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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앙대학교 주변 주택가 벽에 원룸과 하숙 전단지가 가득 붙어 있다. 전국적인 전세난 심화로 대학가 인근 원룸 등이 월세로 속속 전환되면서 입학시즌을 앞둔 대학주변에 전세물건을 찾아 보기 어려워 지고 있다.
 서울 중앙대학교 주변 주택가 벽에 원룸과 하숙 전단지가 가득 붙어 있다. 전국적인 전세난 심화로 대학가 인근 원룸 등이 월세로 속속 전환되면서 입학시즌을 앞둔 대학주변에 전세물건을 찾아 보기 어려워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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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우리 3월 말에 이사 갑니다."
"아니, 강남 황족이 어디로 가시려고?"
"황족은 무슨 황족? 황족우리에 살던 가축이 돈에 팔려 형님 사는 동네로 갑니다."

오랜만에 메신저로 만난 후배가 이사 소식을 전한다. 늦게 결혼해서 온갖 돈 끌어모아서 직장과 가깝다는 강남에 전셋집을 얻은 후배는 더 이상 오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어 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 전셋값으로는 그 동네에서 옥탑방이나 지하방도 얻기 힘들다며 우리 동네에 집을 구했는데, 여기에서도 2000만 원을 더 보태 1억5000만 원에 방 2개, 거실 있는 곳을 간신히 얻었다고 한다. 

그 후배야 집안 도움도 좀 받고 해서 해결했다지만 1억 5000만 원이란 돈이 얼마의 가치인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전세대란. 다가올 이사철을 앞두고 골치를 앓고 있는 지인들이 너무 많다. 1500만 원을 올려 우리 동네로 이사 왔던 또다른 후배는 서너 달 남은 만기가 오기도 전에 주인과 2000만 원을 더 올려 주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유빙'처럼 흐르는 아슬아슬한 삶, 전세 난민들

디시인사이드 부동산갤러리에 '사오피'라는 누리꾼이 올린  2011년 수도권 계급표
 디시인사이드 부동산갤러리에 '사오피'라는 누리꾼이 올린 2011년 수도권 계급표
ⓒ 디시인사이드 '사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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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수도권 부동산 계급표'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디시인사이드 웹사이트에 게재되자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누리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렀다. 수도권 땅값을 기준으로 황족·왕족·귀족·호족·중인·평민·노비·가축으로 표기한 게시물은 내 사는 곳은 어떤 계급에 속할까라는 다소 어쭙잖은 궁금증을 유발해 내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누리꾼 반응은 씁쓸하다는 것이었다. 황족의 마을에 살든, 평민의 마을에 살든 내 집 없이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들이야 모두 그들의 우리를 빌려 사는 가축일 뿐 아니냐는 댓글은 지금 전·월세 문제가 서민들에게 얼마만큼의 무게로 얼마만큼의 분노를 만들어 내는지 가늠해 보기 충분하다.

지방에서야 다소 현실감 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월세 폭등 현상은 차라리 전쟁에 가깝다. 비싼 전·월세에 보금자리를 잃은 전세 난민들의 삶은 강물에 떠다니는 '유빙'처럼 아슬아슬하다. 큰 얼음덩이가 작은 얼음덩이를 밀어내고, 작은 얼음덩이는 더 작은 얼음덩이를 밀어내면서 서로 부딪히고 깨져 끝내 녹아 버릴 서민들의 삶.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집 없는 서민들은 2년에 한 번씩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모아서 집 구하기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일까?

'집이 없다', '인구에 비해 집이 절대 다수 부족하다'는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증명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서민들이 살 집이 절대 다수 부족하다'는 말은 현재 전세난이 증명해 준 진실이다. 전쟁 같은 전세난에도 은평 뉴타운에 빈집들이 넘쳐난다는 보도가 있었다. 열 집 중 일곱 집은 불 꺼진 집이라고 보도를 실은 <한겨레>는 전용면적 101∼167㎡(41∼66평형)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지은 뉴타운 사업이 주택 수급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진단한다.

사실 통계로 보면 서울에 집이 절대 부족한 것이 아니다. 국토부가 발표한 주택보급률 자료만 보더라도 2008년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4%(가구수 345만, 주택수 323만)에 이른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통계에서 빠져있는 주거용 오피스텔 등을 합칠 경우 2006년 주택보급률이 98%에 이른다고 하니 통계로는 도저히 전세 대란이 설명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빈집이 넘쳐나고 대형아파트가 통째로 비어 있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전세 난민'이란 계층을 형성하고 그들의 사연이 아비규환이 되는 세상. 이 불균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누가 뭐래도 주택 정책의 실패가 원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집이 없는 것 아니라 서민 살 집이 없는 것 

망루로 올라간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특공대원 한 명이 진압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던 용산참사. 2년이 지나 아픔의 현장이었던 남일당 건물이 헐리고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한강로 3동 주변으로 용산4구역 재개발 지역으로 불린다. 2005년 용산 4구역이 속한 한강로 3동에는 1738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37%는 자가, 58%가 전·월세, 기타 5%로 나타났다고 한다. 용산 4구역 관리처분인가 고시(2008. 5. 30)에 따르면 이 일대는 최고 40층 주상복합 3개 동과 업무용 빌딩 3개 동 등 총 6개 동 및 교회 건물 1개가 들어선다고 한다.

이중 아파트는 분양 409가구, 임대 84가구로 총 493가구이다. 임대아파트를 제외한 409가구 중 가장 작은 평형은 50평으로 분양가가 14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50평형도 31가구뿐. 69평·70평·76평이 각 69가구씩. 제일 큰 95평은 분양가만 33억 원에 이른다. 서민들 입장에서야 상상도 하기 어려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손낙구님 강연에서 인용).

이 동네에 살던 사람 1738명 가운데 다시 재개발된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전·월세를 옮겼고 집주인들도 보상 받는다 해도 재개발된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성북구 길음 4구역의 경우 뉴타운 재개발 후 재정착한 사람들은 15.4%에 불과하며 84.6%는 살던 동네를 떠났다는 통계도 있다. 지금 뉴타운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곳은 2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곳은 보상이 진행 중이거나 철거를 기다리고 공사가 한창인 곳도 있다. 은평 뉴타운처럼 공사는 끝났으나 입주율이 낮아 유령의 마을처럼 된 곳도 있다.

이 마을에서 전·월세로 살던 사람들이 유랑민처럼 한꺼번에 쏟아졌으나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집은 부족하고 전·월세 가격의 폭등은 당연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뉴타운 개발 계획에 집을 비우고 이리저리 밀려다니면서 수억, 수십억 원 아파트로 변신한 예전 마을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도시 서민들. 이것이 서울의 주택정책이었고 뉴타운이라는 장밋빛 환상에 감춰진 맨얼굴이었다. 서민의 집을 헐어 투기꾼의 배만 불리는 뉴타운 정책.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 지적처럼 뉴타운 재개발은 '서민 대청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은평 뉴타운 빈집 사태가 이것을 정확하게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내놓은 다주택자 세제 혜택은 투기 조장

지난 11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이 '2.11 전월세시장 안정 보완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1.13 전월세 대책'을 발표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11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이 '2.11 전월세시장 안정 보완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1.13 전월세 대책'을 발표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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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1일 '전·월세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12월, 폭발 직전인 전·월세 폭등 현상에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며 심각성을 부인했던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발언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부의 위기의식이 어떠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위기의식 속에 나온 대책이라고나 하나 내용을 놓고 본다면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작년 8·29 대책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서민들에게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고 이자를 낮춰 준다는 대책은 DTI 규제완화 조치와 더불어 전셋값 폭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높다.

대출받아 오른 전셋값을 해결하거나, 이 기회에 아예 대출로 집을 구입하라는 내용이 어떻게 전세대책이 될 수 있는가? 전셋값도 대출로 해결하고 대학 등록금도 대출로 해결하고 자영업자들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도 대출로 해결하라니, 정부가 아니라 대출 알선업자가 아닌가 하는 조소를 던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출을 손쉽게 하는 대책은 현재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하는 물가 대책과도 맞지 않는다. 자칫 전세 시장에서 대출을 부추겨 폭등을 용인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폭등세가 멈추기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 붓듯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의 연구기관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위험성을 심각하게 제기하곤 했다. 국내 삼성경제연구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세제 지원을 내놓았다. 다주택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 더 많은 주택을 매입하라는 것인데 이는 전세 대책이라기보다는 집값 띄우기 대책에 가깝다. 은행에 돈 빌리고 전세금 받아서 집 사라는 대책. '레버리지 효과'(타인으로부터 빌린 차입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를 정부가 나서 사탕발림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레버리지 효과가 독이 되어 국가 경제 전체를 휘청이게 한 것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였다. 전셋값이 떨어지거나 집값이 폭락하면 이런 정책은 세입자나 집주인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다주택자 세제 혜택은 투기 조장이라는 비난과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같은 위험성이다. 정부는 이런 위험성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말하지 않는 걸까?

개발과 대출 위주의 주택 정책 폐기가 우선되어야

사실 폭등하는 전·월세 대책을 내놓기 쉽지 않아 보인다. 수차례 쏟아낸 전·월세 대책과 서민 집값 안정 대책 등은 서민들의 보금자리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기 보다는 투기꾼들에게 투기의 내성만 키워 준 꼴이 되어 버렸다. 정부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카드도 많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3월로 예정된 DTI 규제 완화 연장 방침은 전·월세 대책의 사형선고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의 이제까지의 전·월세 대책은 제대로 된 서민 살리기의 일환이라기 보다는 집값 살리기·건설사 살리기였다. 서민들이 살던 집들을 싸그리 밀어 버리고 수억·수십억 짜리 아파트를 짓는 뉴타운 사업. 여기에 1억 미만의 전세 세입자들을 위한 어떤 고려도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정부의 곤궁한 처지는 스스로 제 발등 찍기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갈대숲을 없애고 수로를 깊게 판 강에 작은 물고기가 살 수 없듯 서민들이 살던 다세대 주택이나 단독주택들을 밀어 버리고 획일적으로 수억·수십억 원대의 아파트를 짓는 주택 정책으로는 서민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해 줄 수 없다. 현재와 같은 뉴타운 사업·개발 위주의 주책 정책을 그대로 두고 전·월세 대책을 세우는 것이 효과가 있기나 할까. 서울시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주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 달 100만 원도 벌지 못한 비정규직이나 대학 등록금에 허리를 휘는 50대 가장도 집값만큼은 부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주택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50평대 뉴타운을 멋지게 지어 놓을 테니 대출받아 거기서 살아라' 하는 식의 주택 정책은 더 이상 유용하지도 않고 펼쳐서도 안 되는 정책이다.

시민단체나 야당 등에서 전·월세 대책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고 전세 인상률 제한 등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곳도 많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고집스러운 개발 위주·대출 위주의 주택 정책과 전·월세 대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도시 서민들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 서민의 삶은 절박하다. 나가지도 물러 설 수도 없는 상황, 그건 서민이나 정부나 마찬가지다.


태그:#전세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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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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