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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에서 전산 장애가 발생한 가운데, 김해 진영농협 문에 사과문에 붙어 있다.
 농협에서 전산 장애가 발생한 가운데, 김해 진영농협 문에 사과문에 붙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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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저녁 청주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농협 전산망은 언제 정상되느냐'는 것이다. 짜증 섞인 말투였다. 그는 언론사 경제부에서 근무하는 형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농협에 계좌와 카드를 갖고 있었다. 농협과 거래는 2년 전 예금 상품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올해 3년째 만기가 된다. 가끔씩 농협 카드도 썼고, 별도 계좌를 통해 거래도 했다고 한다.

농협 전산망 사고를 듣고 난 후, 인터넷 뱅킹 등이 먹통이 되자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나마 급여 이체를 하는 주거래 은행이 따로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우선 "설마 돈이 어떻게 되진 않겠지"라고 안심시켰다. 그렇다고, 정말 무슨 사고라도 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농협 회장이 "전산장애로 인한 피해는 전액 보상하겠다"고는 했다.

참 답답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말했다. "그냥, 이번 기회에 은행을 바꾸라"고 말이다. 그는 "적금 만기가 6월이니, 그때까진 기다려야 하는데…"라면서 "그때라도 바꿔야지"라고 했다.

농협 고객 동생과 현대카드 우수회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

듣고 보니, 나도 이럴 때가 아니었다. 얼마 전 터진 현대캐피탈 해킹사고를 듣고, "현대카드는 괜찮나"라는 생각을 했던 참이었다. 경제부 기자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도맡아 하기란 어렵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소비자로서, 기자로서 이런저런 사실을 확인해봤다.

현재까진 현대카드 고객 정보 유출 사실이 확인되진 않았다. 경찰과 금융감독원 등에서 범인 추적과 함께, 해킹 사고 발생 경위와 범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까진 현대캐피탈 고객 42만 명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와 프라임론패스 1만3000명의 비밀번호 등 정보가 유출된 정도다.

회사 쪽에선 현대카드의 고객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한다. 해킹사고가 난 현대캐피탈과 전산망이 분리돼 있기 때문이란다. 현대카드 고객은 900만 명이다. 만약 카드 고객정보까지 유출됐다면, 이건 엄청난 사안이다. 그럴 리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말 그럴까. 다른 일반 금융 해킹사고와 달리 현대캐피탈 사고는 고객의 비밀번호까지 빠져나갔다. 물론 1000만 명에 달하는 고객들을 가진 이 회사는 두 달이 넘도록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기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 V카드.
 기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 V카드.
ⓒ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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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것처럼 난 현대카드 고객이다. 그것도 우수회원이다. 작년 말 소득공제 서류를 보니, 현대 V카드 하나로 743만9008원을 사용했다. 지난 1년 동안 거의 매달 60만 원 넘게 카드를 쓴 셈이다. 올 3월까지 123만 원 정도 썼다. 카드회사에선, 카드 한도까지 1000만 원 넘게 올려놨다.

현대카드를 쓴 이유는 딱히 없다. 내가 주로 쓰는 용도에 맞게 설계돼 있다 보니, 편했다. 물론 그만큼 할인 등의 혜택도 있었다. 다른 카드사보다 연회비는 높았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이득을 봤으니 계속 카드를 써 왔다.

하지만, 동생처럼 나도 현대카드를 해지하기로 했다.

얼마나 고객 돈을 허투루 알았으면...

왜냐면 이번 해킹사고를 처리하는 회사의 태도를 보고 내린 생각이다. 한 마디로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생명은 '신뢰'다. 우리는 자기 돈을 아무에게나 그냥 맡기지 않는다. 은행이든, 보험사든, 금융기관이니까 맡긴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금융기관 설립에 엄격한 법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신뢰' 때문이다.

자산 200조 원에 무려 3000만 명의 고객을 거느린 4대 금융기관이라 불리는 농협 사건은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무려 4일 동안 금융거래가 마비되는 상황에서도, 농협은 제대로 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농협 회장이라는 사람은 기자회견에 나서 "죄송하다"고 머리만 숙였을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돼서, 앞으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속 시원히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아래 직원이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최원병 회장의 말에선, 그의 금융회사 CEO로서의 자질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완전한 복구가 계속 지연되면서, 고객들의 신용정보마저 어떻게 될지 모를 처지가 됐다. 한마디로 금융기관으로서 농협의 신뢰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

1000만 명에 달하는 카드 고객의 각종 주요 신상정보를 다루는 현대캐피탈 CEO 역시 마찬가지다. 정태영 현대카드 겸 현대캐피탈 사장도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부족하다. 그 회사는 해커들의 협박에 못 이겨 뒤늦게 경찰에 신고하고, 언론에 공개할 정도였다. 고객정보 유출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지에 대한 고민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태영 사장은 2003년부터 CEO를 맡았다. 국내 카드사 CEO 중 가장 오래 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이면서, 사실상 국내 자동차 시장의 독점적 위치에 있는 현대차의 후광을 입고 성장해왔다. 카드사 성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보안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번 농협과 현대캐피탈 사태로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가 얼마나, 어떻게 될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검찰, 금감원, 한국은행까지 나서 조사를 한다고 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일부 소비자단체에선 소송 등도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들 회사들과 거래를 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농협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신뢰와 신용을 잃은 금융회사에 우리의 피 같은 돈을 더이상 맡기거나, 쓰도록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현대카드를 해지한다.

덧붙이는 글 | 현대카드 해지방법은, 1577-6000번으로 전화를 하면된다. 개인 회원은 주민번호 등을 입력한 후, 8번을 눌러 해지신청을 하면된다.



태그:#현대캐피탈, #현대카드,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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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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