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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재개발 지역 철거위기에 놓인 칼국수집 '두리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두리반 문제 해결을 위해 야외레슬링경기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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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흑백 텔레비전에서 프로레슬링 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면 아버지는 마당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다섯 딸 앞에서 허공에 대고 박치기 흉내를 내셨다. 다섯 딸과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드라마나 틀어라' 야유를 보냈지만, 고집을 꺾지 않으시는 날엔 가족 모두 김일 선생의 '박치기 예술'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야 했다. 

타이거 마스크를 쓴 거구가 무지막지하게 김 선생을 코너에 몰고 공격하면 집안 여자 모두 하나가 되어 타이거 마스크를 비난했다. 링 밖으로 나온 타이거 마스크가 관객까지 위협하면 '반칙! 반칙!'을 외치며 김일 선생을 응원했다. 70년대 일요일 저녁, 흔한 풍경이었을 터.

80년대 프로야구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레슬링은 추억의 운동경기가 됐다. 영화 <반칙왕>으로 살짝 주목받긴 했지만 한국에선 비인기종목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한 젊은 악당 레슬러의 사회적 발언으로 다시 레슬링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것도 최첨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서다. 국내 오직 하나뿐인 악당 레슬러 김남훈(37). 그는 하루 60개 넘는 멘션을 쏟아내며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며,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동교동 두리반 칼국수집 문제 등에 발 벗고 나섰다. 420일째 농성 중인 두리반 문제 해결을 위해 야외레슬링경기도 계획 중이다. 섭외도 경기장 설치도 모두 스스로 자원봉사한다.  

스물여덟 늦깎이로 데뷔한 악당레슬러

스물여덟 늦깎이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김남훈 선수는 프로레슬링경기 챔피언벨트를 따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그밖에 UFC 격투기 해설가, 파워블로거이자 IT전문가, 7권의 책을 낸 저자, 커피숍 프렌차이즈 대표이사 등 일일이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일을 한다.

게다가 트위터로 접한 사회문제에 침묵하지 않고 사회적 발언에 적극 나서며 뒤로 숨지 않는다. 트위터 팔로어 수는 나날이 증가하지만, 일은 점점 줄어들어도 그 발언을 죽이지 않는다. 왜? 옳은 게 맞는 것이니까!

그는 최근 <청춘매뉴얼제작소>라는 책도 냈다. 20대에게 보내는 인생편지다. 연말엔 30대에게 보내는 글도 쓸 작정이다.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해 본 일은 없지만, 무엇이든 함께 나누고 모으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감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오후 철거 위기에 놓인 두리반칼국수집에서 김남훈씨와 만났다. 그를 알아본 사장님은 인터뷰에 동석해 420일째 계속 되는 두리반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하셨다. 전기는 끊겼고 촛불로 연명하다 진보신당에서 태양광 전지를 연결해줘 흐릿한 백열전등을 쓰고 있다며 끝모를 싸움을 걱정하고 있었다.

재개발 시행사와 철거업체 등은 얼마면 되겠느냐 금액을 묻지만 두리반이 원하는 건 다시 그곳에 두리반칼국수집 문을 여는 것이라며 협상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김씨는 따뜻한 봄날이 오면 두리반 인근에서 야외레슬링경기를 열고 이 문제의 사회적 쟁점화를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용산 남일당처럼 철저히 외면당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재개발의 이름으로 쫓겨나는 철거민 문제를 개탄한 악당 레슬러의 '링 밖 선행' 그 실천이 궁금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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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리반 문제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처음엔 그저 파편적 정보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점차 트위터를 통해서 여러 의견을 듣게 되면서 뭐가 잘못인지 알게 됐지요. 두리반칼국수집이 있는 이곳은 마포구 동교동이잖아요. 심심산골이 아닙니다. 그런데 관공서와 대기업이 함께 손을 잡고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으니 나가시라, 안 나간다? 전기를 끊고 생존권을 위협합니다. 이게 상식에 맞을까요?

작년 11월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얘기도 들었는데, 정말 화가 났어요. 대명천지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황당한 상황을 알릴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레슬링 경기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 지난해 11월 직접 두리반을 방문하셨다고 했는데, 첫 방문의 느낌이 어땠나요?
"전기가 끊겨 내부가 꽤 어두웠어요. 층층계단엔 초와 촛농이 즐비했고.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잖아요? 서울시내 한복판이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황당했죠. 또, 매번 20대가 나약하고 사회문제에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두리반 현장에 와보니 20대 활동가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오면서 스테레오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안타까웠지요. 여기 계신 두리반 사장님이 잘못한 게 없잖아요? 그런데도 사회적으로는 마치 잘못한 게 많은 사람처럼 취급받지요. 이 분이 대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저는 그런 게 참 화가 나요."

노개런티 파이트머니 빵원에 도전하는 챔피언

- 봄이 되면 두리반에서 레슬링경기를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왜 이런 기획을 하셨나요?
"두리반 사태를 프로레슬링 경기에 접목하면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레슬링이라는 경기 자체에 선악구도가 있잖아요. 이 선악구도를 두리반 문제에 적용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솔직히 여기 계신 활동가 분들이나 사장님 입장에서는 굉장히 절박한 문제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 없는 이슈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도심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 문제는 정말 중요한 사회 이슈라고 생각해요. 용산처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그렇지만 이걸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엔 늘 양비론이 존재합니다. 양쪽 모두 폭력적이다 이거죠 뭐. 용산 남일당 사태 때도 경찰특공대나 철거반원도 문제지만 망루를 세운 철거민도 잘한 거 없다, 뭐 이런 식 아니었나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상당한 왜곡이 있다고 봐요. 사실 철거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오갈 데 없어져 어디로 가라는 거냐 시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하튼 프로레슬링이라는 형식을 빌려 두리반 문제를 세상에 발신하면 사람들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프로레슬링 경기는 어떻게 치르게 되나요?
"처음에는 그냥 매트만 깔고 할까? 링이 없으면 선수들이 많이 다치겠지? 선수만 있고 레퍼리(심판)는 없다면?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까 점점 정규대회 형식이 돼 버렸네요? 하하하하. 스펙이 점점 쌓이면서 일이 눈덩이처럼 커졌다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뭐,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잘 해야죠. 하하하.

마침 슬슬 날이 풀리고 있으니 곧 날짜도 잡을 생각이에요. 이미 선수 3명에 레퍼리까지 동참하겠다고 나섰어요. 4명 모두 공짜로 출연해 준다고. ^^

솔직히 저도 레슬링 선수인데 같은 선수 입장에서 노 개런티로 나오라고 하기가 좀 미안했어요. 이게 말이죠. 프로레슬링이라는 경기가 '빤쓰'만 입고 남자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경기잖아요. 더군다나 경기장도 아닌 야외에서 '빤쓰'만 입고 레슬링을 한다는 게 상당히 좀 그래요. 음…. (웃음) 그런데 선뜻 나서주셔서 저로서는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그래요."

- 선악구도라는 설정,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현재 420일 넘게 농성 중이신데 대기업과 관공서는 두리반 측에 얼마면 되느냐, 나가달라, 협상을 하자, 안 되면 철거업체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강제철거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다, 압박하고 있지요. 칼국수집을 운영해오던 사장님 내외는 황당하게 된 거죠. 재개발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셨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프로레슬링에 접목해 보여드리는 거죠. 악당 레슬러와 선역 레슬러의 대결이라고 해야할까요. 제가 악당 레슬러를 맡게 될 텐데, 가슴에 GX건설이라고 써 붙이고 선역 레슬러를 향해 무기를 쓰면서 반칙하고 나쁜 짓을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거예요. 그럼 반대로 선역 레슬러가 당하면서도 이기겠죠. 어? 그럼 내가 지는 건데? 그럴 순 없는데. 하하."

- 이번 경기에 함께 출전하는 선수들은 어떤 선수들입니까.
"윤강철 선수는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챔피언이에요. 2006년 윤 선수가 데뷔전을 치를 때 한 게임당 2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기는 노 개런티로 뛰지요. 파이트머니? 빵원입니다! 감남석 선수는 일본에서 유학한 유학파죠. 이분도 마찬가지로 노 개런티에 파이트머니 빵원입니다. 하하. 레퍼리는 일본인이에요. 이번 경기 때문에 일부러 한국에 오시는 건대, 오신 김에 관광도 하시겠다고 하하하. 물론 자기 돈으로^^. 하하하하."

- 두리반에서 레슬링 경기가 열리면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될 것 같아요.
"경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기자와 PD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와요. 트위터를 통해서는 의사 선생님도 돕겠다고 나섰어요. 혹시 부상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와서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자원봉사입니다. 현장 진행요원을 하시겠다는 여성만도 벌써 4명이나 신청해 주셨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VJ는 이 레슬링경기의 예고편과 본편을 촬영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뭐랄까 선을 향한 집합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선은 선끼리 계속 힘을 모아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자비로 경기를 치르는데 소규모로 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러게요. 이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려서요. 푸하. 그래도 기왕에 하는 것 제대로 해야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사회적 의제를 걸고 프로레슬링경기를 하는 건 아마 처음일걸요? 그러니까 잘 해야죠. 링 설치, 인건비 등등 비용이 들어가지만 모금은 따로 안 할 생각이에요. 그냥 제 선의로 두리반 문제가 잘 해결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을 뿐입니다."

"최고의 악당레슬러는 욕 아니고 칭찬이에요"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이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420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을 방문해 유채림 사장을 안아주며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이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420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을 방문해 유채림 사장을 안아주며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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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슬링 경기에서 악당은 어떤 존재예요?

"악당레슬러는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해요. 무기를 쓰고 반칙을 하고. 타인에게는 엄청 나쁜 짓을 많이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악당레슬러입니다. 악당레슬러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인물이죠. 그 정도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이 링 안의 악당레슬러인데, 링 밖의 세상에서도 악당은 늘 존재하죠. 홍대 청소노동자와 두리반 문제에도 악당이 개입돼 있잖아요. 하하하. 선인들을 못 살게 구는, 재개발의 논리로 무조건 쫓아내려는, 그런 무리들이 모두 사회적 악당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명박 대통령은 아주 훌륭한, 존재감 있는 악당레슬러죠. 링에서 보자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아주 최고의 악당레슬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악당레슬러. 이거 칭찬입니다. 욕 아니에요. 하하하하."

-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에도 관심 많으시던데, 지난 겨울 통닭 10마리도 배달하셨죠.
"아, 열 받잖아요? 한 끼 식사에 300원! 이게 말이 되나요? 열 받아서 일단 통닭 10마리를 쐈죠. 크크크. 그 다음에는 바자회나 출판기념회에서 나온 수익으로 도와드렸는데, 솔직히 액수는 얼마 안 돼요. 밝히기 부끄러운 액수죠. 그냥 저처럼 소액기부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참했을 뿐이고. 솔직히 제가 제일 열 받았던 건 홍대 총학생회의 태도였어요. 학교 측을 두둔하는 학생회라…. 그래요, 모든 걸 다 이해한다고 칩시다. 돈 300원으로 한 끼 식사가 해결될 수 있는 건가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홍대 총학은 계좌번호를 불러라. 회식비 3000원을 쏘겠다, 10명이서 맛있게들 잡수시라! 열 받지 않나요?"

- 트위터를 보면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세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나요?
"살다보니 사람들은 약자보다 강자 편에 서는 걸 더 좋아한다고 느끼게 됐어요. 약자 편을 들려면 논리력도 있어야 하고 이성적 분노도 필요하잖아요. 강자의 논리는 매트릭스처럼 힘센 사람 그냥 쫓아가면 되거든요. 강자에 붙는 논리는 본능에 아주 충실한 논리죠. 쉬워요.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반대로 약자 편에 선다는 건 냉철한 논리가 필요해요. 이 사람을 돕지 않으면 나도 언젠가는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모순을 발견하고,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문제는 대한민국 12년 정규교육기간 이런 논리를 안 가르친다는 겁니다. 초중고 12년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하고, 대학을 가면 취직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스펙만 쌓으면서 진짜 공부를 못하게 되지요. 게시판에 욕만 하는 분노는 별 사회적 의미가 없잖아요. 행동으로 연결이 돼야 하는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분노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못 배우니까 점점 '홍익대 총학스러운'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 트위터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시니 좌파라는 별명도 붙는 것 같은데, 만족스러우신가요?
"좌파레슬러? 우파레슬러? 저는 이런 게 너무 웃기다고 생각해요. 아니,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 가지면 좌파인가요?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서 그건 문제다, 지적하면 몽땅 좌파예요? 그럼 불의에 눈 감으면 모두 우파예요? 그거 우파한테 욕 아닌가요?

제가 얼마 전 이대목동병원에 있는 여덟살 아이에게 성분 헌혈 했는데요. 그 아이가 좌파여서 제가 헌혈을 했을까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물에 빠진 사람 구하는 데 좌우가 따로 있습니까. 그건 문명인의 도리죠. 동물과 사람의 차이가 거기에 있는 거 아닌가요? 나 참!"

'프로레슬링의 전설' 헐크 호건을 동경한 소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재개발 지역에서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 건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재개발 지역에서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420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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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요?
"제 전공이 금속공학이에요. 학생운동도 안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사업을 하고, 또 레슬링 선수가 된 뒤로 상당히 많은 사회 경험을 했습니다. 을로 살다보니, 을의 눈물도 알게 됐고. 또 갑에게 많이도 뜯겼지요. 전 술도 안 먹지만 룸살롱에 가서 갑을 위해 280만 원 카드값을 내기도 했고.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운동선수가 갖는 불합리한 신분체계도 알게 됐고.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랬어요."

- 스물여덟에 레슬링선수가 되셨는데 좀 늦은 나이에 도전하신 거잖아요? 왜 레슬링선수가 되고 싶으셨나요? 혹시 김일 선생님이 멋있어서?
"전 WWF세대(World Wrestling Federaton, 프로레슬링세계연맹)라서요. 물론 김일 선생님도 존경하지만요. 하하. 소년은 언제나 강한 걸 동경하잖아요. 어려도 수컷으로서의 자각은 있어 가지고, 하드웨어는 발달 못했지만 로봇 태권V 같은 초월적 존재를 동경하게 되지요.

저 역시 그랬는데, 전 '프로레슬링의 전설' 미국의 헐크 호건(2005년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어요. 너무 멋있었고. 참 강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건 꿈이었고, 현실은 IT회사 다니는 회사원이었죠. 그러다 2000년 문래동에 있는 <딴지일보>에 다닐 때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어요. 데뷔는 2001년에 했죠. 그러고 보니 올해가 벌써 10주년이 되는 해네요."

- 실제 직업이 되니까 어땠나요?
"프로레슬링만으로는 생계가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일도 겸업해야 했지만 링에 섰을 때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첫 경기 때 아!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을 이뤘구나 하는 성취감, 참 대단했습니다. 그렇지만 뒤통수 한켠에선 아! 난 헐크 호건은 안 되겠구나 하는 좌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요.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면서도 역시 난 서태지는 아니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하하하."

- 늦깎이 프로레슬링 선수의 삶이 만만치는 않았을 것 같아요.
"격투기 종목 자체가 굉장히 험난해요. 게다가 프로레슬링은 상대와 싸우면서 또 관객의 시선과도 싸워야 하거든요. 관객의 허를 찌르는 게 프로레슬링의 참모습인데 거기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전 레슬링에 입문하면서 두 번 죽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내가 사회인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구나 하면서 죽었고, 육체적으로도 링에서 한번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왔을 정도였으니까 하드웨어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겼죠. 레슬링 입문 초창기에는 아주 힘 많이 들었어요."

- 어떤 게 그토록 힘들었나요?
"엄격한 선후배 관계. 이건 영화 그대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소림사 영화에 나오는 그대로죠. 어쩌면 그보다 더 심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 그런 문화를 레슬링 후배들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굳이 그 시스템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요. 예를 들어, 남자는 고생해봐야 인생을 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다, 운동선수는 맞아야 운동을 잘한다? 전혀 논리적 개연성이 없는 얘기죠. 가난해야 글 잘 써진다? 그런 게 어딨어요!"

- 프로레슬링 선수라고 하기엔 부가 직업이 너무 많으십니다.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격투기 해설자, 글을 쓰는 작가, 커피숍 프렌차이즈 사장님, IT 전문가 등등. 어떤 일이 가장 애착이 가세요? 역시 레슬링?
"그럼요. 레슬링이요, 상실감도 있지만 성취감이 상당한 종목이에요. 기업 회계에도 대차대조표가 있듯이 인생에도 대차대조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 잃는 상실감이 있다면 얻는 성취감도 있다, 이런 건대요. 그런 걸 계속 확인하는 작업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차대조표로 따져보면, 역시 전 프로레슬러일 때 가장 행복합니다."

- 경기 중 잘못해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물론 책을 쓰거나 어떤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도 설레고 행복하지만, 레슬링처럼 머리와 몸, 정신력 온몸과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모든 달란트를 다 쏟아 넣어야 하는 게 레슬링이거든요. 5~10분 사이에 관객 2만 명을 링에 집중시키고 움직여야 하는데, 제가 그걸 컨트롤하고 있을 때 그 느낌이 정말 대단합니다. 대단한 쾌감이 있어요."

- 한국에선 레슬링 경기가 사양산업이 됐다고들 하잖아요. 경기도 잘 안 열리고.
"경기가 잘 안 열리는 이유는 레슬링 경기가 사양산업이 됐기 때문이 아니라 야구나 축구 같은 프로스포츠가 상당히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전히 레슬링은 팬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상업적 장점이 있는 종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앞으로 좀 더 잘해야겠지요."

- 국내 레슬링 선수가 몇 명 정도 되나요?
"프로레슬링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30여 명 돼요. 국내에선 경기가 자주 안 열려서, 저도 일본진출 해 챔피언이 되기도 했지요. 올 1월 챔피언벨트를 도로 풀어놓고 오긴 했지만요."

대통령과 동급인 악당레슬러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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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 악당레슬러이신데, 경기 중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관중의 야유와 비난, 욕설 등 악당레슬러에게 쏟아지는 무더기 비난, 감당이 안 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선역에 비해 악역레슬러는 당연히 욕을 먹어야죠. 링 위에서는 흉기를 쓰고 연장을 들고 반칙도 하고 그러니까요. 정말 미워하는 분도 있지만 그 캐릭터를 이해하는 분들이 더 많아요.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당연히 많지요. 그래서 제가 프로레슬링에서 악역으로 설정된 뒤로는 가족을 경기에 부른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아무래도 부모나 친족 입장에서는 좀 그렇잖아요. 한국에 야생반달곰이 30마리, 대통령이 1명이죠? 마찬가지로 프로레슬러가 30명, 악당레슬러는 단 한명입니다. 저는 대통령과 함께 아주 존귀하고 진귀한 존재인 거죠. 하하."

- 트위터를 통한 사회적 발언 때문에 일상에서 손해 보는 일은 없으세요?
"음…. 팔로어는 늘어나는데 일은 줄어드네요. 하하하하."

- 책을 7권이나 내셨잖아요. 청춘이라는 장르에 도전하는 사람이 몇 없는데 어떻게 여기에 도전할 생각을 다 하셨나요?
"그러게요. 청춘이라는 장르는 원래 김홍신, 이외수 선생님처럼 엄청난 필력이나 도력이 있는 분. 아니면 반기문, 고승덕, 홍정욱처럼 <7막7장> 급은 돼야 하는 건대, 저 같은 악당레슬러에게 책을 낼 기회를 주신 출판사가 참 대단하신 거죠. 하하하하.

저도 뭐, 사업을 하고, 망하고. (웃음) 제 인생유전이 뭐랄까 젊은 세대에게 그냥 해주고 싶었어요. 20대에게 <청춘매뉴얼제작소>라는 얘기를 건네고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한번 같이 생각해 보자, 어떻게 살지, 약간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해줄 수 있어, 이래서 쓰게 된 거예요. 지금까지 책은 꽤 팔려 1쇄는 다 나갔고, 2쇄 돌입 예정입니다. 헤헤헤."

- 20대 청년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의 핵심은 뭐예요?
"꿈과 도전? 솔직히 웃기는 얘기 아닌가요? 일탈? 저도 해봤는데,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더군요. 하하하. 서점 가면, 왜 맨발로 환하게 웃으면서 외국 가서 대성공했다! 너도 될 수 있어! 주장하지만 과연? 어떻게 그게 될 수 있냐고요!

다만, <그리스 로마 신화> 쓰신 이윤기 선생님께서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잉여인간으로 사느니 뛰어내리길 잘했다 하셨는데, 감히 덧붙이자면, 뛰어내리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목표와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갖고 있다면 뛰어내리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지 않고 사는 것도 훌륭한 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박찬호와 김연아가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박수 칠 여유를 갖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평범함을 비웃지 않는 비범함, 비범함을 보면서 박수 칠 수 있는 평범함. 그게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오토바이를 좋아해서 일본 오토바이 잡지를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하셨다면서요. 일본어 책도 내셨던데, 한국교육엔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하루에 6시간씩 투자하면서 몇 달 지나니까 일본어가 능숙하게 됐어요. 아쉽게도 이십대에. 십대에 그 성취감을 느꼈다면 제 인생은 많이 달라졌겠지요. 하하. 전 우리나라 아이들이 자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른이 먼저 반성할 이유죠. 애들을 몽둥이로 때려잡으면서 창의력 있는 아이로 만든다?

전 요즘 제일 웃기는 게 중앙일간지 사설에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할 때예요. 스티브 잡스가 미나리, 파도 아니고 어떻게 육성을 해요? 잡스는 비행청소년이었고, 견과류와 물만 먹는 채식주의자이며, 대학도 중퇴했어요. 컴퓨터만 좋아해서 몇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기에만 골몰했던 '똘아이'라구요. 그런데 왜 그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었느냐? 잡스 같은 아이도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게 육성한다고 되는 일일까요?"

- 지금까지 7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쓰실 계획인가요?
"올해 3~4권을 더 쓸 생각입니다. 우선 100권 쓰는 게 목표예요. 주제와 상관없이요. 소설도 쓰고 싶고. 100권 쌓아놓고 조정래 선생님처럼 서재에서 인증샷 한 방 날리고 싶어서요. 하하하. 가능할 것 같아요."

- 워낙 달변이셔서 이종격투기 '해설계의 인간어뢰'라는 별명도 있으시던데요. 레슬링선수가 어떻게 그리 말도 잘하실 수 있나요?
"제 지식의 근원은 책입니다. 여러 미디어가 있지만 책만큼 정보량이 큰 매체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활자매체가 갖는 전달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요즘도 한 주에 1~2권의 책을 읽어요. 아이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서 아무데서나 책을 씁니다. 오늘의 목표를 정해놓고 하면 못할 것도 안 될 일도 없던데요?"

"꺄오~ 홍대사태 해결됐다고 합니다! ㅋㅋ"
[인터뷰 후기] 우락부락 섬세한 레슬러
"내일 복장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인터뷰 하루 전날 김남훈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120kg이 넘는 프로레슬러가 의상에 신경쓴다? 재미있었다. 나는 그에게 답문을 보냈다.

"편하게 하시죠...레슬링선수스럽게?"

은근 기대가 됐다. 그가 어떤 차림으로 나타날까.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를 봐왔지만 어떤 의상으로 나올지 적이 궁금했다.

빨간 후드에 블랙 T셔츠, 그리고 청바지에 검정 가방, 운동화. 가장 '청년스러운' 복장이었다. 곧 마흔이 닥칠 30대 중후반의 나이지만 그는 두리반칼국수집 사장님을 번쩍 들어올릴 만큼 기운이 셌고, 말발도 셌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지만 생각만큼은 젊게 즐겁게 긍정적으로 사는 이 같았다.

그와 인터뷰를 한 뒤 사나흘 뒤에 또 문자가 왔다.

"꺄오. 홍대사태 해결됐다고 합니다! ㅋㅋ"

긍정의 힘으로 무엇이든 되는 방향으로 밀어가는 선역의 힘이 작동된 것일까. 어쩌면 김남훈의 레슬링경기 이후에 홍대 청소노동자사태처럼 두리반사태도 해결되지 않을까 봄기운에 기대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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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정치선임기자입니다. <장윤선의 팟짱> 진행자이기도 해요. 지은 책으로는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 <소셜테이너> 등이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기자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모든 워킹맘을 응원합니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