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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 희망릴레이' 나선 광주 하남중 학생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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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아니면, 지레 앞서 있었던 어른들의 괜한 기우일 뿐일까. 

일본 열도를 휩쓴 대지진 참사로 국민들 모두가 하나같이 현해탄을 넘어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는 이때, 광주의 한 중학생들이 사뭇 숙연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당돌하게 깨트려 놓고 말았다.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지난 22일 오전 7시50분.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소재한 하남중학교 10여명의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피켓을 들고 등굣길 교문 앞서 섰다. '1000원이 역사를 바꿉니다'라는 피켓을 손에 쥔 이들은, 이 학교 3학년인 '인권지기반'과 토론동아리 '론(論)' 회원, 그리고 학생회 간부들.

지난 겨울방학 기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http://cafe.daum.net/1945-815) 사무실을 찾아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83) 할머니로부터 아픈 사연을 들은 바 있었던 이들이, 1주일여의 고민과 논의 끝에 등굣길 교문에서 '10만 희망릴레이' 홍보 캠페인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하남중학교 학생들이 지난 22일 등굣길 학생들에게 '10만 희망릴레이'를 홍보하고 있다.
▲ "1000원이 역사를 만듭니다" 하남중학교 학생들이 지난 22일 등굣길 학생들에게 '10만 희망릴레이'를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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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직접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 "스티커를 붙여 주세요" 학생들이 직접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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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어서 나만 알기에는 너무 안타깝고, 다른 친구들 역시 많이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많이 알려야죠."

'인권지기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현지(16) 학생이다.

"1주일을 준비했죠. 쉬는 시간은 다들 정신없고, 등굣길 교문에 서 있으면 우선 뭔지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을 것 같았죠.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아보고, 사진을 수집해 피켓도 만들고…".

묘안 또한 기발하다.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며 근로정신대에 대해 알고 있는지, 네 가지 중 한 답변문항에 스티커를 붙여 보도록 게시판까지 설치했다. 예를 들어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 공장으로 일하러 간 할머니들이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할머니들이다 ▲오늘 처음 들어봤다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등.

이미 교장선생님께는 전체 학생들이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 알수 있도록 1교시 수업 전 근로정신대 문제와 10만 희망릴레이를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하자고 건의해, 쾌히 승낙까지 얻어냈다.

학생들이 다양한 홍보게시판 등을 활용해,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고 있다.
▲ "99엔을 아시나요?" 학생들이 다양한 홍보게시판 등을 활용해,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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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끝나면, 각 교실에 모금함을 들고 들어가 한 번 더 얘기하자고 했죠. 어떻게 말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하고, 원고도 직접 짜보고, 연습도 해 보고…. 1교시 수업 전 전체 학급을 다 돌 수 없으니, 하루에 한 학년씩 3일간 진행하기로 했어요."

첫째 날인 이날 캠페인은 1학년 순서. 이들 학생들은 모금함을 앞에 놓고 다시 한 번 '왜 10만 희망릴레이에 나서게 됐는지'를 또박 또박 풀어냈다. 간혹 호주머니에서 1천원을 아까와 하지 않고 모금함에 넣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동전 한 두 개씩으로 대신했다.

1학년 5반 유세은(14)양은 "이건 아니다. 중국도 받았는데, 왜 우리만 못 받아야 하느냐"며 "그건 일본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가가 꿈이라는 그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언젠가 이런 문제로 글을 한번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10만 희망릴레이 모금 캠페인에 참여한 박사라(14)양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잘 몰랐던 것이 미안하다"며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1교시 수업 시작 전 교실 모니터를 통해 근로정신대 문제 등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10만 희망릴레이' 운동을 알리는 홍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저 흑백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학생들이 1교시 수업 시작 전 교실 모니터를 통해 근로정신대 문제 등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10만 희망릴레이' 운동을 알리는 홍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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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아직 어느 한쪽의 감정으로 기우는 게 현실. 그러나 이번만은 예외다. 이번 대지진 참사 앞에서만큼은 지난 과거마저도 뛰어넘는 따스한 인류애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인 열 셋에 미쓰비시 비행기 공장으로 끌려간 양금덕 할머니부터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고 했고, '시민모임' 역시 "하늘 아래 다 같은 생명"이라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런 상황에, 광주 한 중학교 학생들의 당돌함은 자칫 이런 분위기를 반감시키는 것은 아닐까? 

"지진 때문에 시기를 늦춰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죠. 저도 당연히 안타깝고 슬픈 일로 생각하죠. 그렇다고 계속 할머니들 아픔에 눈 감고 있으라고요?"

김한솔(16) 학생의 반문이었다. 어느 학생은 질문이 오히려 무색했다.  

"일본에 피해를 주자는 것 아니잖아요? 다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이지…."

현해탄까지 넘어 마음을 보태고 있는 그 고운 손길들. 그 손길들이 일본 지진 참사 분위기 때문에 더욱 말도 못하고 숨죽여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위로와 용기가 되면 얼마나 더 고울까.

1학년 학생들이 '10만 희망릴레이'에 참여하기 위해 용돈을 털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할머니들 우리도 함께해요" 1학년 학생들이 '10만 희망릴레이'에 참여하기 위해 용돈을 털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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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희망릴레이'란?
국민 10만명 1천원 투쟁기금으로...


"99엔에 침묵하는 것은 99엔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10만 희망릴레이가 내건 구호다.

99엔은 일본정부가 2009년 80대에 이른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내민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명목. 아이들 아이스크림 하나 값인 한화 약 1300원 정도다.

차라리 우리가 99엔 값을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투쟁에 보태, 99엔을 내민 일본정부의 손이 부끄럽도록 하자는 것. 미쓰비시는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비롯, 무려 10만명을 강제 동원한 최대의 전범기업. 국민 10만명이 참여하는 희망릴레이 모금운동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시민모임은 지난해 11월부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현재 역사적인 협상을 진행 중이며, 오는 5월에는 99엔 지급에 반발해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을 상대로 제기한 재심사청구 공개심리가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다. 앞서 일본정부는 지난해 7월, 99엔에 반발해 제기한 심사청구 건에 대해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9엔은 정당하다"며 기각한 바 있다.

무등산 문빈정사 앞을 지나던 한 등산객이 10만 희망릴레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 "1000원이 역사를 만듭니다" 무등산 문빈정사 앞을 지나던 한 등산객이 10만 희망릴레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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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다음 카페에 들리시면 '10만 희망릴레이' 후원계좌와 함께 자세안 참여방법이 안내 돼 있습니다. 062)365-0815



태그:#근로정신대, #99엔, #미쓰비시, #10만희망릴레이, #하남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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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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