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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사람' 은 <오마이뉴스> 경제팀이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한달에 3-4차례씩 경제계 인사들을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시민사회단체에서 '국가검열기구'란 비판을 받아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 아래 방통심의위)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 법원이 최근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내세운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게시물 심의와 시정 요구(삭제 조치)에 위헌 가능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허위통신죄' 위헌 결정 이어 '국가검열기구' 위헌성 제기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7일 '쓰레기 시멘트' 게시물 삭제 관련 소송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 제21조 제4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였다.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 요구'라는 조항은 헌법에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과잉금지의 원칙', '포괄위임입법금지', '법률유보의 원칙' 등을 위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 15일 '위헌법률심판제청' 소식이 뒤늦게 알려진 뒤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 중단을 요구해온 진보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 목소리에도 큰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지난 2008년 7월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관련 게시물 삭제에 대한 헌법 소원이 제기된 상태지만 방통심의위는 '독립된 민간기구'임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해 왔다.  

 

헌법재판소에서 오는 6월쯤 이를 받아들인다면 지난해 12월 이른바 '허위통신죄'(전기통신기본법 제4조 1항) 위헌 결정에 이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확인한 또 하나의 큰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허위통신죄' 위헌 결정 뒤에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있었다면 이번에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가 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아! 사(死)대강'이란 코너를 연재하는 '4대강 전문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쓰레기 시멘트' 사장들 아니었다면 이런 일 없었을 것"

 

"시멘트 회사 사장님들이 고맙습니다. 그때 방통심의위에 제 글 삭제 신청을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17일 오전 경기도 안양시 안양역 앞 한 커피전문점에서 마주앉은 최병성(48) 목사의 너스레다. 1999년 강원도 영월 서강 쓰레기매립장 건립 반대로 환경운동에 뛰어든 최 목사는 당시 국내 시멘트 회사들이 발암 물질이 든 쓰레기를 이용해 시멘트를 만들어온 사실을 알아내고 블로그 등을 통해 그 실태를 고발해왔다. 

 

환경운동가였던 그가 '표현의 자유' 문제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건 시멘트 회사 덕분이었다. 지난 2009년 4월 당시 한국양회공업협회(현 한국시멘트협회)에서 최 목사가 미디어다음 블로그에 올린 '쓰레기 시멘트' 관련 글이 자신들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심의위 심의를 요구해 글 4건을 삭제 조치한 것이다.

 

이에 맞서 최 목사는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2월 1심에서 '행정처분 취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덩달아 그동안 '민간기구'임을 내세워 잘못된 게시글 삭제 책임을 회피해온 방통심의위가 '국가행정기구'임이 확인된 셈이다.(관련기사 : ☞ '쓰레기 시멘트' 블로그 글 왜 삭제되나 했더니... )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처음 승소한 판결이었어요. 그동안 방통심의위가 MBC 'PD수첩' 광우병편이나 천안함 사건 관련 글들에 엄청난 칼질을 해 왔지만 책임은 안 졌어요. '우린 민간 기구다, 권고만 해왔다'면서 행정 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죠. 방통심의위가 항소한 이유도 '행정기구'란 걸 인정하면 비슷한 소송이 물밀 듯 들어올 걸 염려한 거죠."

 

"방통심의위, 기업 들러리 섰다가 제 무덤 판 꼴"

 

방통심의위는 1심에 불복해 자신들은 '행정기구가 아닌 민간 자율기구이며, (삭제 조치는) 포털 사업자가 권고를 자발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며 항소했지만, 인터넷 심의 위헌 가능성이 제기되며 방통심의위 존립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시멘트 회사의 무지가 제 발등을 찍었고 방통심의위는 건강과 공익, 표현의 자유 대신 기업 들러리 섰다가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된 거죠. 만약 위헌 결정이 나오면 방통심의위 문을 닫든지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기구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반가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한국시멘트협회는 포털 게시물 삭제 요청에 그치지 않고 최 목사를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지난해 5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발암물질, 중금속 같은 온갖 쓰레기로 시멘트로 만들어 집을 짓는 것을 보고 몇 년 동안 생계도 내팽개치고 싸워왔어요. 이 문제로 이미 국정감사가 3번이나 열리고 감사원 감사까지 진행해 그나마 환경부에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었는데 그걸 갖고 명예훼손 조사를 하다뇨. 국민에게 고맙다고 상을 받아야할 판에 죄인처럼 조사받았다는 게 아이러니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최 목사는 좀 더 사실에 입각한 글을 쓰려고 공인 기관에 분석을 의뢰하는 노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도 쓰레기 시멘트 소송 관련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고 나와 일일이 자신의 말을 확인해 줬다.  

 

이처럼 자신이 쓴 글에 자신감이 넘치는 최 목사지만 미처 항변할 틈도 없이 글이 '블라인드 처리'되거나 삭제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수십 건이나 되는 쓰레기 시멘트 관련 글들이 모두 차단되거나 삭제됐어요. 국민 건강을 위해 진실에 입각해 쓴 글이 단지 이익에 눈먼 기업이 신고했다는 이유로 사라져 버린다는 건 이 세상이 잘못됐다는 거죠."

 

"국민 건강-공익보다 시멘트 산업 더 걱정"

 

시멘트 회사들의 명예훼손 신고와 방통심의위 심의 및 시정 권고, 포털의 삭제 처리는 최 목사가 항변할 틈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미네르바 사건을 계기로 양회협회 쪽에서 제 글을 영구 삭제하고 싶어 했어요. 방통심의위에 내 글 15건 삭제를 요구했고 결국 방통심의위는 그 가운데 4건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영구 삭제를 결정했어요.

 

그런데 기업 쪽에서 신고해도 게재 당사자 해명을 듣는 절차도 없었어요. 나중에 신고 내용을 보니 거짓 투성이었는데 결국 방통심의위가 기업 거짓말에 놀아난 국가기관이었다는 걸 말해줘요. 신고됐다는 연락도 없고 삭제한 뒤에야 연락이 오고 이의신청해도 번복이 쉽지 않아요. 그렇게 국민 입을 막아온 거죠."

 

최 목사는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방통심의위 회의록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국가 권력에 아부만 해왔는데 기업 지킴이로 나선 게 이번에 드러났어요. 쓰레기 시멘트 게시글 삭제 요청시 방통심의위 회의록을 봤더니 당시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이 '국민 건강에 대한 문제라는 공익도 있지만, 시멘트 산업은 전 세계 23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에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라며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려울 때라는 점을 고려할 때 관련 업계가 부당하게 피해를 받고 있다면 우리 위원회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발언까지 했어요. 국민 건강과 공익보다 기업이 더 중요하다고 본 거죠."

 

"인터넷 심의 위헌 가능성에 포털들이 가장 반겨"

 

그동안 방통심의위의 게시물 삭제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했던 포털들도 최 목사의 소송이 진행되면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라는 연합 기구를 만들어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포털이 가장 반기고 있어요. 제가 방통심의위 소송에서 이기고 검찰에서도 무혐의를 받아내니까 KISO에서도 무차별 글 삭제 시 자기가 당할 일이 걱정된 거죠. 한 포털에선 내부 전문위원들에게 이번 사건이 방통심의위 존립 자체가 흔들릴 큰 사건이나 참작하라고 메일로 회람까지 했어요."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를 폐지하고 민간 자율심의로 전환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인터넷 심의를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정부가 언론은 이미 통제하고 있어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결국 남은 게 인터넷인데 가장 손쉽게 막는 게 방통심의위의 힘이죠. 그게 사라지면 버거워질 거예요. 전기통신기본법 위헌 결정 이후 또 다른 악법을 만들려는 것처럼 다른 방법을 모색할 거예요."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최근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내용의 실태 조사 보고서 초안을 우리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 뤼 보고관은 지난해 5월 한국 방문 당시 최 목사를 직접 만난 뒤 "방통심의위는 실질적인 검열기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작지 않아요. 이 정부 들어 많이 위축돼 있는데, 포기할 일이 아니라 옳다고 자신한다면 계속 글을 써야 해요. 왜 목사가 이런 일 하느냐고 하는데 시멘트도 생명에 관한 일이에요. 이 땅, 아이들 미래 위해 희생하는 일이죠. 아무도 안 하니 제가 져야 할 십자가였어요. 협박도 받았고 지금도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 탈 때 무서워요. 하지만 옳은 일이니까 목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 목사는 4대강 사업 반대 운동 때문에 '쓰레기 시멘트' 싸움을 잠시 접었지만 여전한 숙제로 남겨뒀다.   

 

"쓰레기 시멘트는 99년부터 계속 만들고 있지만 4대강은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어요. 10년 강가에 살다 보니 4대강 사업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 몸으로 배웠죠. 그래서 시멘트 잠시 내려놓고 4대강에 올인한 거죠. 덕분에 시멘트 기업 신났죠.(웃음) 시멘트 이야기는 조만간 책으로 쓸 거예요. 가을쯤엔 4대강 책(<강은 살아있다>) 후속편도 쓸 계획이에요. 지난번 책에선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주로 지적했는데 이번엔 4대강 아직 끝난 거 아니다, 4대강 스스로 생명을 치유하기 때문에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담을 생각이에요."


태그:#최병성, #쓰레기 시멘트, #방통심의위, #표현의 자유, #인터넷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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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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