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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의 등록금, 등록금 천만 원 시대….'

지금의 시대를 규정할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많이 있지만 이 시대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체감하는 대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저 말들에 대해, 저 말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많고 많은 말들 중에 내가 저 말들에 제대로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를 꿈꿀 수 없는 대학 그리고 등록금

2일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개최된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 참가한 대학생이 '대학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있다.
 2일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개최된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 참가한 대학생이 '대학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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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사를 통해 명문대 학생의 자살이 보도된 바 있다. 최근 홍역을 치르듯 전국 여러 곳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혹자는 죽을 용기로 살지 그랬느냐며 망자들에게 쓴소리를 던지지만, 그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에게 '교육'은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물론 우리가 원하는 전공을 '꿈꿀'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무한대의 상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꿈, 그 상상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진 정도에 따라 교육의 질과 환경을 선택할 수 있고(고액과외나 외국 유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그로 인해 습득된 능력을 바탕으로 미래와 진로가 결정되는 요즈음 순순히 자기가 원하는 길을 걷고, 또 그 길 위에서 만족을 하며 살기가 어디 쉬운가.

마음 속에 품었던 꿈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또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죽음을 택해버리는 요즈음 같은 현실에서 과연 우리에게 꿈을 꿀 기회는 있는 것인지.

본질적으로 등록금 문제는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은 사회 현안이 되었다. 그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지만 반대로 대학 진학에 제일 어려움(경제적 고충)이 따르는 국가기도 하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껏 공부할 수 없는, 공부를 하고 있어도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없는 그런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자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등록금에 대한 고민으로 한참을 방황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생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 등록금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비싸다'라는 데 있지 않다. 무책임한 정부의 탓도 있고, 좀 더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지 않는 대학본부 탓도 있겠지만 대학 등록금이 사회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회 풍토. 바로 그것이다.

등록금 문제의 주원인은 '사회적으로 대학교육을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있다. 너도 나도 자신의 미래가 혹 대학교육과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대학 졸업장을 위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그 풍토 속에서 교육은 '필수적'으로 강요받는다. 이것이 바로 등록금 문제의 본질이다. 누구나 가는 대학, 그렇기에 누구나 내는 등록금이라는 데서 오는 자괴감은 결국 사람들을 극단적인 방법 즉, 죽음이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목매는 이면에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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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시기에 마치 이 주장을 반박이라도 하듯 이상한 내용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6년여 만에 대학진학률이 낮아졌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사진만 보고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친구들을 돌아만 보아도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였는데, 어째서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린 것일까. 드디어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벗어난 것일까?

하지만 그 기사의 내용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얼핏 대학진학률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진학대신 취업을 선택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수'를 선택한 학생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은 즉 더 좋은 '대학'에 가고자 꽃다운 청춘을 수험공부에 투자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수험의 어려움과 고통이 아니다.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학생들은 대학에서 더 값진 것을 얻기를 꿈꿀 것이고(혹자는 그것을 낭만 혹은 로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그것을 스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만큼 학교 수준이 좋다면 더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교라도 가리지 않고 가려 할 것이다. 악순환 그리고 악순환, 이 반복되는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돈뿐이 아니다.

내 나이도 이제 스물 넷, 벌써 대학 졸업반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궁금하다. 내가 사회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학자금대출이라는 빚을 안고 살 만큼 자랐는지 말이다. 물론 부모님 머리에 날이 갈수록 흰머리가 늘어가고, 결혼자금을 모아야 할지 아니면 부모님 노후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 내가 이 부담을 더 일찍 떠안지 못한 죄책감마저 든다.

공부하면서 드는 죄책감, 혹은 등록금을 마련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사는 삶에 어떤 행복이 깃들 수 있을까.

후배의 휴학, 언제 나의 일이 될는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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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그리고 한국대학생연합의 의장으로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등록금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그리고 1만 숙명인과 300만 대학생들이 당면한 등록금문제에 대해 나의 어떤 것을 내어줄 수 있을지 그것에 대해 고민해본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조금씩 무디어지다 못해 이제는 점점 작아지시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이 시대를 사는 대학생으로서의 고통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결정하는, 즉 대학을 다니기 위해 대학을 쉬어야 하는 후배의 이야기가 언제 나의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더 열심히 학점을 위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처지에 대해 또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대표자라는 책임감을 넘어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한 축이라는 사명감을 넘어 나와 내 친구와 후배 동기가 처한 시대적 어려움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려 한다.

비록 내가 다니는 학과의 등록금은 동결되었을지라도, 내가 속한 단대의 등록금은 비싸지 않을지라도 훨씬 더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을(혹은 내야 할) 또 다른 대학생이라는 가련한 이름의 한 '인간'을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가슴 뜨거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또 다른 이들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손을 뻗고 그로써 정을 나누어 나가고 더 뜨겁게, 더 격정적으로 살아내어 지금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식의 뜻을 꺾지 않으려는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식의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재이다. 그리고 이 현재가 보다 희망차게 빛나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도 등록금 문제의 해결이 절실해진다.




태그:#등록금, #한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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