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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제2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제2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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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인하 여론이 거셀 때마다 통신업계에서 꼭 내세우는 '반대 논리'가 있다. 신규 통신망 투자에 지장을 준다는 건 기본이고 요즘엔 가계 통신비 통계가 스마트폰과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소리들이 요즘엔 현 정부 '통신정책 수장'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입에서도 자주 흘러나온다.

통신비 '진짜' 싸다면서 기본료 내리겠다?

신문의 날을 하루 앞둔 6일 낮 최시중 위원장은 일간지 출입기자들만 모아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올해 주요 과제가 "통신요금 인하와 광고시장 파이 키우는 것"이라면서도 "우리나라 통신비가 진짜 싸다"고 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요즘 휴대폰으로 비행기표 사는 것, 은행 거래, 쇼핑 등 손 안에서 다 이뤄진다"면서 "거기 들어가는 교통비, 시간 등을 계산해 보면 통신비는 진짜 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통신비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요금 문제를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면서 "2005년 대비 물가가 지난해 117% 상승했지만 통신비는 93%로 다운됐다"면서 통신비 개념 재정립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통신이 전 산업을 포괄하는 복합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망고도화 등 통신사들이 투자도 해야 하는데 이익이 난다고 무작정 요금을 내리라고 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최시중, '진짜' 통신비 인하 의지 있나

이 발언들만 놓고 보면 최시중 위원장과 현 정부가 진짜 통신비를 내릴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달 28일 2기 방통위 취임식 때만 해도 분명히 "이동전화 가입비와 기본료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기 때문이다.

현재 방통위는 기획재정부, 공정위와 함께 통신요금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구체적 통신비 인하 방안을 5월 중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타 부처와 달리 통신업계 이해까지 충실히 '배려'해온 방통위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모양새다. 이른바 '통신비 개념 재정립' 발언이 그렇다.

올해 초부터 유가와 더불어 통신비 인하 요구가 거센 데는 지난 2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통신비 지출 통계도 한몫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 지출액이 13만8600원으로 2009년보다 4.7% 증가해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이동전화요금 지출은 가구당 9만5259원에서 10만3370원으로 8.5%나 늘었다.

최 위원장은 지난 2월 28일 통신3사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술 발전과 스마트폰 등장으로 전통적인 통신비 개념을 현실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단말기 값과 콘텐츠 사용료가 구별 안 된 통신비 항목을 개선하고 문화비 개념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문화부, 통계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통신업계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통신업계 이익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회장 이석채 KT 회장)는 6일 '통신요금에 대한 검토의견'에서 "가계 통신비에는 순수한 통신 요금과 무관한 단말기 할부금 및 부대비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통계상 통신비 지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값비싼 스마트폰과 무선데이터 사용 때문이지 전통적인 통신비 개념인 기본료나 음성통화료와는 상관없으니 통신비 인하 압박은 억울하다'는 '볼멘소리'인 셈이다.

지난 2월 28일 오전 방통위 주최로 열린 통신사 CEO 간담회 참석자들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석채 KT 회장.
 지난 2월 28일 오전 방통위 주최로 열린 통신사 CEO 간담회 참석자들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석채 KT 회장.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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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개념 재정립'은 요금 인하 차단 '꼼수'

최근 방통위와 통계청 실무자들이 한 차례 만나 통신비 분류 체계 문제를 논의했지만 통계청 입장은 단호하다.

유영주 통계청 사회복지통계과 주무관은 "스마트폰과 고액 요금제, 무선인터넷 비용 때문에 요금이 오른 것으로 나오는 거지 통계청 형식 분류 때문이 아니다"라면서 "이동전화 구입비는 국제기준상 '통신비'로 분류하도록 돼 있고 이동전화 요금 고지서에 포함된 문화 콘텐츠 이용료, 도서 소액결제 등은 이미 '통신비'가 아닌 '교양·오락비'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재 가계 통신비는 우편요금, 일반전화요금, 이동전화요금, 인터넷이용료 등 통신서비스 요금과 이동전화기, 일반전화기 등 통신기기 구입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방통위와 통신업계는 한술 더 떠 이동전화요금에 포함된 무선데이터 사용료를 인터넷 이용료에 포함시키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인터넷 이용료를 통신비가 아닌 '교양·오락비'로 빼자고 주장한다.  

김준동 방통위 통신정책기획과 사무관은 "기존 통신비 개념은 음성통화 위주였는데 스마트폰 등장 이후 무선 인터넷 사용이 증가해 '복합 문화비' 성격이 짙다"면서 "미국, 영국, 일본에서도 인터넷 이용료를 오락문화비로 분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KT경제경영연구소 역시 7일 '스마트폰 시대, 통신비에 대한 이해'라는 보고서에서 "과거 전통적인 음성 영역 외에 모바일 데이터 등 미래 통신 영역은 비용보다 편익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인터넷 관련 지출은 통신비로 분류되어 지속적으로 규제적인 관리를 받기보다는 문화오락비로 분류되어 진흥 혹은 권장되어야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인상 원흉으로 꼽혀온 통신비 때문에 자칫 인터넷 진흥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전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방통위나 통신업계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의도다. 통신비 인하 압력이 나올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방통위나 통신업계가 순수하게 인터넷 산업 진흥을 바란다기보다 당장 눈앞의 통신비 인하를 막아보자는 '꼼수'로 보인다.     

이통사 스스로 단말기 보조금과 무선데이터 사용료를 스마트폰 정액요금제에 뒤섞어 놓은 현실에서 통계청에서 단말기 값이나 무선데이터 사용료만 따로 분리해 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신비 원가 공개하고 단말기 출고가 거품 빼야

이렇듯 통신비 개념을 세분화할 경우 소비자들에게 착시 현상만 불러올 뿐이다. 어차피 소비자들은 통신비를 단말기 값이니 음성통화료, 무선데이터료, 문자메시지 요금 등 개별 단위가 아닌 총량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설사 통계청 분류 체계가 바뀌어 통신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전체적인 소비자 편익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현재 통신요금이 원가 대비 적정한 수준인지, 100만 원에 육박하는 스마트폰 출고가에 거품이 낀 건 아닌지, 마케팅비를 명목으로 보조금을 남발하는 게 맞는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영업 비밀을 이유로 통신요금 원가에 대해선 철저히 입을 다물어왔다.

급기야 공정위는 최근 이통3사와 제조사를 상대로 스마트폰 출고가와 보조금 문제 조사에 나섰고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 5일 스마트폰 요금제 담합과 끼워팔기 혐의로 이통3사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팀장은 "제4이동통신사에서 통신비 20~30% 인하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통신3사 연간 순이익이 3조 원이 넘는다는 건 엄청난 폭리"라면서 "일반 휴대폰 기본 요금을 폐지하거나 절반으로 깎고 스마트폰 요금제도 3만5천 원에서 2만5천 원까지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6일 오후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통신비 인하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이 발제하고 있다.
 6일 오후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통신비 인하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이 발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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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탈통신'?... 통신요금 의존 구조 벗어나야

이통3사는 그동안 정부와 여론 압박에 마지못해 통신요금을 찔끔찔끔 내렸다. 덕분에 2000년 월 1만 6000원 수준이던 기본료(표준요금제 기준)가 2008년 1만 2000원으로 떨어졌지만 이후 제자리다. 또 시민단체 압력에 초당과금제와 발신자번호표시 무료화 성과를 거뒀지만 정작 음성통화료는 10년 가까이 10초당 18원 수준에 묶여 있다.

시장 원리는 단순하다. 통신사업은 주파수 할당이나 통신망 구축 등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추가 비용이 적어 시간이 흐를수록 원가는 떨어진다. 2G 서비스는 2018년까지 종료를 앞두고 있고 3G도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기본료나 음성통화료도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게 맞다. 무선데이터 역시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1MB당 512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사용료도 '규모의 경제'에 맞게 떨어지는 게 순리다.

스마트폰으로 얻는 사회적 편익이 많다고 해서 값비싼 통신요금에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스마트폰 등장으로 정작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누구보다 이통사들 자신임을 지난해 실적이 보여준다. 이통사들도 정부의 인위적인 통신비 인하 압박 이전에 스스로 요금을 내리는 게 순서다. 말로만 '탈통신', '수익 다각화'를 외칠 게 아니라 과거 통신요금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부터 이번 기회에 뜯어고쳐야 한다. 


태그:#통신비 인하, #통신요금, #최시중, #방통위, #이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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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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