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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순 할머니 리포터가 대본 연습에 열심이다.
 이금순 할머니 리포터가 대본 연습에 열심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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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해드릴 소식은 우리 마을의 자랑인 철갑상어입니다."

할머니 리포터 1호, 이금순(70) 할머니는 빨간 옷차림 만큼이나 화사한 봄날, 낭랑한 목소리로 마을소식을 전했다. 할머니 리포터 제도는 전국 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강원도 화천군이 시행한 제도이다. 화천군 관계자의 말이다.

"오래전부터 인터넷 방송을 통해 뉴스 형식으로 군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행사 위주로 다루다 보니까, 좀 딱딱한 면도 있고, 마을 주민들의 관심도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래서 '마을 소식을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나서서 투박한 음색으로 소개하면 정겨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추진한 것이 할머니리포터 제도입니다. 소재 또한 마을 전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다' 등의 가벼운 내용이라면 참신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금순 할머니 리포터의 방송 녹화 장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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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할머니보다 못한 게 뭐냐구!"

2010년 3월 할머니 리포터를 오디션을 통해 뽑기로 하고 삼일1리 이장(길종훈씨)에게 마을에 계신 모든 할머니들을 소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참여하신 마을 할머니 30여 명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기 전에 작성한 대본을 나누어 드리고 필자를 포함한 화천군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앞에서 한 분씩 차례로 대본을 읽도록 했다. 발음의 정확성, 표정, 자신감 등을 중점적으로 체크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르신들은 일단 대상에서 제외시킨 반면, 투박한 어투와 토속적인 사투리를 쓰시는 분들은 가점을 부여했다. 세련된 말솜씨보다 꾸미지 않은 말투와 표정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 1시간여에 걸쳐 오디션을 마치자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모든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어르신들께서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하셔서, 심사하는 데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리포터는 마을별로 한 분만 뽑아야 하기 때문에 누가 뽑히더라도 축하의 큰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발표를 하겠습니다. 오늘 삼일1리 리포터로 선발되신 할머님은… 이금순 할머님이십니다! 축하드립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축하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금순 할머니는 "왜 내가 뽑혀. 난 못해" 하고 말씀하시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내심 기쁜 표정이 역력했다. 3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한 결과이니 기쁘실 만도 하다.

그런데 오디션을 볼 때 "나는 정말 못한다"고 하시던 한 할머니가 조용히 나를 부르시고는  "도대체 내가 저 할머니(이금순 할머니)보다 못한 게 뭐냐"며 따지신다.

"아까는 절대로 못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건 그냥 해본 소리지,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꽉 막혔어!"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요, 할머님께서 0.1점 차이로 2등 하셨어요."

적당한 거짓말로 노여워하시는 어르신을 겨우 달래드렸다.

카메라만 보면 자꾸 막히는 걸 어떡해

이렇게 마을별로 선발된 할머니 리포터들은 4명. 그동안 할머니 리포터들은 간척리 쌍둥이 송아지 탄생, 흰 사슴이 태어난 원천리 마을 이야기, 아토피에 좋은 약수터 소개, 김씨네 고추 농사 풍년 소식, 베트남 처녀 농촌 총각에게 시집오던 날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줬다.
  
대본 작성과 연출은 필자가, 촬영은 군정방송 아나운서인 이승희씨가 맡았다. 맨 앞 부분은 소개 멘트로, "안녕하세요. 저는 ○○마을 할머니 리포터 ○○○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우리 마을 소식은 △△△입니다"인데, 이 부분은 리포터 얼굴이 화면으로 나간다. 이후로는 리포터의 내레이션과 함께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고, 마지막 부분은 리포터가 "지금까지 ○○마을에서 리포터 ○○○가 전해드렸습니다" 하고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해서 지금은 관계자의 인터뷰도 삽입한다. 

이금순 할머니의 철갑상어 보도 촬영 장면.
 이금순 할머니의 철갑상어 보도 촬영 장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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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는 수도 없이 많다.

"참 잘하셨는데, 딱 한 번만 더 하시죠? 말씀하실 때 땅을 보지 마시고 카메라를 보시고 해주세요."
"카메라만 보면 말이 자꾸 막히는 걸 어떻게 해."

이처럼 한 번 두 번 같은 멘트를 반복해서 주문하다 보면 짜증을 내시며 안 하신다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을 억지로 설득해서 일을 끝내면, 리포터(할머니)도 힘드셨겠지만 촬영 스태프들도 녹초가 된다.

이렇게 촬영을 마치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보게 되니까, 처음에 소극적이던 분들도 "우리 마을 뉴스는 언제 찍으러 올 거야" 하고 요청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군정운영계획에 대해 화천군수와 인터뷰한 이금순 할머니.
 군정운영계획에 대해 화천군수와 인터뷰한 이금순 할머니.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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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한번 인터뷰하면 안 될까

올해 3월 30일, 삼일1리 철갑상어를 소개하기로 하고 1호 리포터인 이금순 할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그랬더니 대뜸 "철갑상어 소개하는 코너가 끝난 다음에 군수 인터뷰 좀 하면 안 될까?"라는 제안을 하신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정갑철 화천군수님께 보고를 드렸다. "이금순 할머니께서 군정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군수님께 질문하는 형식으로 리포팅을 하고 싶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야~ 이거 긴장되는데…. 어르신들이 활기차게 사시는 것 좋지" 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이금순 할머니가 준비한
군수 인터뷰 질문
1. 산천어축제가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지요.
2. 토마토축제를 더 크게 확대할 계획은 없는지요.
3. 사창리에 복지회관도 새로 지었으니 우리 노인들이나 부녀자들에게 영어나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앞으로 군수님이 만들고 싶은 화천의 모습은?
5. 마지막으로 군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이금순 할머니가 준비해온 질문 내용이 대단히 훌륭하다. 이어진 인터뷰 시간, 차분하게 질문을 하는 리포터나 진지하게 답변을 하는 군수나 모두 멋지다.

인터뷰가 끝난 후 군수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너무 훌륭하시다는 말을 연발했다.

"방송국에서 나온 젊은 리포터들은 사실 지역 현황에 대해 잘 모르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할머니 리포터는 나보다 지역 현황을 더 많이 알고 계시기에 답변하는데 진땀을 뺐다"는 것이 정갑철 군수의 소감이다.

이금순 할머니 리포터가 진행한 인터뷰 장면을 화면을 통해 확인한다.
 이금순 할머니 리포터가 진행한 인터뷰 장면을 화면을 통해 확인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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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할머니 리포터 제도가 알려지면서 지역 유선방송 GBN의 조영국 보도국장이 할머니 리포터 영상물을 보내주면 일주일에 한번씩 방송에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화천군은 2010년에는 4개 마을에서만 할머니 리포터를 선발한 데 이어 앞으로 전체 81개 마을을 대상으로 할머리리포터를 선발해 생생한 지역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농촌의 현실, 할머니 리포터 제도가 농촌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하나의 멋진 매개체가 될 것을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홍보담당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할머니 리포터, #이금순 할머니,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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