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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력 일간지의 1981년 4월 14일자 ‘오늘의 소사(小史)’ 코너.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국내 유력 일간지의 1981년 4월 14일자 ‘오늘의 소사(小史)’ 코너.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 모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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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력 일간지의 '오늘의 소사(小史)' 코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수백 년 전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란 식의 기사를 통해 짤막하고 간명한 역사상식을 얻을 수 있는 코너다.

'수백 년 전의 오늘, 이런 일이 있었구나'란 생각을 하다 보면, 뭔지 모를 느낌이 머리를 스칠 때가 있다. 수백 년 전의 오늘, 이 땅에서 갓과 도포를 착용하고 바삐 움직였을 조상들의 영상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 같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인지, 이런 코너의 생명력은 꽤 긴 편이다. 지금도 또 다른 유력 일간지에는 '오늘의 역사' 코너가 있고, 어느 지방지에는 '오늘의 소사' 코너가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코너에서 제공되는 역사지식의 '상당부분'은 잘못된 정보들이다. '수백 년 전의 오늘'이 아니라 '수백 년 전의 몇 개월 뒤'에 발생한 사건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매우' 비일비재다.

'어쩌다 한두 번 실수를 했겠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상당부분'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다. 특히 20세기 이전 한·중·일 역사에 관한 한, 거의 100% 틀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오류 가운데 네 가지만 살펴보자.

<신문 1>은 유력 일간지의 1980년 7월 18일자 1면이다. '오늘의 소사' 코너에 "백제 멸망(660)"이라고 쓰여 있다. '660년 오늘' 백제가 멸망했다는 기사다.

모 일간지의 1980년 7월 18일자 기사.
 모 일간지의 1980년 7월 18일자 기사.
ⓒ 모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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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제가 멸망한 시점은 660년 7월 18일이 아니라 660년 8월 29일이다. 42일이라는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42일 뒤에 내보내야 할 기사를 미리 앞당겨 내보낸 셈이다. 백제 최후의 왕, 의자왕의 입장에서는 백제가 실제보다 42일이나 더 빨리 멸망한 것처럼 기술되는 게 무척이나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에게는 42일간 나라를 더 지킬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오류는 이 신문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 또 1980년 기사뿐만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모든 기사도 다 마찬가지다. 

<신문 2>는 또 다른 유력 일간지의 '오늘의 역사' 코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가 개성의 수창궁에서 즉위하고 조선을 건국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을 읽다 보면, 조선왕조가 대한민국 제헌절과 똑같은 날짜에 건국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또 다른 유력 일간지의 인터넷판에 실린 ‘오늘의 역사’ 코너.
 또 다른 유력 일간지의 인터넷판에 실린 ‘오늘의 역사’ 코너.
ⓒ 모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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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성계가 즉위한 날짜는 1392년 7월 17일이 아니라 1392년 8월 5일이다. 신문 기사보다 19일 뒤의 사건이다. 이 오류 역시 다른 신문들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신문 3>은 같은 신문의 6월 28일자 '오늘의 역사'다. 1800년 6월 28일 조선 제22대 주상인 정조가 사망(승하)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정조가 사망한 날짜는 1800년 8월 18일이다. 이 경우에는 52일이라는 오차가 생겼다. 다른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모 일간지 홈페이지의 ‘오늘의 역사’ 코너.
 모 일간지 홈페이지의 ‘오늘의 역사’ 코너.
ⓒ 모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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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가 한두 개월이 아니라 아예 '1년씩' 나는 경우도 있다. <신문 4>은 같은 코너에 보도된 병자호란 발발 시점이다. 이 코너에서는 병자호란이 1636년 12월 9일 발발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모 일간지 홈페이지의 ‘오늘의 역사’ 코너.
 모 일간지 홈페이지의 ‘오늘의 역사’ 코너.
ⓒ 모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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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병자호란의 실제 발발시점은 1636년 12월 9일이 아니라 1637년 1월 4일이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밀고 내려온 1월 4일과 똑같은 날짜에 만주족 군대도 내려왔던 것이다.

'병자호란(1637)'이라 표기하지 않고 '병자호란(1636)'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무려' 1년의 오차가 생기게 된다. 날짜로는 26일의 오차가 생기지만, 연도로는 '1년'이라는 오차가 발생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의 연도만 기억하고 월일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우의 오차는 26일이 아닌 '1년'이라고 봐야 한다.

이 같은 오류들은 신문뿐만 아니라 백과사전이나 역사서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역사서의 99%가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기서 신문의 오류 사례만 제시한 것은 신문 기사가 일반 대중의 역사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오류가 어떻게 지난 수십 년간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위에서 소개한 사례들을 다시 검토해보자.

'오늘의 소사' 코너에서는 백제가 660년 7월 18일 멸망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해 8월 29일 멸망했다는 점을 위에서 이미 설명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편에 따르면, 신라는 태종무열왕 7년 7월 18일 백제의 항복을 받았다. '7월 18일 멸망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었다면, 신문 기사가 맞는 게 아니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태종무열왕 7년'이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896년 1월 1일 이전의 한국사 사료들은 모두 다 음력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태종무열왕 7년'을 포함해서 '고려 공민왕 ○년', '조선 정조 ○년'도 모두 양력이 아닌 음력이다. 고종 32년까지는 다 마찬가지다. 1896년 1월 1일 이후인 고종 33년부터만 양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종무열왕 7년' 뒤에 있는 '7월 18일' 역시 양력이 아닌 음력이다.

따라서 '태종무열왕 7년 7월 18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려면, '태종무열왕 7년'뿐만 아니라 '7월 18일'도 함께 양력으로 환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백제 멸망 시점은 660년 8월 29일이 된다. '태종무열왕 7년'만 '660년'으로 환산하고 '7월 18일'은 환산하지 않기 때문에 '660년 7월 18일'이라는 오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연도 부분만 양력으로 환산하고 월일 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은 습관이 이 같은 착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백제 멸망 당시 주요 격전지 중 하나였던 부여석성산성 터. 충남 부여군 석성면 소재.
 백제 멸망 당시 주요 격전지 중 하나였던 부여석성산성 터. 충남 부여군 석성면 소재.
ⓒ 문화재지리정보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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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18일 멸망했다고 기술한 사람은 양력 660년 7월 18일이 아닌 '음력' 660년 7월 18일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질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음력에 660년이니 1392년이니 1800년이니 하는 수치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수치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에서만 나올 수 있다. 과거 동아시아의 연도는 군주의 즉위 시점이나 육십갑자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660년·1392년·1800년 같은 수치가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서유기>에 나오는 원숭이왕 손오공처럼 수백·수천 년간 살 수 있다면, 음력으로도 '손오공 660년'이니 '손오공 1800년'이니 하는 수치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인간 군주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그런 이유 때문에 음력에는 660년이니 하는 수치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음력' 660년 7월 18일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기술했다고 하는 변명이 통할 여지는 없다. 조선 건국 일자, 병자호란 발발 시점, 정조 사망 일자의 경우도 이와 똑같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수십 년간 이런 엄청난 오류가 별 생각 없이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역사학계와 대중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 때문이다.

태종무열왕 7년 7월 18일이 음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역사학자는 없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도표기 방식이 일반대중에게 착오를 주는 측면이 있다.

태종무열왕 7년(경신년)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660년 2월 16일부터 661년 2월 4일까지다. 태종무열왕 7년의 대부분은 660년에 해당하고 그 일부는 661년에 해당한다. 태종무열왕 7년이 '주로' 660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편의상 '태종무열왕 7년(660)'이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학자들의 논문을 읽는 비(非)전공자들로서는 '태종무열왕 7년(660)'이라는 표기를 보고 '태종무열왕 7년은 660년이구나'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태종무열왕 7년이 661년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되면, 비전공자들은 별 생각 없이 '태종무열왕 7년 7월 18일'을 '660년 7월 18일'로 바꾸게 된다.

이렇게 바뀌고 나면, 누가 보더라도 백제는 양력 7월 18일에 멸망했다는 이야기가 성립하게 된다. '오늘의 소사'나 '오늘의 역사' 등에서 수십 년간 이런 오류가 대대적으로 발생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정조 초상화(어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소재 화령전(화성행궁 옆)에 있다.
 정조 초상화(어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소재 화령전(화성행궁 옆)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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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오류가 더 큰 오해를 낳기도 한다. 병자호란의 경우처럼 아예 연도가 바뀌는 수도 있다. 병자호란이 발발한 인조 14년(병자년)은 1636년이 될 수도 있고 1637년이 될 수도 있다. 병자년 12월 5일까지는 1636년이고 병자년 12월 6일부터는 1637년이다. 병자호란은 병자년 12월 9일 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병자호란은 1637년 사건이다. 따라서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발발했다"는 기술은 잘못된 것이다. '무려' 1년이라는 오차가 생기고 있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려면 '태종무열왕 7년 7월 18일(660.8.29)'이라고 명확히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표기하면 '태종무열왕 7년 7월 18일'은 음력이고 660년 8월 29일은 양력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병자호란 발발 시점의 경우에도 '인조 14년 12월 9일(1637.1.4)'이라고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방식이 번거로울 경우에는 그냥 '660년'이나 '1637년'만 표기하면 된다.

학자들은 '태종무열왕 7년(660) 7월 18일' 식으로 표기해도 독자들이 이를 음력으로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지식인이나 일반인들이 이를 양력으로 오해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연도상의 오류는 절대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정밀하게 인식하고 올바로 활용하는 개인과 민족만이 역사를 선도할 수 있다. '수백 년 전의 몇 개월 뒤'를 '수백 년 전의 오늘'로 잘못 보도하는 나라에서 이보다 더 큰 오류를 범하지 말란 법은 없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개월 이상, 어떤 때는 '무려' 1년씩이나 차이가 나는 역사연도의 오류를 시정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시간을 좀 더 정밀하게 인식하고 좀 더 올바로 활용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태그:#역사연도, #오늘의 소사, #오늘의 역사, #음력, #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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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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