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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동안 수몰 지역의 주민을 다 이주시켰고, 보상금도 지급했다. 또 엄청난 돈을 투입해 대체도로를 만들고 학교도 지었다. 그런데 그들은 댐 건설을 중단했다. 지난 58년 동안 유지해오던 또 다른 댐도 부수기로 결정했다. 댐은 홍수를 일으켰고, 수질을 악화시켰으며, 지역경제마저 완전히 파괴했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이다.

지난 12월 8일,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일본 구마모토현을 찾아갔다. 가와베가와 댐 건설을 중단하고, 아라세 댐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일본의 뼈아픈 선택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4대강 사업도 40~50년이 흐른 뒤에 일본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 '해외기획-일본은 왜 댐을 부수나'를 통해 한국의 4대강 사업을 조명했다. [편집자말]
가와베가와댐 건설로 수몰되는 이츠키마을이 송두리째 뜯겨 나갔다. 사진은 지난 2003년 철거작업이 한창인 이츠키마을 모습
 가와베가와댐 건설로 수몰되는 이츠키마을이 송두리째 뜯겨 나갔다. 사진은 지난 2003년 철거작업이 한창인 이츠키마을 모습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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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에서 보는 여의도 난투극. 지난해 12월 8일, 일본 구마모토현 야스시로시에 도착해 여장을 풀러 들어간 숙소의 TV 화면에는 피투성이 된 채 내동댕이쳐진 'G20 국격'의 얼굴이 나왔다. 겉으로는 정의를 말하면서 법보다 주먹으로 손쉽게 목적을 달성한 여당 의원들. 사실 이 때문에 4대강 예산 심의에 한발 앞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려던 취재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가? 방송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질문이다. 4대강 사업 공정률은 30~50%. 죽을 각오로 막겠다던 야당의 방어막이 순식간에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 찾아간 가와베가와댐 예정지에 서니, 칼바람과 함께 전날의 자포자기 심정이 날아가 버렸다.

일본 규슈 섬 가와베가와 강 상류에 있는 이곳에 높이 107.5m, 총 저수량 1억3300m³ 규모의 댐이 건설될 예정이었다. 1966년 댐 건설 발표 당시 추정 사업비는 350억 엔. 하지만 2005년에 재추정한 결과 연관 사업비를 합하면 4100억 엔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곳의 공정률은 90% 정도.

40여 년 동안 수몰 예정지 주민에게 거액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가구당 1억3000만 엔으로 일반적인 보상비의 200배에 달하는 '돈폭탄'이다. 농지리모델링이라는 명목으로 2~3년 농사지어 벌어들일 수입을 보상비로 안겨준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댐 수몰지 곳곳에는 엄청난 규모의 축대가 세워졌다. 깎아지른 절벽에 대체 도로가 건설됐다. 학교와 보건소 등 제반 시설도 들어섰다. 계곡 아래쪽에는 집터 흔적만 남았고,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대규모 이주단지도 들어섰다. 이제 남은 것은 댐의 구조물을 세우는 일. 하지만 일본 건설교통성은 지난 2009년 규수 지역 최대 규모인 이 댐의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최초 대형 댐 건설 중단 선언이었다. 

물이 정체되니 더러운 뻘이 생겼고 죽음의 하천이 됐다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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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결정도 의외였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공무원들의 태도도 한국정부와는 달랐다. 우선 이 댐은 4대강에 세워지는 16개 보 규모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 토론 과정과 관료들의 태도, 그리고 치수 정책에 대한 견해는 우리 상황과 대비된다.

우선 일본의 관료들은 합리적인 토론과 검증을 내팽개친 채 공정률과 지금까지 투입된 어마어마한 예산 액수를 들먹이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댐 건설을 중단하면 손해라고 국민을 겁박하지도 않았다. 댐 한 개를 건설하는 데 40년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관과 주민이 수평적인 위치에서 토론을 벌였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했다. 이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만 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우리와 다른 결정을 했을까?

"물도, 혈액도 멈추면 썩는다. 이건 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토론 결과 내놓은 답변은 뜻밖에 간단했다. 지난해 12월 10일 히토요시(人吉) 청사에서 만난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은 "구마강 상류에 만든 이치후샤(市房) 댐은 건설된 지 15년 정도 지나니 수면에 적조가 발생했다"면서 "비소보다 15배나 넘는 독성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이 정체되니 호수 밑에 더러운 뻘이 생겼고, 댐 바로 밑은 죽음의 하천이 됐다"면서 "당장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10년 정도가 지나면 강은 반드시 죽어간다"며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음식점과 결혼식장, 택시회사 등을 운영한 CEO 출신인 그와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달랐다. 그는 지난 2007년 선거에서 히토요시의 시장으로 당선됐다. 선거 당시 그는 가와베가와댐 건설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표방했지만 1년여 뒤인 2008년 9월 시의회에서 댐 건설 철회를 정부에 요구했다.

- 애초 중립을 표방한 이유는?
"수몰 예정지인 이츠키 마을 사람들의 이전이 완료된 상태였지만, 댐 건설 찬반 여부로 마을이 분열돼 있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찬성 또는 반대를 표방하면 도시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특히 댐 건설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기에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 그럼 왜 댐 건설 백지화를 요구했나?
"독자적으로 조사했고 자료도 수집했다. 지방신문의 앙케트 조사 결과 주민 80%가 댐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좀 더 주민 의견을 듣고 싶어서 2008년 8월에 공청회를 열었다. 찬성-반대하는 사람 모두 나오라고 했고,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45명이 반대 의견을 발표했다. 찬성하는 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2시간을 비워뒀는데, 불과 2명밖에 발언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댐을 반대하기로 했다."

곳곳에서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만 동원해 '반쪽 밀실 공청회'를 열면서 논란을 벌였던 한국 상황과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단 한 명도 댐 건설에 찬성하지 않았다"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이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이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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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방식으로 조사해서 그런 의견을 청취했나?
"여러 가지 앙케트를 진행했다. 또 지역 사람을 만나 직접 인터뷰했다. 진심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술을 함께 마시면서 속내를 들었다. 주변의 대형 댐을 4차례에 걸쳐 시찰했다. 그곳의 주민도 직접 인터뷰했다. 한국 관료들도 4대강 사업에 대해 자신의 눈과 귀, 그리고 다리를 이용해서 신중하게 조사하고 결정해야 한다."

- 주민의 반응은 어땠나?
"놀라웠던 것은 내가 만난 주민 중 단 1명도 댐 건설을 찬성하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강과 공생을 하면서 자연환경을 지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댐 건설이 확정된 이상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국토교통성이 애초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논리는 무엇이었나?
"이 유역 강의 하천 수계를 조사한 결과, 댐이 없으면 몇 초간 최대 7000톤의 물이 흘러갈 것으로 예측했다. 댐을 만들어 3400톤의 물 흐름을 저지하고, 600톤은 50년 전에 만든 이치후샤 댐으로 막자는 계획이었다. 가와베가와댐을 건설해서 80년 만에 1번의 홍수를 막겠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하천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구마강은 강폭을 넓혀서 많은 양의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200년 빈도의 홍수? 그럼 250년, 300년 빈도는?"

이 대목에서 문득 정부 관계자들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강조했던 "100년, 200년만의 홍수에 대비해야 한다"는 발언이 생각났다. 매년 홍수 피해의 97%가 지천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뒤 그에게 한국 관료들의 주장을 전하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거액을 투입해도 자연재해를 완전히 막는 방법은 없다는 게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가령 5년 전에 가고시마현에 집중호우가 발생해 큰 재해가 일어났다. 120년 만에 1번 올 수 있는 대재해였다. 80년 만의 한번 홍수에 대비해 설계됐던 가와베가와댐이 건설됐어도 이 홍수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댐이 건설됐다면 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고 그 물을 방류하면서 2중으로 홍수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만약 200년만에 한 번 찾아오는 홍수를 대비해 댐을 지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이상의 홍수가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250년 만의 홍수를 대비해 더 큰 규모의 댐을 짓겠다면? 그럼 300년 만에 한 번의 홍수가 발생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재해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막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그 많은 자연환경과 희귀동식물들을 희생시키고 주민 삶의 터전도 없애면서 그런 댐을 건설할 필요가 있겠는가?"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
 다나까 노부타까(田中信孝) 히토요시 시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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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강에는 은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댐 하류 지역은 수질 악화로 죽음의 하천이 될 것이다. 그럼 은어도 죽는다. 어민도 생활을 못한다. 되레 그들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줘야 한다. 지금은 구마강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관광을 하는데 그것도 못할 것이다. 물론 댐 건설 기간에는 일시적인 경제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4대강 사업 반대론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말을 그도 반복했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녹색 뉴딜'이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지역 경제 부양 효과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건설업체들의 4대강 공사 참여율이 형편없다는 조사결과가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된 바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대기업만을 위한 돈 잔치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측이 공사 시작 1년여 만에 밝혀진 것이다. 그도 똑같은 말을 했다.

"댐 건설 기간에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역에서 댐을 건설하면 그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할 수 없다. 중앙의 대기업 건설회사만 이득이다. 대신 몇백 년, 몇천 년에 걸쳐 강과 함께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문화가 수장된다. 자연환경을 살리면서 그 문화 속에서 소득을 올려 왔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큰 이득이다."

- 40여 년 동안 댐 건설을 위해 투입된 금액이 엄청날 텐데. 투자된 돈이 아까워서라도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 시민의 생각은 어떠했나?
"물론 깨끗한 도로가 건설됐다. 이츠키촌으로 가는 데 1시간 걸렸다면 절반이 단축됐다. 공공사업으로 거액의 돈이 투자됐다. 어떤 의미에서는 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환경을 살리고 수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댐 건설을 멈추는 것이 더 큰 투자다."

"지역경제 활성화? 중앙의 대기업 건설회사만 배 불린다"

- 전력 생산에 따른 이득도 있을 텐데 환경을 위해 그걸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었나?
"1965년 댐 건설 계획이 이뤄졌는데 그때는 치수 목적이었다. 그 뒤 농업용수와 전력 생산을 위한 다목적댐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43년의 싸움의 과정에서 두 가지 목적이 사라졌다. 가령 농민들은 댐의 용수가 필요 없다고 소송 벌였고 재판에서 승소했다. '용수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수력발전을 위해 전원개발공사가 43년 동안 기다리다가 지쳐서 가와베가와댐 발전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이수'는 사라지고 '치수' 목적만 남았는데, 그것조차도 시민은 불신했다. 자연적으로 재해를 예방할 방법을 택한 것이다."

- 그렇다면 댐 건설 포기 이후의 하천 관리 대책은 있는가?
"국토교통성이 댐 건설을 중단한 뒤에 유역의 시정촌(市町村) 지사와 정부 관료와 함께 댐에 의존하지 않는 치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8번 회의를 개최했다."

- 골자는 무엇인가?
"우선 하천의 동식물에 영향이 없도록 강바닥의 토사를 걷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제방을 보강하고 하천의 폭을 넓혀야 한다. 산에 나무를 심어서 땅의 보습 능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지진은 피할 수 없지만 수해로부터는 도망칠 수 있다. 재해 경보 시스템을 철저하게 작동하면서 유량을 예측하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는 "주민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많은 시간을 들여 조사했고, 시의회에서 발표한 댐 건설 백지화 촉구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에만 3개월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어 그는 "대학 졸업 논문을 쓰는 것보다 힘들었다"면서 "필요하다면 한국에 가서 얼마든지 일본의 경험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대한민국 국회의 난투극을 보면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편법과 불법으로 질주하는 4대강 불도저를 멈추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일까?

내년 4월 철거가 시작되는 아라세댐. 아라세댐을 기준으로 상류에 있는 댐이 세토이시 댐(아라세댐 기준 50km 상류)과 이치후사 댐(아라세댐기준 80km 상류)이다. 주민들은 세토이시댐과 이치후사댐에 대해서도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가와베가와댐의 위치도 보인다.
 내년 4월 철거가 시작되는 아라세댐. 아라세댐을 기준으로 상류에 있는 댐이 세토이시 댐(아라세댐 기준 50km 상류)과 이치후사 댐(아라세댐기준 80km 상류)이다. 주민들은 세토이시댐과 이치후사댐에 대해서도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가와베가와댐의 위치도 보인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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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김병기 편집국장, 심규상 지역팀장, 허재영 대전대 교수(취재자문. 충남도 4대강 재검토특위 공동위원장), 주영덕씨(통역)


태그:#일본의 댐, #4대강 사업, #가와베가와댐, #히토요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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