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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선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는 전교생이 30명도 안 되는 학교로 전근을 왔다며 군 내에서는 그래도 이 학교가 10여개 학교 중 인원이 중간 정도 되는 학교라며, 시골 학교의 아이들 수가 심각하게 줄어드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언니는 자기 아이라도 학교에 입학을 시켜야겠다며, 어떻게든 학교를 살려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같이 근무하는 교사들의 무관심한 태도 때문에 속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는 방과 후 수업과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었고, 언니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서  학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일부 교사들의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방과 후 과목을 정하며 언니를 제외한 모든 교사들이 일제고사를 대비해 수학 보충과목을 넣자고 했단다. 하지만 언니는 부족한 아이는 교사가 개인적으로 좀 봐주면 되고(학생 수가 많지 않으니),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기 힘든 시골일수록 방과 후 과목은 아이들의 적성과 취미를 키워주는 프로그램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의 반대로 언니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수학 보충 수업을 방과 후 과목으로 정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교사들은 그 수업을 자신들이 해야 효율적이라며 외부강사를 쓰지 말자고 하더란다. 언니는 "방과 후 수업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역할도 있는 거고, 예산도 따로 나오니 외부강사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설득했지만, 시골까지 먼 거리에 적은 액수를 받고 올 외부강사를 구하기가 힘들어 결국 교사들이 직접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교사들의 이기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고 강사료를 두고 불만을 토로하더라는 것이다. "외부강사가 방과 후를 하면 시간당 2만5000원을 주면서 왜 교사들이 하면 1만5000원 밖에 주지 않느냐?"고 따졌단다.

 

언니는 "교사들은 어차피 월급이 나오고, 그리고 수업도 근무 시간 안에 교과 과목으로 하는 수업인데 꼭 그렇게 돈까지 따져야 하냐?"고 했더니, 한 교사 왈,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보충 수업이다, 방과 후다 해서 다 따로 챙기는데 우리는 왜 그러면 안 되냐"며 되레 언니를 별난 사람 취급하더라는 데야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언니의 이 얘기를 들으며 어릴 때 선생님들 생각이 났다. 지금처럼 높은 수능 점수 받고 교대를 나오진 않았지만(당시는 고등학교만 나온 초등 교사들이 많았다), 한 반에 아이들 60-70명을 데리고 수업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글자를 제대로 모르는 아이나 수학이 뒤처지는 아이는 으레 따로 남겨서 책도 읽히고 수학 시험지 한 장이라도 풀려서 보내곤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학습에 있어서만큼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글자를 모른다 해서, 수학이 뒤처진다 해서, 혹은 아이가 며칠씩 결석을 해도 부족한 부분을 따로 챙겨봐 주는 교사는 드물다. 물론 교사들도 이 부분에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정규 수업 외에도 챙길 업무가 너무 많다', '아이들이 너무 바쁘다. 수업만 마치면 학원차가 와서 대기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남길 수가 없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떼고 오는 건 이제 기본이 아닌가?', '요즘 집에서 수학 학습지 한두 개 하지 않는 아이들이 어디 있는가?'하고 말이다. 하지만 수업 외 학습 보충지도(그것도 근무시간 이내에!)마저 강사료 없이는 하지 않으려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전교생 50여명 밖에 안 되는 시골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다. 아이를 시골 작은 학교에 전학시키고 3년 동안 보아온 대부분의 교사들의 모습에서 난 왜 사람들이 학교 교육에 미래가 없다고 하는지 가슴 깊이 이해 할 수 있었다. 삶에 철학이 없는 교사들, 세상을 바로 보는 눈과 의식이 없는 교사들, 정의로움도 열린 사고도 없는 교사들, 진정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교사들, 그래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일들이 판을 치는 학교현장. 학교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안정된 평생직장이며 생활 유지를 위한 삶의 방편이며 자신의 출세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몇 년 안 남은 정년에 무사 안일이나 명예욕에만 빠져 있는 교장,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라 무시하며 학부모들 앞에서 무책임한 공수표만 남발하는 교장. 어떻게 하든 교장이 되기 위해 10명도 안 되는 6학년들을 일제고사 문제 풀이로 내몰도록 담임을 몰아 부치는 교감, 또 이런 교장과 교감의 수족이 되어 점수 따기에만 골몰한 교사들, 시골 학교는 승진하기 위해 한두 번 거쳐 가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교사들, 한 반에 다섯 여섯 명도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 의욕 없이 대충 시간만 보내는 교사들까지. 이런 교사들이 태반인 학교 조직에서 선배 언니처럼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한 번 교사 생활해 보겠다고 설치는(?) 교사는 왕따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에겐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소금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할 교사들인데, 정작 본인들은 바르게 살지도 정의롭게 살지도 않는다. 그러니 더 이상 교직이 학원 강사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중고등학교가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고 그래서 교실이 무너진 지 오래다. 서울 경기 중심으로 진보 교육감이 주도해 혁신 학교 만들기가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학교에서 그 혁신을 주도할 교사가 없다고 한다. 우리 학교 교육의 문제가 뭔지 도무지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는 교사들이 무슨 혁신을 하겠는가?

 

해마다 입시철엔 수능 점수 잘 받고 학업성적 높은 아이들이 교대나 사범대로 대거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늘고 있고 명문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인 현실에서 안정된 직장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직만큼은 여기에서 고려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어찌 학교공부만 잘 한다고 수능점수만 잘 받았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 철학이 없는 사람, 사회를 바로 보는 눈이 없는 사람, 정의롭지 않은 사람, 열린 마음이 없는 사람, 그래서 많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 대충 생활인으로 개인적인 삶만 즐기며 살고 싶은 사람, 교사 직업을 간판으로 시집 잘 가고 싶은 사람,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무조건 하고 사랑해줄 마음이 없는 사람은 교직을 택하지 말기 바란다. 더욱이 출세가 하고픈 사람은 다른 직업을 가지시라고 충고 드린다.

 

추신; 선배 언니처럼 자신의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늘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생활의 중심인 선생님, 우리 둘째 아이 담임선생님처럼 늘 편견 없이 아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신 선생님, 늘 불우한 환경에 처한 제자를 챙기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사는 후배. 그런 괜찮은 사람들 정말 멋진 사람들만 교직에 있다면 누가 감히 우리 교육에 미래가 없다고 할 것인가. 그 분들에게 너무 고맙다.


태그:#방과후수업, #교사 아무나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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