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구제역 폭탄 맞은 마장동 축산물 시장 구제역 여파로 인해 손님들 발길이 뚝 끊긴 마장동 축산물시장. 국내최대 축산물시장이라고 믿기에는 지나치게 한산하다.
ⓒ 구태우

관련영상보기


구제역이 발생한 지 102일째인 지난 10일,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초토화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축산물시장이라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산했다.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만 해도 물건을 떼러 온 소매상인들과 손님들로 북적거렸겠지만, 지금은 찾아오는 손님들이 뚝 끊겨 시장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상인들은 고무장갑을 벗고 멍하니 앉아있거나, 쪼그려 잠을 자고 있었다. 심지어 장사가 안 돼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상인들도 있었다. 몇 군데의 가게에서 고기를 손질하는 직원들을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지날 수록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었다.  

네 시간이 넘도록 시장을 돌아다녔지만, 물건을 사는 이들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손님은 온데 간데없고, 지방에서 돼지를 싣고 온 트럭 몇 대와 집에 가는 고등학생들이 전부였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예전에는 사람들로 꽉 차서 차도 못 지나갈 정도였지만 구제역 여파로 오는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30년 동안 이렇게 장사가 안된 적이 없어"

국내최대 축산물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한산하다.
▲ 마장동 축산물시장 국내최대 축산물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한산하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장사가 잘 되긴 뭐가 잘 돼. 장사가 안 된다니까. 구제역 일어나고 마장동 시장 다 죽었어. 사람들이 폭탄 맞았는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니까. 시장에 사람이 없어"

30년 동안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소 내장을 판매하는 김아무개씨는 '경기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김씨는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요새처럼 장사 안 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구제역 전만 해도 하루 동안 지름 1m가 넘는 대형 바가지 5통 분량의 내장이 나갔지만, 요새는 하루에 한 통도 팔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손님이 없으니 하루 내내 가만히 앉아 있다 들어가는 날들이 허다하다고 했다.

옆에서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가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50대 상인은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매출이 80% 이상 급감했다고 했다. 정부가 300만 마리 넘게 돼지를 파묻었기 때문에 들어오는 물량이 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 돼지가 들어왔지만, 이제는 2~3일에 한 번씩 들어온다.

돼지공급이 반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에는 삼겹살 1kg이 6500원에 판매됐지만, 지금은 1만7000원~1만8000원에 판매된다. 두 배 이상 오른 삼겹살 값에 축산물 시장에 오는 손님들 발걸음도 뚝 끊겼다.

"일년 중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구정 때에도 죽 쒔다. 돼지고기가 서민들이 주로 먹는 음식인데, 값이 두 배 이상 오르니 사람들이 안 먹고 마는 것 같다. 식당도 고기값을 올리니 장사가 안 돼고, 식당주인들도 고기를 사러 오지 않는다"

돼지고기 판매점 상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상인은 "축산농가야 정부가 보상금이라도 지원해주지만, 우리는 그것조차 없다"고 하소연했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구제역 여파로 수입은 없고 실업자 늘어

구제역 여파를 맞은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찾는 손님이 없어 평소보다 3~4시간 빨리 장사를 접어 가게는 한산하기만 하다.
▲ 마장동 축산물시장 구제역 여파를 맞은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찾는 손님이 없어 평소보다 3~4시간 빨리 장사를 접어 가게는 한산하기만 하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축산농가도 망하고, 재래시장도 망하고, 고깃집도 망했어.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니까. 지금 시간이면 엄청 바쁠 시간인데, 앉아서 술 먹고 있잖아"

쇠고기와 선지를 판매하는 이성종(58)씨가 기자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한창 장이 바쁠 시간인 오후 4시, 시장 한 구석에는 상인들 5~6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 옆에는 빈 소주병 7개가 놓여 있었다.

"큰 놈은 국민대 다니고, 작은 놈은 수원대 다녀. 애들한테 돈 엄청 들어가. 마누라는 돈 못 벌어온다고 구박 엄청 해. 집에 들어가면 돈부터 달래. 돈이 어딨어. 자릿세도 못 내고 있는데. 술만 먹고 산다" 

이씨는 불콰한 얼굴로 속 안에 있던 말을 털어놨다. 구제역의 여파는 시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일자리도 뺏어 갔다. 돼지를 손질하는 일감이 떨어지니 종업원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장사가 잘 되던 시기에 하루에 돼지 열 마리씩 팔던 가게는 지금은 하루에 한 마리도 못 파는 실정이다. 종업원을 10명 두고 일했지만, 지금은 8명을 해고시켜 2명 밖에 없다.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일찍 문을 닫고 들어가는 상인들도 많았다.

보통 오후 6시~7시에 가게 문을 닫지만, 요즘은 3~4시간 일찍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간다. 기자가 직접 세어본 결과 오후 5시경 130개의 가게 가운데 57곳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있던 한 상인은 "요즘은 다들 일찍 들어간다. 뭐가 있어야지 장사를 할 거 아니냐. 시장에는 장사를 그만 둔 사람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4대강 만큼 구제역에 신경 썼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경기도 이천 대월면 송라리, 군량리 두 곳의 매몰지에서 지난 1월 11일 2천여마리의 돼지를 산 채로 구덩이에 밀어 널어 살처분하는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경기도 이천 대월면 송라리, 군량리 두 곳의 매몰지에서 지난 1월 11일 2천여마리의 돼지를 산 채로 구덩이에 밀어 널어 살처분하는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제공

관련사진보기


"정부에서 초동대처를 잘못했어. 4대강 신경쓰는 것만큼 구제역에 신경을 썼으면 이렇게 안 됐지. 구제역 걸린 돼지만 묻고, 나머지 돼지는 잡았어야지. 한 마디로 안이한 대책을 한거지. 세상에 돼지를 저렇게나 많이 묻었으니 가격이 안 오를 수가 없지. XX놈들이야 XX놈."

정부의 초동대처에 대한 상인들의 의견을 묻자 정부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한 상인은 '돼지값이 폭등'한 원인으로 정부가 구제역이 확산되던 시기에 구제역에 걸린 돼지를 묻고,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돼지는 도축했어야 했는데 무조건 돼지를 매몰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돼지고기를 70도 이상에서 가열하면 구제역 걱정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발표해 놓고, 왜 돼지를 일괄적으로 매몰했냐는 것이 상인들의 비판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래로 346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매몰했다. 이런 처분을 놓고 정부가 구제역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매몰했어야 하는데, 무대포식으로 살처분을 했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또한 무차별적인 살처분 결과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로 인해 2차 환경오염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돼지고기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6월까지 현행 관세율 25%인 수입 돼지고기에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 한 상인은 "유럽의 돼지수입업자들만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구제역 폭탄' 맞은 마장동 시장, 상인들 한숨만 가득

축산물시장의 상인이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 마장동 축산물시장 축산물시장의 상인이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 구태우

관련사진보기


구제역 파동으로 축산물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시장 분위기는 초상집과 다름 없었다. 보통 4~5월에는 황사로 인해 돼지고기 판매가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이 활기차지만, 올해에는 천정부지로 솟은 돼지고기 값으로 인해 4~5월 역시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제쯤 축산물 시장이 예년과 같이 활기를 찾을 것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상인들은 부정적으로 답변을 했다. 이씨는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 농가는 6개월 동안 가축을 기르지 못 한다. 돼지가 새끼를 낳는 데 3개월이 걸리고, 키우는 데 3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현 상황이 안정되려면 최소 1년은 더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이씨는 "세월이 흐르면 나아지겠지"라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제역이 발생한지 100일이 지났지만, 서울시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상인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구제역 여파에 아무런 대책없이 한숨만 쉬고 있었다.


태그:#구제역, #마장동 축산물시장, #축산농가, #4대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