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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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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3일, 일기예보에 오후부터 눈이 내린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설주의보라고 했던가. 하늘이 찌뿌드드하게 흐렸다. 흐린 날이 걷기는 좋은데, 눈이 내리면 그것도 펑펑 쏟아지면 걷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걸으러 왔으니 걸어야지, 했다.

바우길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한 시간은 오전 9시 20분경. 바우길 4구간인 사천둑방길을 못 걸어서 걷고 싶었지만 참았다. 구제역 때문이다. 마을길을 지나가니 가급적이면 걷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소나무 숲이 걷는 내내 이어지는 3구간 '어명 받은 소나무길'을 걷기로 했다.

사천둑방길은 작년부터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중이다. 6월의 땡볕 아래서 둑방길을 걷는 건 무리, 라는 말에 가을에 걸어야지 했는데 겨울이 오도록 못 걸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인연이 닿아 걸을 날이 오겠지, 한다. 사람이나 길이나 인연이 닿아야 만나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길을 나서보니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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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3구간 '어명 받은 소나무길'은 보광리에서 시작돼 명주군왕릉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13km. 바우길게스트하우스에서 '어명 받은 소나무길'이 시작되는 보광리 유스호스텔까지는 4km쯤 된다. 그 길, 당연히 걸어서 가야지. 걸으러 왔는데 몇 킬로미터는 더 못 걷겠나. 그 거리를 3구간 거리와 합해도 17km밖에 되지 않는다. 넉넉잡고 다섯 시간 정도 걸으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는 계산을 마음속으로 한다.

바우길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명 받은 소나무길'이 시작되는 곳까지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다. 길은 완만하게 굽이쳐 흐르는 강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보현사로 가는 길과 어명 받은 소나무길로 가는 길은 갈림길이었다.

길을 걷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늘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오르곤 했다. 길이라는 낱말을 사용했지만 그 길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서 저절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했던 여러 가지 선택을 떠올리며 가지 않은 길이 갖고 있을 다양한 가능성을 아쉬워한다. 사람들은 지금 가고 있는 길보다 가지 않은 혹은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이나 환상을 갖게 마련이므로.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러면서.

갔던 길을 되돌아 와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란 변수는 지나간 것을 돌이키지 못한다. 그래서 더더욱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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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 길에 오면 보현사에 꼭 들러보리라, 했는데 이번에도 보현사로 가는 길로 가지 못했다. 거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걸으려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보현사로 가는 길은 여전히 다음을 기약하면서 남겨두어야 했다. 대체 나는 언제까지나 길 위에서 수도 없이 다음을 기약할 참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 다음이라는 게 꼭 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어명 받은 소나무길은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 길, 등산로이기 때문이다.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지난해 봄에 이 길을 걸을 때는 한참이나 숨을 헐떡여야 했다. 땀은 또 어찌나 쏟아지던지,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더랬다.

한데 한겨울인 오늘도 마찬가지다. 등산복 웃옷에 가볍게 바람막이만 입었을 뿐인데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이마에 촉촉하게 땀이 배더니 나중에는 머리칼이 모조리 흠뻑 젖어 버리고 말았다. 머리 따뜻하고 귀 시리지 말라고 눌러쓴 털모자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 사이로 선자령이 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선자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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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이었다. 한겨울에도 독야청청 한다는 소나무의 푸른빛은 겨울 산의 황량함을 조금이나마 빛바래게 해주었다. 걷다가 문득 눈을 드니, 몇 겁의 능선을 넘어 선자령이 보인다. 하얀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구제역만 아니라면 저곳에 가보련만, 아쉬워진다. 하지만 오늘만 날은 아니지. 아, 또 훗날을 기약하는구나.

길은 잔설이 남아 있기도 하고, 눈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하고, 또 눈으로 덮여 있기도 하면서 이어진다. 산 속이지만 춥지 않았다. 햇볕이 어찌나 따사롭던지 겨울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기도 했다.

'어명 받은 소나무'가 있는 자리인 어명정이 저 만치 보이는 길. 처음에 어명을 받은 소나무, 라 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특별한 소나무기에 어명을 받았을까, 싶어서였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나라에서 소나무에 특별한 명을 내릴 일이 무엇이 있겠나. 나라를 위해서 자네 한 몸을 바치라, 는 얘기지. 그건 결국 자네 몸을 베어내겠다는 통보이고.

 어명정
 어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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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복궁을 복원할 때 이곳에 있는 금강송을 베어다가 기둥을 삼았다. 다짜고짜 나무를 벤 것은 아니고 미리 어명을 알리고 진혼굿을 한 뒤 베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어명정이다. 어명정 안으로 들어가면 베고 남은 금강소나무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 말하자면 어명정은 어명을 받은 소나무의 무덤인 셈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면 소나무는 죽어서 그루터기를 남긴다고 해야 할까.

길은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다. 멧돼지 쉼터로 가는 길에 덜컥 겁이 났다. 걷다가 혹시 멧돼지라도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하지만 다행히 멧돼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멧돼지 쉼터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 위에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무늬처럼 어지럽게 찍혀 있다. 멧돼지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에도 표정이 있다.
 소나무에도 표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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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인 탓일까, 아니면 높은 지대라서 기온이 낮기 때문일까. 눈 덮인 길이 이어진다. 일부는 꽝꽝 얼어붙어 빙판이 되었다. 이런 길은 내리막이 더 무섭다. 결국 겁 많은 나, 아이젠을 꺼내 신발에 둘렀다. 아이젠의 날카로운 쇠이빨이 빙판 길에 푹푹 박히니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는다. 덕분에 걸음은 안정감을 되찾고.

천천히 걷는다고 하는데도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는 건 내리막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땀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젖었던 머리칼도 어느 사이엔가 말랐다. 소나무 사이로 간간이 바람이 분다. 그리고 멀리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임도로 접어드니 걷기가 더 수월해진다. 임도에서 명주군왕릉까지 남은 거리는 1km남짓. 다 걸었다는 안도감이 찾아든다. 걷는 동안 말갛게 개는 것 같던 하늘이 다시 잿빛으로 흐려지고 있었다. 눈이 내리긴 할 건가 보다, 싶었다.

 소나무 사이로 길은 이어진다.
 소나무 사이로 길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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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릉은 태종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의 묘이다. 왕권 다툼에서 밀린 김주원은 명주 즉 지금의 강릉으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홍수로 알천이 넘쳐 경주로 들어오지 못해서 그가 왕이 되지 못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건 결국 왕위 다툼에서 밀렸다는 의미일 터. 그렇지 않았다면 김주원은 신라의 왕이 되었겠지. 그렇게 강릉에 자리를 잡은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무덤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없어졌고, 지금의 무덤은 조선 명종 때 복원되었다. 세월은 무덤도 사라지게 할 만큼 큰 힘을 지녔구나, 싶어진다.

명주군왕릉에 도착한 시간은 1시 반경. 4시간을 걸었다. 길이 좋아서 일까,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긴 고작 17km를 걸었을 뿐이다.

명주군왕릉 입구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시간을 검색하니 2시 5분에 버스가 출발한단다. 2시간에 한 번씩 들어오는 버스인데 시간은 대충 잘 맞췄는데, 버스정류장에 가만히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려니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진다.

걸을 때는 몸에서 열이나 추운 줄 몰랐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오리털 파카를 껴입었는데도 춥다. 앉아서 덜덜 떨며 버스를 기다리느니 길을 따라 걷다가 오는 버스를 세워서 타는 게 나을 것 같아, 2차선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려나 보다. 싸락눈이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듬성듬성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세 그친다. 삼십 분쯤 걸었을까.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명주군왕릉이 종점이니 그곳에서 회차해서 다시 나오겠지, 하면서 버스를 그냥 보냈다.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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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쯤 뒤에 버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웠다. 502번 버스는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는다. 그래서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기사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시골 시내버스는 서울 시내버스와 다르다.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타는 사람도 그렇고 운전하는 버스기사도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재밌는 광경을 구경하는 덤을 얻기도 한다. 이 날, 그랬다.

어느 정류장에선가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탔다. 허리가 푹 구부러진 할머니는 쉽게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짐이 있었다.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소주 두 병과 등에 진 배낭. 할머니가 꾸물대자 승객 한 사람이 일어나 소주병을 하나씩 받아서 버스에 실었다. 그러고도 할머니는 오래도록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은 소주병을 받아 든 승객이 할머니를 부축해서 버스에 태웠고, 할머니는 버스에 오르고서도 소주병을 어떻게 세워둬야 할지 몰라 자리에 쉬이 앉지 못했다.

버스가 출발을 해야 하는데 이 할머니, 도무지 서두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면 버스기사가 빽 소리를 지른다. 거, 할머니 빨랑빨랑 좀 앉아요, 하면서. 한데 버스기사는 채근할 생각도 안 하고 지팡이를 들고 버스 안에서 서성거리는 할머니가 앉기를 기다린다.

몇몇 승객이 할머니를 채근한 뒤에야 할머니는 자리에 앉았고 그제야  버스가 출발했다. 할머니가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승객이 일어나 할머니 짐을 내려주고, 할머니까지 부축해서 내려준 다음에야 버스가 출발했으니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맛, 참으로 오지다.

친절한 기사는 내가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을 알려주었고, 어디로 걸어가야 고속버스터미널이 나오는지도 큰 소리로 가르쳐 주었다. 길 건너서 넘어가면 돼요, 하면서 손으로 방향도 가리켜준다. 고맙기도 하지.

일요일인데도 고속버스에는 자리가 넉넉했다. 겨울이고 구제역 때문에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었구나, 싶었다. 3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였다. 버스에 오르면서 세 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하겠구나, 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셈법이었을 뿐, 서울까지 걸린 시간은 6시간 20분이었다.

하필이면 고속버스가 출발한 뒤 눈이 펄펄 쏟아지더니 끝내 함박눈으로 변해 고속도로가 엄청나게 밀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으니 영동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더 밀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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