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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4세가 되신 친정어머니께서 언제부턴가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리셨다. 생활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처분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무의미하거나 스트레스만 가중시키는 관계는 정리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솔직히 그동안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바보같이 다 껴안고 살았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셨다.

 

어머니의 '구조조정'이란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일이 최근 내게 일어났다. 뒤늦게 만나 친구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으나 무언가 아슬아슬 불편했던 관계에 결국은 금이 갔다. 다른 줄 알면서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이 있어도, 그 또한 내게 그렇게 느끼려니 하면서 넘어왔는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이게 바로 별 의미도 없이 스트레스만 쌓이게 만든 관계였구나. 누군가는 '우정이란 다름 아닌 우매한 정!'이라 정의내렸지만, 내겐 그 우매함마저 없었음을 스스로 고백하며 관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전혜성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이 책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에서 강조하는 '삶의 다운사이징(downsizing, 규모축소 혹은 간소화)'이 더더욱 가슴에 와 닿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저자는 본인의 학문적인 업적 이전에 큰아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보건부 차관보, 셋째 아들은 국무부 차관보급인 법률고문, 8명의 가족 모두가 11개의 최고학위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 집안의 어머니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찬사를 받고 있지만, 나이듦에는 예외가 없어 올해 83세가 되셨다.

 

책에는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의 원칙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남편과의 사별 후 거주하게 된 노인복지시설 '휘트니 센터'에서의 새로운 만남과 일상이 고루 담겨있다. 

 

자신의 전문적인 일과 업적, 자녀 교육, 가족 간의 화목, 명예 등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최선의 것들을 다 가진 상태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분이기에 한 수 가르쳐주시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교훈으로 끝나지 않을까 책을 펼치며 속으로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음을 확인한다.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열정과 사명감, 치열한 도전 정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어서 나 같은 보통 아줌마는 시작부터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 같으면 이제는 쉬어도 되는 나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될 나이라고 할 텐데 여전히 저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호기심과 감동이다. '휘트니 센터'의 새로 옮긴 노인 아파트에서도 이웃을 초대하고 강연회를 열고 그들의 일상에 시시때때로 감동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삶의 경험과 이웃 노인들의 모습에서 가치 있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린다. 가치 있는 삶이란 '나의 존재가 세상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는 삶이다'.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동시대를 산 누군가의 삶에, 기억에, 가슴에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의 삶을 통해 증명하고 있기에 책의 구절들은 결코 화려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저자는 생활 속에서 불필요하다고 느끼던 것들을 제거하는 '다운사이징'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언젠가는 올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계획도 세운다. 삶의 다운사이징은 곧 죽음에 대한 준비라는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새삼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처지에 이 책은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구체적인 실천이야 두고 두고 해나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 맨 앞에 적혀있는 차례에 밑줄을 그었다. 내용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는 소제목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삶이 지속되는 한 할 일은 남아있다...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 삶..인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바라지 않으면 섭섭하지도 않다...함께하는 것보다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스스로 삶의 간소화를 꾀하라...나를 내버려두는 시간...죽음도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전혜성 지음 / 중앙북스, 2010)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 - 죽을 때까지 삶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

전혜성 지음, 중앙books(중앙북스)(2010)


태그:#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 #전혜성, #노인 ,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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