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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초등학교마다 선거가 있다. 보통 2학년부터 각반에 반장 부반장을 뽑고, 전교 학생회장과 부회장을 아이들이 직접 투표로 뽑는 것이다.

 

큰아이가 2학년 때 어떨결에 부반장이 되면서 엄마인 내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자기 아이가 반장 부반장이 된 엄마는 아주 당연한 관례로 반 전체 엄마들의 반장 부반장이 되어야 했고, 한 학기 동안 학급의 온갖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며 담임 교사의 수족이 되어야 했다.

 

반장 엄마는 10만 원, 부반장 엄마는 5만 원씩을 내어 교실에 환경 미화용 화분을 넣어 줘야 했고, 담임교사의 책상과 걸상에 책상보와 방석을 새로 깔아 단장해 주어야 했다. 반 전체 엄마들의 상견례 자리에서는 반장·부반장 엄마가 점심값을 내야 했으며, 교실 환경 미화에 동원되어 가위질과 풀질을 해야 했다.

 

운동회 때는 떡과 음료수를 반 전체 아이들에게 돌리길 자진했고, 견학이나 짧은 공연 관람시에도 으레 담임교사들의 도시락과 음료수를 준비해 보냈다. 심지어는 교사들의 중간 휴식 20분간 먹을 간식을 챙겨 넣어주기 위해 각반 반장·부반장 엄마들이 순번을 정하는 일까지 있었다(나중에 어디선가 문제가 되어 이 부분은 학교 측의 거부로 취소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관례상 당연히 반장·부반장 엄마들이 해야 할 기본 일이었고, 심한 경우에는 아이 교실의 인테리어를 아예 반장 엄마가 도맡아 꾸민다 말도 있었다. 교실 커튼이나 블라인드 해주기, 교사 책상에 꽃과 커피 떨어지지 않게 챙겨 넣어주기. 한번은 교사가 학부모에게 소형 냉장고를 요구하다가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인근 학교에서는 교생 실습 나온 교대생들의 간식까지 엄마들이 집에서 칼국수를 끓여 나르는 웃기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복날에는 교실에서 엄마들이 삼계탕을 끓여 전 교사들을 대접하며 닭다리를 뜯어 드리는 서비스를 한다는 데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내 아이가 반장이면 반장이지 그것이 도대체 엄마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떤 교사는 아예 엄마가 일 나가시는 아이는 반장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는데, 도대체 아이들 선거를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건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반장·부반장에 뽑힌 아이들은 피자나 햄버거 학용품 등을 한 턱으로 돌려야 하는 게 아이들 사이에서도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실제로 할머니랑 둘이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 아이가 어쩌다 반장이 되었고, 그 아이는 한 학기 내내 한턱을 요구하는 아이들의 압력에 힘들어 한 일도 있었다). 그야말로 가난한 집 아이나, 부모가 이렇게 밀어주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아이는 초등학교 다니며 그깟 반장 한번 할 수 없는 세태인 것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는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자기 반을 위해 봉사할 반장·부반장을 직접 뽑아 보는 경험을 통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학교 수업의 연장이다. 공정하고 바른 선택으로 투표를 하고, 또 자신이 한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려고 노력도 해보는 배움의 장일 뿐이다. 순수한 아이들만의 잔치를 왜 어른들이 나서서 이러느냐고 매번 엄마들에게 항의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관례상 그래왔고 크게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유난스럽게 군다고 눈치를 주었고, 나중엔 아예 엄마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말았다.

 

그 다음해 아이가 3학년이 되었고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난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반장이 되면 엄마가 너무 힘드니 선거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니?" 선거에 나간다고 꼭 반장이 되는 것도 아닌 일을 두고, 어쩌면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일에 왜 엄마인 나의 힘겨움이 고려 사항이 되어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올해 큰아이가 6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아이는 대도시 큰 학교에서 전교생 50명 남짓의 시골 작은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곳에서도 며칠 전 선거가 있었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거를 흉내 내며 자신을 알리는 홍보용 포스터도 만들고 공약도 정하며 그들만의 잔치를 치렀다.

 

이곳 시골에서도 자기 아이만 생각하며(사실은 자기 아이도 망치는 일이지만) 설치는 부모는 있는 지라 투표 전에 반 전체 아이들에게 자기를 찍어 달라며 사탕다발을 돌린 아이가 있다고 한다. 어이없어 웃고 말았지만 그럴 때 교사의 따끔한 충고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건 정당하지 않은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우리 반을 위해 누가 가장 열심히 일을 할지 평소에 생활모습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것이 바른 일임을 말이다. 그리고 부디 아이들의 소중한 잔치에 부모가 춤을 추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또 그 춤에 교사가 장단을 맞추는 일은 영원히 학교 현장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태그:#초등학교반장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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