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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연일 강추위로 이웃집의 수도계량기들이 터져 나가 고치는 장면들이 목격되고 있는데, 혹시 하는 생각에 물소리의 장소를 찾았다. 세탁기가 놓여 있는 다용도실을 열어 바닥을 살펴보니 아주 약간의 물기가 비친다. 그리고 각종 배관이 모여 있는 철문 쪽에서도 철철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위층에서 세탁기를 사용할 때 나는 소리와는 다르다.

얼른 주방의 수도를 틀어보니 온수와 냉수는 잘 나오고 있다. 겨울에 한 번도 수도계량기가 터져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잘 알 수가 없다. 밖에 있는 계량기를 살폈다. 어둠 속에서도 바닥에 물이 흥건한 것이 보인다. 수도국에서 계량기 보온용으로 나누어준 비닐 속에 한가득 물이 차 팽팽하다. 추위에 결국 계량기가 터졌나보다. 비닐을 감쌀 때 안에다 수건을 두툼하게 넣어 두었는데도 누적된 한파를 견디지 못했구나 싶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의 모든 배관들은 거의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의 모든 배관들은 거의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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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로 달려갔다. 비상 근무하는 관리실 사람이 올라와 계량기 비닐을 벗겨 본다. 비닐 속의 물이 퍽하고 쏟아진다.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는 밖이나 다름없다. 쏟아진 물은 금방 얼어서 빙판을 만든다.

"계량기는 터지지 않았는데요?" 그런데도 넣어둔 수건은 물로 흥건하고,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물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다용도실의 철문을 막고 있는 물건들을 치우고 열어보니 폭포가 따로 없다. 살펴보던 관리실 직원이 "이 집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한다. 그런데 왜 물은 온통 우리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는가 말이다. 원인규명은 직원들이 출근하는 아침 9시가 되어야 알아볼 것 같다고 한다.

복도에 모래를 뿌리고, 임시방편으로 계량기에 새 수건을 채우고 비닐로 우선 막아 놓았다. 원인규명 될 때까지 그냥 놔두었다가는 성한 계량기도 터져버릴 것 같은 추위다. 주방은 다용도실에서 나온 물건들로 어수선하고, 현관 문 앞에는 얼음과 모래가 뒤엉켜 버석거리고....어둑한 추운 새벽에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수도계량기가 터지지 않았는데도 위층의 배관에서 흐른 물은 비닐을 뚫고 흘러 내렸다. 모래와 얼음이 엉켜 천천히 녹아지고 있다. 얼음이 다 녹으면 모래만 남을 거다.
 수도계량기가 터지지 않았는데도 위층의 배관에서 흐른 물은 비닐을 뚫고 흘러 내렸다. 모래와 얼음이 엉켜 천천히 녹아지고 있다. 얼음이 다 녹으면 모래만 남을 거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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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쯤 되니 다용도실의 물소리가 그치고, 인터폰이 울린다. 원인은 우리 집이 아니라 4층에 있는 집이었다. 정작 터진 집은 멀쩡한데 애먼 아래층이 소동을 빚었다. 밖의 계량기에 다시 새 수건을 집어넣고, 신문지로 더 싸고, 제대로 감싸주었다. 다용도실의 물건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들었다. 작은 소동을 겪고 나니 아파트는 '따로 또 같이' 가야될 공동체 건물이란 것이 확 다가왔다.

언젠가는 아래층집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고 올라왔다. 우리 집 화장실 어딘가에 균열이 생겨서 그렇단다. 찾아보니 바닥의 하수구 주변이 깨져 있었는데 그리로 새들어 간 것 같단다. 원인은 우리 집이었고, 피해는 아래층에서 본거다. 물론 우리 집은 수리하느라 돈이 들었다. 또 한 번은 관리실 직원들이 우리 라인의 집들을 차례로 돌은 적이 있다. 지하로 물이 흐르고 있는데 어느 집 배관에서 흐르는지 찾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이었다. 그 때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배관의 연결부위를 쌌던 고무가 헐거워 진 것이었기에 돈은 들지 않았다.

다용도실의 배관을 볼 수 있는 철문. 좁은 다용도실에 세탁기를 넣으면 꽉 찬다. 저 철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세탁기와 물건들이 들려 나온다.
 다용도실의 배관을 볼 수 있는 철문. 좁은 다용도실에 세탁기를 넣으면 꽉 찬다. 저 철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세탁기와 물건들이 들려 나온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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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 되면 관리실에서는 제발 베란다에서 세탁기를 돌리지 말아달라고 방송을 한다. 물이 베란다에 있는 배관으로 흐르면 얼기 때문이란다. 어떤 때는 은근 협박까지 한다. 얼어서 고치게 되면 돈을 몽땅 물어야 한다고. 그런데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세탁기를 놓고 돌리는 집들이 있는가 보다. 그렇게 되면 아래층 집들은 얼은 배관 때문에 역류해 들어오는 하수구 물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아래층이 좋아서 아래층만 고수하는 우리 집도 어느 한 겨울에 이런 피해를 본적이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 듯 일어나는 일들이기에 금방 잊고 산다. 조금 억지 생각이기는 하겠지만, 강추위에 겪은 이번 사태로 아파트 건물은 '한 채'의 집이란 것을 확실하게 실감했다. 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한 건물을 쓰고 있는 공동체다. 내 집의 실수가 이웃집의 시간과 나가서는 재산상의 피해도 줄 수가 있다. 서로 조심하며 이웃의 안전도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할 것 같다.


태그:#아파트, #공동체, #수도계량기,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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