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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하고 있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조선 묘지명>전을 관람했다.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을 딱히 구분하라면 '묘지(墓誌)에는 주로 묻힌 이의 이름, 태어난 날과 죽은 날, 가족관계 등의 내용이 담기고, 묘지명(墓誌銘)은 묻힌 이에 대한 칭송, 찬양, 추념, 추도의 내용이 추가' 되는 경우라고 한다. 한마디로 묘지는 제목인 셈이고, 묘지명은 문장이 담기는 내용인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묘지(묘지명)는 관과 함께 땅에 묻힌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묘지명을 보면 '한 인물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서 이루어진 생활, 문화,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의 기록'이라고 전시의 취지에 밝혀 놓고 있다.

 

 

고려시대의 묘지명은 돌에 새긴 것이 많았고, 조선으로 넘어오면서는 주로 도자기에 글을 새겨 구워서 만들었다. 조선시대 후기로 가면서는 도자기 묘지명을 제작하는 계층이 다양해져서 왕실이나 사대부에만 그치지 않고 하급관리, 중인에까지 확산되었다 한다. 

 

전시실에는 묘지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설명되어 있었다. 일단 묘지는 대개 아들이 짓게 되어 있지만, 다른 가족이나 친인척, 혹은 지인 등에게 지어달라고 청하기도 한단다. 묘지명은 묘지를 짓고, 도자기 판에 새기고, 가마에 굽고, 탁본을 떠 기록을 남긴 후에 관과 함께 땅에 묻히는데, 이 모든 과정은 장례기간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중에 합장을 하거나 이장을 할 때 새롭게 만들어 넣기도 한단다.

 

 

조선시대의 묘지명은 형태가 다양했다.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묘지명은 16절지 크기 정도의 서책형식으로 만들어 권수를 매겨 놓기도 했고, 둥근 원반 형 묘지명, 큰 단지의 묘지에 작은 단지 묘지명을 만들어 그 안에 앉힌 것, 네 귀가 달린 사각 형 겉에 묘지명을 적어 놓은 것, 등등, 어떤 것은 영락없는 접시나 사발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묘지를 짓는 것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일이나 생전에 본인이 미리 지어 놓은 묘지명도 보인다. 묘지명은 유명한 사람 것만 있지 않았다. 일찍 죽은 남편을 위해 아내가 한글로 쓴 한 장의 편지 글도 있고, 벽돌 한 장에 짧은 시로 안타까움을 새겨 넣은 것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남은 자로서의 예의를 갖추어 짧은 글이나마 추모의 정을 남긴 것이다.

 

 

사람의 생졸 년대와 가족관계가 쓰여 지는 '묘지'는 모든 죽은 이들이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추모의 정을 담뿍 담아 적은 '묘지명'은 사람마다 다르다. 묘지명에는 비록 주관적인 편린들이 새겨질 지라도 그 안에는 당사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들어 있어 생전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장례문화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은 드물게다. 그러다보니 이런 장례의례들이 있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또 시대에 따라 장례문화가 변천되어 왔을 터, 나 역시 이런 의례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나마 이번 전시를 통해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묘비명)과 무덤 안에 넣는 묘지와 묘지명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선대들의 삶이 면면히 기록되어 있는 묘지명을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싶었다. 필부의 삶으로 언감생심 묘지명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만 하면 잘 산 인생'으로 마무리되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전시회를 둘러 본 지인들은 만약에 자신들의 묘지명이 만들어진다면 이러 저러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한마디씩 했다. 그 속에는 '열심히 살아야 겠구나'하는 다짐들이 들어가 있었다. 국립박물관의 <조선묘지명> 전시는 4월 17일까지 한다.


태그:#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묘지, #묘지명, #장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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