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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만 느껴졌던 복지 문제가 어느새 한국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됐습니다.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될 전망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복지 제도를 먼저 구축한 유럽과 미국의 경험을 살펴 한국 사회 복지 논쟁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오마이뉴스>는 외국에 거주하는 해외통신원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봄부터 가을까지 노인들이 주로 즐기는 잔디볼링(Lawn bowling)장.
 봄부터 가을까지 노인들이 주로 즐기는 잔디볼링(Lawn bowling)장.
ⓒ 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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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매달 145만원씩 연금 받아요."

토론토 동쪽 스카브로에 사는 60대 후반의 송아무개씨. 매달 정해진 날짜에 캐나다 은퇴 연금(CPP, Canada Pension Plan)으로부터 738달러(약 85만원, 환율 1달러=1150원 기준), 노인연금(OAS, Old Age Security)에서 520달러(약 60만원), 도합 1258달러(약 145만원)가 자동 입금된다.

송씨는 1970년대에 캐나다로 이민 온 후 100여 명이 근무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25년을 일했고, 은퇴하기 몇 년 전부터는 슈퍼바이저(감독 책임자)로 일하다가 65세에 은퇴했다.

송씨는 이외에도 회사 연금으로 매달 800달러를 받는다. 송씨 부인 또한 직장 생활을 해서 매달 캐나다 은퇴 연금 570달러, 노인연금 520달러를 받는다.

캐나다 은퇴 연금은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동안 연금료를 낸 사람들이 65세 은퇴 이후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이다. 수급액은 불입 연수 및 금액을 기초로 산정된다. 은퇴 연금료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절반씩 부담(급여의 4.95%, 2011년 기준)하며, 최대 약 2217달러까지만 공제한다. 1인당 평균 수급액은 2010년 기준으로 월 약 502달러(약 58만원)이다.

하지만, 노인연금은 요금 납부나 직장 근무 여부와 상관없이 캐나다 거주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65세부터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연금이다. 만일 부모가 초청이민으로 와서 60세부터 캐나다에 살았다면, 10년이 지난 70세 이후부터 노인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노인연금과 저소득층 보조금(GIS, Guaranteed Income Supplement)에만 의존해서 사는 은퇴 노인들은 약 20만 명이며, 이들의 평균 수령 금액은 1년에 약 1만1000달러(약 1300만원)이다.

초청이민으로 부모를 모셔온 자녀는 10년간 재정적으로 부양할 책임을 진다. 만일 부모가 10년 안에 웰페어(저소득층에 대한 무상 생계 지원금) 신청을 해 캐나다 재정에 부담을 줄 경우, 자식이 대신 웰페어 금액을 갚아야 하며 향후 초청이민을 더 이상 신청할 수 없게 된다.

지역커뮤니터센터 안에 있는 실내스포츠장, 매주 노인들이 이곳에서 배구를 즐긴다.
 지역커뮤니터센터 안에 있는 실내스포츠장, 매주 노인들이 이곳에서 배구를 즐긴다.
ⓒ 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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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받는 노인들 "캐나다가 효자"

송씨 부부의 은퇴 후 연금 소득은 매달 약 3100달러(약 356만원)다. 모기지(부동산 담보 대출)는 모두 상환했지만, 재산세 및 자동차 보험료, 가스비 등을 부담해야 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고 한다. 또한 오랜 이민 생활로 지인들이 많아 축의금과 조위금 등 경조사비 지출도 만만찮다.

송씨 부부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골프를 즐기고, 겨울엔 실내볼링을 주로 한다. 은퇴한 이들끼리 점심식사를 함께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봉사활동도 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토론토 한인여성회에서 각종 정착 문제에 대해 상담하는 강영옥 프로그램 매니저는 노인연금 등을 받는 노인들이 "캐나다가 효자"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통장에 약 1000달러씩 입금해 주는 자녀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강 매니저는 캐나다의 복지 제도에 대해 설명하면, 캐나다를 더 잘 이해하는 한편 고마워하는 교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주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은퇴 후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캐나다의 송씨 부부와 달리, 65세 이후에도 편안한 삶과는 거리가 먼 한국 노인들이 적지 않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한국 노인의 삶의 변화 분석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70~74세 노인의 근로활동 참여율은 1994년 29.2%에서 2008년 32%로 높아졌다. 75~79세 노인은 13.3%에서 23.6%로 더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심지어 80세 이상 노인의 근로활동 참여율도 4.1%에서 10.1%로 배 이상 높아졌다.

또한 돈이 필요해서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의 비율이 1994년 70.7%에서 2008년 89.6%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이 일자리를 찾는 목적이 대부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토론토 서쪽 미시사가시의 한 노인센터. 노인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배드민턴 코트도 있고, 노인들을 위한 댄스 강습, 사교 모임이 주로 열린다.
 토론토 서쪽 미시사가시의 한 노인센터. 노인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배드민턴 코트도 있고, 노인들을 위한 댄스 강습, 사교 모임이 주로 열린다.
ⓒ 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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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으려고 해도, 굶어 죽을 수 없다"는 말까지

토론토에 사는 40대 초반 박아무개씨는 지난해 다니던 물류회사에서 경기 침체를 이유로 정리해고됐다. 하지만 박씨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급여에서 공제(2011년 기준으로 급여의 1.73%, 약 787달러까지만 공제)하던 고용보험(Employment Insurance) 덕을 톡톡히 봤다.

정리해고된 후 2주마다 박씨의 통장에 실업급여(고용보험)가 자동으로 입금되었다. 실업급여는 일자리가 없는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하며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안전망의 하나이다. 실업급여는 평균 임금의 55%이며 매주 최대 지급 금액은 447달러(약 51만원)이다.

박씨는 '매주 447달러' 적용 대상자여서 2주에 한 번씩 894달러(약 102만원)를 받았다. 박씨는 약 1년 동안 이러한 실업급여를 받으며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그 기간 중 직업을 찾기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한편 인터뷰 기술 훈련 등 여러 노력을 한 끝에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박씨처럼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실업시점 이전 52주 동안 560시간 이상(2010년 7월 토론토 기준) 일했어야 한다. 이 경우 실업급여는 최소 26주에서 최장 50주까지 지급된다. 여러 직장에 근무한 경우 각 직장의 근무 기간을 합산해 산정된다. 그렇지만 본인 잘못으로 해고된 경우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혜택을 받을 자격이 안 된다면, 웰페어를 신청하면 된다. 웰페어를 신청하면, 신청자가 정말 소득이 없어 혼자 힘으로는 먹고살 수 없는지 사회복지사가 자격을 심사한다. 심사를 통과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웰페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굶어 죽으려고 해도, 굶어 죽을 수 없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업급여 신청 등 대정부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캐나다 건물. 지역마다 여러 곳에 있어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실업급여 신청 등 대정부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캐나다 건물. 지역마다 여러 곳에 있어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 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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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복지 때문에 이민 가고 싶어 하는 한국 직장인들

한편, 한국 직장인 중 상당수가 미흡한 복지 수준에 실망해,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남녀 직장인 932명을 대상으로 '살고 싶은 나라'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민이 자유롭게 허용된다면 살고 싶은 나라는 어디냐는 질문(개방형)에 '호주'라고 답한 응답자가 1위(14.3%)를 차지했다. 스위스(10.9%), 일본(9.7%), 캐나다(7.7%), 프랑스(7.6%), 영국(7.4%), 미국(7.1%), 뉴질랜드(4.5%), 핀란드(3.9%), 스웨덴(3.6%)이 그 뒤를 이었다. 대륙으로는 '유럽'을 선택한 응답자가 월등히 많았다(52.7%).

좋은 나라의 조건은 무엇이냐는 질문(복수응답)에는 '복지가 좋은 나라'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73.3%).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50.6%), '시민의식이 좋은 나라'(46.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실제 이민이 가능하다면 우리나라를 떠나겠느냐'는 질문에는 76.1%가 '떠난다'고 답했다. '떠나지 않는다'는 응답률은 23.9%에 그쳤다. 떠나고 싶은 이유 1위는 '미흡한 복지정책'(62.5%)이었다. 다음으로 빈부격차 심화(49.5%), 심각한 실업률(47.8%), 지나친 사교육비(35.5%), 전쟁의 불안감(18.2%) 등이 꼽혔다.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실내 걷기 트랙(Indoor Walking Track).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날씨와 상관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실내 걷기 트랙(Indoor Walking Track).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날씨와 상관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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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세금, 높은 복지' 캐나다인 75%, 여론조사에서 '연금료 인상' 찬성

또한 복지 선진국에서는 세금 부담 수준이 높은 반면, 한국의 경우 이들 국가에 비해 세금 부담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와 한국조세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총 조세비중(2008년 기준)은 GDP 대비 26.6%로 멕시코(20.4%)와 터키(23.5%)에 이어 3번째로 낮았다. 이 수치가 가장 높은 국가는 덴마크(48.3%)였고 2위는 스웨덴(47.1%)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프랑스, 핀란드 등 다수의 유럽 복지국가들도 40%를 넘었고, 캐나다는 32.3%였다.

캐나다 사람들은 높은 세율 때문에 가처분 실질소득이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은퇴 후 안정적인 삶을 위해 현 급여에서 세금(은퇴 연금료) 부담을 늘리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여론조사 회사인 엔비로닉이 2010년 8월 캐나다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2%는 생계기본지출(모기지 혹은 월세, 전기료, 가스 난방료, 식비 등)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응답자의 42%는 은퇴 후에도 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응답자의 75%는 높은 세금으로 인해 현재의 실질소득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연금 수급액을 늘리기 위해 현재 급여에서 떼는 은퇴 연금료 인상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높은 세금, 높은 복지'로 대변되는 캐나다와 '낮은 세금, 낮은 복지'로 불리는 한국의 소득세 등을 비교해 보자.

캐나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자녀를 둔 가구당 세전 평균수입(2008년 기준)은 8만9700달러(아동수당 등 각종 정부 지원금 포함)다. BC주 소재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의 세금 계산 방식에 의하면, 이 중 약 40%인 3만5000달러가 세금이다(주별로 약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세후 실질소득은 약 5만4700달러다. 즉, 1억 원을 벌면 4000만원이 세금이고 실질소득은 6000만원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연방소득세, 주정부 소득세, 연금보험료, 고용보험료 등이 포함된다. 40%의 세금에서 연금 보험료와 고용 보험료 약 5%를 빼고 나머지 기타세금 5%를 뺀다고 가정하면, 연방소득세와 주정부 소득세는 약 30%다.

이와 달리, <조세일보>는 한국에서 연간 1억 원을 벌 경우 소득세가 약 756만원(2010년 기준)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캐나다의 소득세가 한국의 4배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인들이 얼마나 세금을 많이 내는지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도표가 있다. 프레이저 연구소가 만든 아래 표다. 이 표에 따르면, 온타리오 주의 경우 새해 첫 근무일부터 5월 24일까지 일한 것은 모두 세금이고 5월 25일부터 일한 것이 순수한 자기 소득이다.

재산세(Property Tax)의 경우 캐나다는 평균 약 1% 정도다. 즉, 50만 달러(약 6억원)짜리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매년 약 5000달러(약 600만원)의 재산세를 낸다. 또한 남기업 '토지+자유 연구소' 소장 글에 따르면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0.15%, 2009년)은 캐나다(1%)의 7분의 1 수준이다. 

캐나다 사람들의 세금 부담 수준을 알려주는 프레이저 연구소의 도표.
 캐나다 사람들의 세금 부담 수준을 알려주는 프레이저 연구소의 도표.
ⓒ 프레이저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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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72% "세금 더 내더라도 복지 늘려야"

이와 함께 한국인들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모든 계층이 복지 혜택을 골고루 누리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한겨레>가 창간 22돌을 맞아 지난해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의 복지 및 사회의식' 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2.1%는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돕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2.7%에 그쳤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선호했다는 말이다. 특히 이런 기류는 정치적 성향이나 소득 수준, 학력,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나타났다.

가구 소득별로 보면 월 200만원 미만인 응답자의 66.9%, 월 200만~400만원인 응답자의 74.4%, 월 400만원 이상인 응답자의 77.7%가 '보편적 복지'를 선호했다. 소득이 높을수록 '보편적 복지'에 관대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또 '선별적 복지' 제도를 선호하는 당의 태도와 달리,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70.7%가 '보편적 복지' 제도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의 '보편적 복지' 선호 비율(72%)과 별 차이가 없다.

연령별로는 30대(77.7%)와 40대(75.4%)의 '보편적 복지' 선호 경향이 다른 연령대(20대 67.7%, 50대 69.1%, 60대 이상 69.2%)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경제활동의 주역일수록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태그:#연금, #복지,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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