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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처음으로 [요즘판결]을 시작한다. 새해 첫달에 일어난 사건 3가지를 소개한다. 
① 길거리에서 주운 지갑 때문에 봉변당하다
② 살아있는 곰 쓸개 채취한 농장주의 운명
③ 문화일보 '신정아 테러사건' 조정으로 종결   

지갑 이미지.
 지갑 이미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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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①] 경기도 부천에 사는 대학생 공자(가명)씨는 새벽에 집을 가다가 길바닥에서 시커먼 물체를 발견했다. 집어들고 보니 지갑이었다. 지갑에는 현금 5만 원과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었다.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물론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학생인 공씨에게 현금 5만 원의 유혹은 강렬했다. 지갑을 챙겨 그대로 길을 가는데 잠시 후 뒤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잠깐만요. 그 지갑 어디서 나셨어요?"
"이거요? 길에서 주웠는데요."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도 되나요? 내 지갑이라고요."

지갑의 주인은 공씨에게 강하게 항의하였고, 원만한 합의를 보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공씨 처지에서는 '운수 좋은 날'이 '재수 없는 날'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공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길거리에서 돈이나 지갑을 주우면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들켰을 땐 범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죄이기에.

길거리 지갑 주웠다 적발... 검찰은 절도죄로 기소했지만

검찰은 절도죄로 기소했다. 절도죄는 "타인의 물건을 절취"하는 죄이다. 즉 남의 물건을 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가져와야 성립한다. 공씨는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적어도 절도는 아니란 말이다.

형법 제360조(점유이탈물횡령)
① 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점유이탈물횡령이란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 주인의 손을 떠난(점유를 이탈한) 물건 등을 몰래 챙겼을 때 성립하는 죄이다. 예를 들어 잘못 배달된 편지나 택배를 받았다가 돌려주지 않거나, 가게에서 거스름 돈을 많이 돌려받은 것을 나중에 알고도 챙겼을 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 법정까지 오는 사례는 많지 않지만 공씨처럼 주인에게 걸렸을 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공씨는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은 번복되지 않았다. 벌금 70만 원형. 지난 7일 인천지법 부천지원 판결이다.

같은 이치로 지하철 선반에 있는 가방이나 노트북을 들고 가다 발각되면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적용될 수 있다. 반면 당구장에 떨어진 금반지를 몰래 챙긴 사람에겐 절도죄가 적용된 판례가 있다. 길거리나 지하철과 달리 당구장은 당구장 주인의 관리(점유) 아래 있으므로 그곳에서 손님의 반지를 가져간 것도 도둑질이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땅에 떨어진 지갑, 지하철 선반에 놓인 노트북 들고 가면 범죄다. 

몇 해 전 서울대공원에서 찍은 말레이곰
 몇 해 전 서울대공원에서 찍은 말레이곰
ⓒ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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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②] 곰 사육농장을 운영하는 노웅담(가명)씨. 최근 경영난을 겪으면서 영업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보양식(?)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는 살아있는 곰의 몸에 호스를 꽂아 쓸개즙을 채취해 손님들에게 판매했다. 그 과정에서 곰에게 마취제 주사를 놓았는데 마취제에는 '케타민' 성분이 함유돼 있었다.

동물보호법(7조 2항 2호)에 따르면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본다. 노씨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했다(만일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등에게 이런 행위를 했다면 야생동·식물보호법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마취주사를 놓은 것도 문제가 된다. '케타민'은 동물마취제로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케타민의 환각 효과가 엑스터시나 LSD보다 강해서 일부에서 마약 대신 사용하는 바람에 2006년부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규제되고 있다. 노씨는 몰래 얻은 마취약을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사용했다. 어떻게 될까. 마약과 관련된 법조항은 빠져나가기 힘들만큼 촘촘하다. 

동물에게 마약 투여하면 유죄? 무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제4조(마약류취급자가 아닌 자의 마약류취급의 금지)
① 마약류취급자가 아니면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소지·소유·사용·운반·관리·수입·수출·제조·조제·투약·매매·매매의 알선·수수 또는 교부하거나, 대마를 재배·소지·소유·수수·운반·보관·사용하거나,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기재한 처방전을 발부하거나, 한외마약을 제조하여서는 아니 된다.

의사, 약사, 수의사, 학술연구나 공무상 취급자 등 마약류취급자 외에는 마약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범죄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노씨에게 동물보호법위반(동물학대)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향정신성의약품)을 적용, 징역 6월(집행유예 1년)에 벌금 150만 원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노씨가 사람을 상대로 마약을 사용하지 않은 점을 참작하여 실형을 선고하지는 않았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마약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 사용하더라도 처벌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문화일보>는 2007년 9월 13일자에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며 이를 입수에 3면에 게재했다.
 <문화일보>는 2007년 9월 13일자에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며 이를 입수에 3면에 게재했다.
ⓒ 문화일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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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③] 2007년 9월, 신정아씨의 학위 조작 사건과 고위층에 대한 로비의혹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문화일보>는 9월 13일 지면을 통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대형 사고를 저지른다.

1면에 '신정아 누드사진 발견', '원로 고위층에 성로비 가능성 관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건 서곡에 불과했다. 한 장을 넘겨 3면에는 '성(性)로비도 처벌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신씨의 누드 사진(몸통은 모자이크 처리) 2장을 컬러로 싣기에 이른다. 보도 직후 문화일보 홈페이지는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접속이 폭주하였고 1주일 넘게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는 "신정아" "신정아 누드"가 올랐다. 

한마디로 '테러'였다. 한 개인, 특히 여성에 대한 테러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당시 신씨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여론에 중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또 어떤 이유로도 신씨의 누드 사진을 공개할 권리는 없었다. 신씨가 이른바 '성로비'를 했다는 증거도 없었지만, 설사 했더라도 그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문화일보>는 '성로비' 기사와 누드사진 게재에 대해 "공익, 알권리에 관한 사항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에로배우도 아닌 일반인이, 연예전문지도 아닌 종합일간지에 알몸을 드러내는 게 공익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공익이 아니라 사익(私益)에 불과했다.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도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함으로써 오히려 대중들의 관음증적 심리를 더욱 자극하였을 가능성조차 있다"며 "신문판매량 증가 및 인지도 제고 등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비난여론을 감수할 생각으로 위와 같은 선정적인 보도를 감행하였던 것으로 보여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판단할 정도였다.

누드 사진 게재는 공익 아닌 테러행위

학력위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불구속된 신정아씨가 2007년 9월 18일 밤 변호인의 차량에 올라 서부지검을 빠져나가자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차량을 동원해 신씨와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학력위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불구속된 신정아씨가 2007년 9월 18일 밤 변호인의 차량에 올라 서부지검을 빠져나가자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차량을 동원해 신씨와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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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2008년 12월 "문화일보가 1억5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교통사고 사망 사고에서 법원이 유족들에 대한 위자료로 인정하는 금액이 1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판결은 <문화일보>에 결코 적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는 것을 뜻한다.

항소심(서울고법)에서는 사진이 조작됐느니 마느니 입수경위가 어땠느니 하는 문제로 2년여를 끌다가 지난 18일 양쪽의 조정(<문화일보>는 8천만 원을 지급하고 신씨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으로 재판은 종결되었다.

이 사건이 마무리된 마당에 결론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결국 <문화일보>만 남는 장사를 했다. 한 여인을 발가벗긴 사실로 충분히 주목을 받았다. 또 패소판결이 아닌 조정으로 끝났으니 절반은 승리한 셈이다.

이 사건이 종결된 뒤 <문화일보>가 공식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신씨와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언론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말을 쓰고 싶다면 진심어린 반성이 필요하다. 

이 참에 우리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일부 언론사의 악의적 오보, 인격 살인에 버금가는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수십 억, 수백 억 원의 배상책임을 지워서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태그:#신정아, #마약, #문화일보, #지갑습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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