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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목포까지 무궁화호 기차로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눈 덮인 평야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기차는 쉼 없이 달렸다. 너른 들판만 보일 것 같다가도 순간 산들은 거인처럼 다가와 조용한 평야의 지루함을 씻어 주었다.

남편과 함께 1박2일 여행을 하려고 여기저기 물색을 하고 있었다. 목포에 있는 남편의 지인이 그곳으로 온다면 좋은 숙박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해서 우습지만 목적지가 목포가 되었다.

목포는 처음이다. 딱히 어느 곳을 여행해야 할지도 막연하다. 자료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목포시티투어관광'. 시간도 적당하고, 가격도 무척 저렴하다.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요금은 삼천 원.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을 하면 된다. 문화관광해설사까지 동행이 된다고 하니 초행자인 우리에게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도로 끝 유달산을 병풍 삼아 세워져 있는 일본 강점기 때의 일본 영사관. 일반 주택들 보다 높은 곳에 건물을 지었다. 그 앞에 세워져 있는 국도 1,2호 기점비.
 도로 끝 유달산을 병풍 삼아 세워져 있는 일본 강점기 때의 일본 영사관. 일반 주택들 보다 높은 곳에 건물을 지었다. 그 앞에 세워져 있는 국도 1,2호 기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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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목포의 하늘은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려진 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해가 비치면서도 가끔 눈발이 날렸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씨처럼. 그래도 바람이 없으니 피부에 닿는 기운은 남쪽답게 따뜻했다. 출발지는 목포역이다. 약 20여 명의 사람들이 차에 올랐고, 해설사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목포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겁나게 불지요.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없으니 거시기 하네요."

즉 날씨가 좋다는 뜻이란다. "바람이 불어 사람을 옹송그리게 할 때는 껄적지근하다고 말해요" 말 속에 남도 특유의 억양이 살짝 가미된 '겁나게', '거시기', '껄적지근'이 잘 어울려 들려온다. 눈발은 아주 가끔씩 흩날렸지만 해의 기운에 밀려 곧바로 그치고는 한다.

목포근대역사관. 일제 강점기 때는 동양척식회사 건물이었다.
 목포근대역사관. 일제 강점기 때는 동양척식회사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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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항구도시이고 근대도시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고…."

목포를 알리는 첫 번째 건물이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다. 해설사의 말로는 일본식 근대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목포라고 한다. 일본인이 저술한 <목포지>를 보면 조선을 천 년 이상 지배할 요량으로 건물을 지을 때는 '단디(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적혀 있단다. 해서 일본의 영사관도 평지에 짓지 않고 유달산 밑에 지었다. 그들은 조선인들을 내려다 보며 감시 통제하고, 조선인들은 눈을 들어 그들의 영사관을 우러러 보도록 만들었다.

계단 위의 구 일본 영사관 건물. 유달산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계단 위의 구 일본 영사관 건물. 유달산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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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들은 화롯불을 지피며 추위를 이기고 있을 때 일본인들의 본거지인 영사관 안에는 9개의 페치카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중에는 휘황찬란한 크리스탈 페치카도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조선 민중들이 이런 건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주눅 들어했을 것인 가를요. 그네들은 아주 지능적으로 목포를 수탈하고 유린 했었습니다."

'목포는 항구다~아, 목포는 항구다~아' 하는 이난영씨의 말랑말랑한 노랫가락만이 목포를 대변하며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는데, 생각 없이 맞닥뜨린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통을 무언가로 한방 맞은 느낌이다. 목포에는 일제 때 지은 근대식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유달산 노적봉(오른 쪽 바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략을 펼쳐 왜구를 물리친 전설이 깃든 곳이라고 한다.
 유달산 노적봉(오른 쪽 바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략을 펼쳐 왜구를 물리친 전설이 깃든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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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에는 일제강점기에 그들로부터 당한 우리 민중들의 잔혹한 고문의 역사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눈길을 주기가 버거운 것들도 있다. 사람들은 침묵하며 묵념하듯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을 돌아본다. 간간히 한숨들이 빠져 나온다.

유달산 초입에 산을 병풍삼은 붉은 벽돌 건물이 높은 계단 위에 서있다. 한 때 일본영사관이었던 곳이다. 해방 이후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었기에 목포시민들에게는 친숙한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내부수리 중이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입구에는 '국도1, 2호선기점'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목포에서 서울을 거쳐 신의주까지 일직선의 도로를 내고 국도 1호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목포에서 부산까지의 도로는 국도 2호선이라고 정하고, 이 도로들을 이용하여 만주 침략의 이동로나 호남 곡창 지대에서 징발된 쌀과 면화의 운송로로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도로기점을 알리는 비는 나중에 우리나라가 세운 것이다.

노적봉 다산목. 수종은 팽나무. 150년 된 어미의 뿌리에서 싹이 나와 자라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노적봉 다산목. 수종은 팽나무. 150년 된 어미의 뿌리에서 싹이 나와 자라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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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은 228미터의 높이며 바위산이다. 구 영사관 건물 뒤는 바로 유달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싸게 싸게 오씨시오" 해설하는 이는 가끔씩 그 지방의 언어를 쏟아냈다. "지금은 지방자치화시대죠. 볼 것이 있으면 확대해야 하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사람을 끌어야 생활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자연이 만들어준 볼거리가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면서 한 나무를 가리킨다.

유달산 노적봉의 '다산목'이라는 푯말이 있다. 그녀는 여인의 거시기(생식기)를 닮은 나무라고 했다. 이 나무를 쳐다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옆에 있던 청년이 신혼부부인 친구에게 전송해야겠다면서 얼른 핸드폰을 들이댄다. 말하는 대로 보니 정말 닮은 듯도 하다.

유달산 대학루에서 내려다본 목포. 앞에는 바다가 있다.
 유달산 대학루에서 내려다본 목포. 앞에는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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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의 높이는 낮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바위산이기에 쉬어가는 정자가 5개나 있지요."

노적봉을 지나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까지 올랐다. 바다와 배와 올망졸망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삼학도와 목포 시내가 쫙 펼쳐져 보인다. 뿌연 수평선 저 너머 끝자락으로는 현대삼호중공업의 기중기들까지 마천루처럼 눈에 들어 왔다.

다시 노적봉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아침에 탔던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점심시간이다. 목포에는 유명한 홍어 삼합도 있고, 꽃게탕이나 갈치찜 등 먹을거리가 많으니 원하는 식당에 가서 먹으란다. '남도 식당'이라는 백반 집에 들어갔다. 남도의 밥상은 푸짐했다. 가격은 육천 원, 맛은 더 바랄 것 없는 상급. 함께 들어갔던 일행들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가득 찬다.

푸짐한 남도식당의 가정식 백반. 남도의 된장찌개는 꼭 국을 먹는 것같다.
 푸짐한 남도식당의 가정식 백반. 남도의 된장찌개는 꼭 국을 먹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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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탔다. 두 자녀를 대동한 엄마는 유람선으로 몇 개의 섬을 돌 거라며 투어에서 하차했다. 버스는 바닷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밥을 먹었으니 소화를 시켜야죠" 갓바위를 보기 위해 바다에 놓은 부표다리를 걸었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사오정 망토를 입고 바다를 면하고 오도카니 서 있다. 자연적으로 풍화된 모습이 오묘하고 기이하다.

갓바위전설을 들으며 바다 위를 걸어 육지로 올라 왔다. 바로 옆에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있다. 바다 속에 난파선으로 매몰되어 있던 옛사람들의 생활 흔적을 찾아 전시해 놓았다. 수천 수백 년 전 바닷길을 따라 움직였던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갓바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그 앞에 부표식의 다리가 있어 바다 가운데에서 구경할 수가 있다.
 갓바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그 앞에 부표식의 다리가 있어 바다 가운데에서 구경할 수가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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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후 4시 40분 기차라 여유가 있었다. 해서 목포역으로 가는 투어버스에서 내려 바닷가와 수산시장, 여객터미널까지 걸어서 두루 더 돌았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었다. 왜 '목포는 항구다'라고 했는지 실감이 되는 풍경이었다. 수산시장의 상인들은 연신 홍어를 썰어 포장하고 있었다. 말린 홍어, 얼린 홍어, 젖은 홍어, 썰은 홍어, 흑산도 홍어, 칠레 홍어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목포항. 삼학도 중의 대삼학도가 보이고, 수많은 배들이 서로 얽혀서 대단한 규모를 보였다.
 목포항. 삼학도 중의 대삼학도가 보이고, 수많은 배들이 서로 얽혀서 대단한 규모를 보였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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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은 서울에 빨리 도착하는 고속버스를 타라고 했다. 하지만 꼼짝없이 앉아서 서너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버스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차가 더 좋아서 다시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목포의 도시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목포는 항구다아~'하는 이난영씨의 노래가 자꾸 자꾸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25, 26일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태그:#목포, #항구도시, #유달산, #삼학도,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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