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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유류값이 오르고 있어서 문제지만 가장 현명하게 극복하는 길은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기업소비, 개인소비, 소비 줄이는 게 극복하는 길이다. 정유회사, 주유소에서도 국민들이 고통을 받을 때 협조를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 생각하고 있다." (2011년 4월 7일 국민경제대책회의)

이명박 대통령의 이 말은 진리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서 국민들이 유류소비를 줄이면 유가상승에 따른 여파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언론이 '유가가 치솟으면서 자가차량이 줄어 차량흐름이 빨라졌다'고 보도하듯, 유가가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유류소비가 줄고 있다. 정부가 특별한 대책을 내놓을 필요도 없이 시장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운송업 종사자들처럼 유류 소비를 줄이면 생계가 어려운 국민들도 많다. 그래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날 이 대통령은 '불가항력적 물가'라는 말을 두 번 썼다. 특히 정부의 대책을 언급하기 앞서 이 말을 썼고, 구체적인 대책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할 정부 역할은 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지만, 그 정부 역할이 무엇인지 말하진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은 정부가 뭘 어떻게 노력하겠다는 얘긴 없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준다'는 경제 상식을 무슨 대책처럼 얘기하고, 정부가 할 일을 찾기보다는 시장의 공급자와 수요자들의 협조만 요청한 셈이다.

지난 7일 발언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민생현안 대책 발언에는 이런 특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년, 지방 중소기업 취직하라"... 중소기업과 지방부터 살려놔야

"청년 취업은 아무리 토론하고 고민해도 우리 청년들이 패기를 가지고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중소기업과 해외 일자리에 더 많이 도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실업자들은 늘어나는 데 반해, 중소기업은 지금도 20만 명 넘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공무원시험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보이지만, 인재를 간절히 원하는 중소기업, 특히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 11월 16일 28차 라디오 연설) 

'눈높이를 낮추면 얼마든지 취업할 수 있다'는 말도 맞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왜 외면당할까? 특히 왜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이 외면당할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너무 크고 그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배경에는, 대기업 위주의 수출성장정책으로 대기업은 최고의 호황을 누리지만 중소기업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좀 잘된다 하는 중소기업도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 기술 빼앗기 등으로 언제든지 부도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젊은이가 중소기업, 특히 지방의 중소기업을 찾아가겠는가. 세종시 수정을 시도하면서 '집중의 효율'과 '서울의 국제 경쟁력' 목놓아 외쳤던 정부가 '지방의 중소기업에 취업하라'고 하는 건 모순이다.

'해외 일자리를 찾으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은 많지 않다. '가장 먼저 금융위기를 극복한 나라'라고 경제회복을 자랑한 정부가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가라'는 것도 모순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라'고 말하려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착취당하지 않을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방에 취업하라'고 하기 전에 '이제 지방도 발전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국가 최고지도자라면 먼저 자기 할 일을 해놓고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이 맞다.

"등록금 너무 싸면 교육 질 떨어져"... 싸질 가능성이라도 있나?

2010년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든든학자금' 대출 시행 첫날을 맞아 서울 남대문로 한국장학재단을 방문해 상담 중인 학생과 학부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0년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든든학자금' 대출 시행 첫날을 맞아 서울 남대문로 한국장학재단을 방문해 상담 중인 학생과 학부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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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학생 : "등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대통령께서 선거 나오기 전에 한나라당이 정책적으로 '등록금 반값 부담' 얘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 "제가 설명하겠다.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등록금 반이 아니고 가계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거였다. 현재 55%인데 2012년이면 20%대로 줄어든다. 등록금 액수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 "등록금 싸면 좋겠지. 그런데 너무 싸면 대학교육 질이 떨어지지 않겠나?" (2010년 2월 2일 한국장학재단 '든든학자금' 시행 현장방문)

'반값 등록금 공약'을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로 지키려 한 것은, 대통령 입장에선 등록금 낮추라고 대학을 압박할 필요도, 국가재정을 들여 장학금을 보조할 필요도 없는 획기적인 안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시행해도 가계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들지는 않았고, 대학생과 그 부모들은 더 높아진 등록금에 더욱 고통받고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는 게 아니라 대출 상환을 뒤로 늦추고, 대출 주체를 부모가 아닌 학생으로 바꾼 조삼모사에 불과했다.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국가의 고등교육지원이 미미하고 대학이 학생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 국가 평균 고등교육 예산이 GDP의 1.2%이지만 우리나라는 GDP 대비 0.6%에 불과하다. 많은 사립대 재단들이 수천억의 재단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등록금을 계속 올리고, 교육개선이나 장학사업에 돈쓰기를 꺼려하는 것도 큰 요인이다.

등록금이 너무 높은 게 국민 허리를 휘게 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은 되려 "너무 싸면 대학교육 질이 떨어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등록금이 지나치게 싸질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투의 말에선, 등록금 문제와 이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에 대한 어떤 진지함도 찾아볼 수 없다. 

"학원 가지 말고 EBS IPTV"... IT기술로 사교육비 문제 해결? 

이명박 대통령 "(학원비가) 한 달에 얼마 정도해요?"
주부 "월 20만 원 해요. 가계 부담이 너무 많이 돼요."

이 대통령 "학원 안 보내면 안 돼요? 대학 들어갈 때쯤이면 효과가 없을 텐데…."
주부 "방학을 이용해서 선행 학습을 안 해주면 학기 중에 못 따라와요."

이 대통령 "EBS나 IPTV에서 최고의 강사들이 와서 강의하거든요."
주부 "저희도 EBS 강의는 들어요. 그것만 갖고는 부족해요."

이 대통령 "완전히 개조합니다. 이것만 갖고도 될 수 있도록…."
주부 "그런데 지역마다 진도가 달라서 학교 진도하고 차이가 나서."

이 대통령 "IPTV는 다시 보기도 할 수 있고, 자기 수준에 맞춰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중략)… 한 달 전 것도 찾아볼 수 있고, IPTV는 일반 TV와 달라요. 물어보고 답변할 수 있는 게 달라요. 학생 개개인에게 질문 답변할 수 있는 게 IPTV 기능이에요. IPTV는 잘 발달돼 있으니까. 애가 셋이라고 했어요?"
주부 "중 2·3, 초등학생 이렇게 있어요. 학원비 때문에 힘들어요."

이 대통령 : "학원 보내니까 그렇지."(2010년 1월 20일 서울 창동 농협 하나로클럽 물가 현장점검)

정보기술로 가계의 학원비 부담을 덜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IPTV 사업자들은 박수를 치고 환영할 일이었겠지만, 해당 주부는 대통령이 제안한 '학원 안 보내기 운동'에 동참해야할지 고민스러웠을 터다.

자녀의 경쟁력을 담보로 '국가시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다. 또 자기 자녀가 남들보다 잘하게 만드는 게 사교육의 목표인데, 남들 다 보는 EBS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문제의 근본원인은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사회 구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깨지 못하면,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봤자 사교육비 문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대통령은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전국에 방송되는 족집게 과외방송을 보라'는 걸 대책이라고 제시하면서, 덮어두고 '학원 보내지 마라'고 했다. 이 나라 국가최고지도자가 사교육비와 입시과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국민 먼저 변하라고? 5000만보다 대통령 먼저 변해야

각종 민생현안의 해법을 제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민생현안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싼 것이 문제면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궁리하기보다는 '안 쓰면 된다', '대출을 해주겠다'는 식의 엉뚱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러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심각해지기만 한다.

또 하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보다는 '국민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한다는 점이다. 도덕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먹힐 얘기겠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평가를 받고 있지도 못하니 국민에 먹히지도 않는다. 그러니 대통령도 답답하고 국민도 답답하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변하는 것보다는 대통령 한 사람이 변하는 게 빠르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1년 반 남짓 남았다. 이 기간 동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민생문제 해결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정성 있는 해결책을 내놓는 변화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태그:#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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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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