 했지요? 맞아요. 하지만 좋은 일도 겹쳐서 온다는 사실은 모르셨죠? 희망을 가지세요. 어떤 것이든지 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만 하나 정해놓으시고 묵묵히 하다보면 그 고비를 잘 넘기실 것이고 나머지도 술술 풀릴 겁니다.

전 힘든 일이 올 때마다 '파도타기'를 생각해요. 파도타기 하는 것 보셨죠? 파도가 몰려올 때 당황하거나 무서워하면 파도에 곧 휩쓸려버리지만 일단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같이 움직이면 오히려 스릴이 생깁니다. 매번 이런 파도가 계속 오는 걸 제대로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랍니다.

한 파도 지났고, 두 파도 지났고… 이렇게 파도를 넘다보면 잠잠한 날, 행복한 날도 오고 내 옆에서 손 잡아주며 촉촉한 위로를 해줄 누군가도 생기더라구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들 쉽게 삶을 포기한다면 지구가 이리도 복잡할 리가 있겠습니까. 님이 원하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하겠지요? 님이 이번 파도를 멋지게 넘길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상담가] 엄을순 이프 대표
 [상담가] 엄을순 이프 대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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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레인보우 상담실,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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