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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금)


짐받이에서 떨어져 나간 가방.
 짐받이에서 떨어져 나간 가방.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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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가덕도를 찾아가기 직전, 부산신항만 부근의 인도에서 짐받이에 부착했던 가방 한 짝이 떨어져나갔다. 보도블록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인도에서였다. 그동안 비포장도로를 여러 군데 별 문제 없이 달려온 것만 믿고 마구 페달을 밟은 게 탈이었다. 무언가 털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뒤들 돌아다보았더니, 가방 한 짝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 한 구석이 풀썩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단지 짐받이에 거는 플라스틱 고리가 벗겨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방을 다시 짐받이에 부착하려고 보니까 고리가 아예 부러지고 없다. 이 가방은 자전거 짐받이에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수시로 짐받이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갈고리 모양의 고리가 부러지면서, 가방을 구입해 사용한 지 겨우 두 달 만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긴 그 두 달 만에 남들 일 년은 쓰고들 남을 만큼 달고 다녔으니, 고장이 날만도 하다. 이런 상황에 짐받이가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문제는 이제부터 이 짐을 어떻게 가지고 다녀야 하느냐는 거다. 임시로 짐받이 위에 얹어 줄로 단단히 붙잡아매기는 했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가방 속의 물건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일이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모양새는 더 가관이다. 지고 이고, 어딘가 먼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분명한 게 피난민 행색이 따로 없다. 짐받이 가방이 이 지경이 된 건, 가방을 구입하면서 짐받이에 연결하는 갈고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60일 넘게 여행을 하면서 그 플라스틱 고리에 가해질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무래도 너무 생각이 모자랐다.

을숙도. 낙동강하구언
 을숙도. 낙동강하구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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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받이에서 떨어져 나간 가방, 이를 어쩌나

오늘 아침, 가방을 다시 짐받이에 얹어 줄로 붙잡아매는데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이런 일을 아침저녁으로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궁리 끝에 가방을 뗐다 붙였다 할 필요없이 아예 짐받이에 완전히 고정하기로 하고 끈으로 단단히 붙잡아맨다.

끈을 잘라내지 않는 한, 앞으로 이 가방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자전거에서 분리할 수 없다. 그 안에 든 짐 역시 자전거와 함께 숙소 밖에 남겨둬도 될 만한 물건들로 채운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동안 가방 하나는 따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이런 걸 전화위복, 새옹지마라고 하나?

내가 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모두 3개다. 하나는 등에, 두 개는 짐받이에 얹혀 있다. 당연히 그날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거나 할 때는 양손에 가방 두 개를 집어 들어야 한다. 그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또 다른 잡동사니들이 있을 경우에는 옆구리에 끼거나 입으로 물고 날라야 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런 와중에 이제 어찌할 방법이 없이 가방 하나를 포기하고 나니까,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앞으로는 양손에 바리바리 짐들을 싸들고 다녀야 하는 성가신 일은 사라질 것이다. 짐 속의 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아침에 짐을 챙길 때마다 절절매야 하는 일 역시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오늘 아침, 하늘이 조금 흐릿하다. 때 아닌 황사주의보가 내려졌다. 봄철도 아니고 늦가을에 황사라니, 황당한 일이다. 방송에서는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데, 자전거여행자인 나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주문이다. 하늘이며 바다가 온통 뿌옇다. 저게 다, 안개가 아니라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라고 생각하니까 숨쉬기가 곤란하다.

송도해수욕장
 송도해수욕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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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절벽 아래 산책로, 절영해안산책로

을숙도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다대포해수욕장까지 자전거도로가 깔려 있다. 이 길은 부산에서 자전거여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길 중에 하나로 꼽힌다. 남쪽으로는 다대포해수욕장까지, 북쪽으로는 삼락습지생태공원을 지나 구포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북쪽으로는 갈대밭이, 남쪽으로는 을숙도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이 특히 아름다워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부산은 도심 곳곳에 언덕이 유난히 많은 도시다. 송도해수욕장까지 가는 도로 역시 끊임없이 언덕을 오르내린다. 그나마 도로가 전체적으로 기울기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게다가 부산은 서울만큼이나 복잡한 도시다.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다. 도로에서 길을 찾아내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송도해수욕장에서는 다시 영도까지 부산 공동어시장과 자갈치시장 앞길을 달린다. 이 길은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어 영도까지 계속 평지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부산 시내에서도 가장 번잡한 곳 중에 하나다. 시장과 연결이 되어 있어 길이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감수해야 한다.

영도.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배.
 영도.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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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해안에 조선소가 이렇게 많은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가는 길목마다 조선소에 가로막혀 돌아 나와야 한다. 조선소 주변 골목이 미로처럼 복잡하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마치 조선소를 순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한동안 쇳소리와 용접 소리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골목길을 헤매 다니다가, 더 이상 시간을 빼앗길 수 없어 다시 큰 도로를 찾아 나온다.

영도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가 조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거기에는 우리나라 해안 곳곳에 영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소규모 조선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도에서는 꼭 한 번 찾아가봐야 할 곳이 '절영해안산책로'다. 이 산책로는 우리나라 산책로 중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한 곳이다. 이 산책로를 걷다 보면, 도심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이렇게 멋진 산책로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부산 시민이 부러워진다. 바닷가 절벽 아래로 산책로가 길게 이어진다. 산책로 제방 아래로는 망망대해를 달려온 파도가 바닷가 검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진다. 그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이곳은 바닷가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풍경뿐만이 아니라, 절벽 위를 지나가는 도로인 절영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역시 매우 아름답다. 절영로는 길 자체가 바닷가 자연 공원이다. 절영해안산책로는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자전거 통행이 불가능하다. 자전거는 산책로 입구에 세워두고 안쪽으로는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절영해안산책로
 절영해안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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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절영로의 하늘전망대.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 절벽 아래가 내려다 보인다.
 영도 절영로의 하늘전망대.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 절벽 아래가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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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지 59일 만에 1만 리, 4000㎞ 돌파

영도다리 위에서 4000km를 돌파하다
 영도다리 위에서 4000km를 돌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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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를 한 바퀴 돌아서는 다시 옛날 영도다리 위로 올라선다. 그 위에서, 좀 더 정확하게는 영도다리 중간 지점에서 속도계가 4000㎞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여행을 떠난 지 59일이 되는 날 오후 3시 30분, 드디어 전체 여행 거리가 1만 리를 넘어선 것이다. 참으로 길고도 먼 여행이다.

예전에 미니벨로를 타고 왔을 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4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오는데 무려 59일이나 걸리다니, 우리나라 해안선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길다. 그 거리를 온몸으로 체감하는데, 근 두 달이나 걸린 셈이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해안선만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아주 큰 나라다. 신라시대 때 장보고가 해상 무역을 장악하게 되는 걸, 머리로는 잘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해안선을 여행하다 보면,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했는지 명약관화해진다. 그 이유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영도를 나와서는 부산 북항으로 방향을 잡는데 도로 사정이 몹시 안 좋다. 신선대 가는 길까지 컨테이너 트레일러들이 줄을 이어 달린다. 도로 위에 트레일러들이 빈 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차 있다. 그런 길에 갓길마저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내가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들이 슬금슬금 뒤를 따라오는데 마치 거대한 괴물이 뒤를 쫓는 기분이다.

북항컨테이너터미널을 들고나는 트레일러들.
 북항컨테이너터미널을 들고나는 트레일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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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운전자들은 또 그들대로 짜증이 났을 법하다. 빨리 가지도 못하고 피해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트레일러에 앞서 가는 자전거여행자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달리다 보니 결국 이런 길까지 만나게 된다. 처음부터 이런 사정을 미리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 도로는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 도로는 일종의 컨테이너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한 자동차용 도로라고 보는 게 속편하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부산은 자동차 운전자들의 도로 운전이 거칠기로 소문난 곳 중에 하나다. 그게 모두 시간을 다투는 화물 트럭들이 많이 오가는 탓이다.

그 트럭들이 주로 해안선에서 가까운 해안도로를 자주 오가는 편이다. 그러니 부산에서는 굳이 해안선을 고집해가며 화물트럭들과 몸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부산의 해안도로는 혼이 나갈 정도로 복잡하다. 도로가 혼탁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머리가 맑을 때, 좀 더 안전한 길을 찾아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런데 내가 컨테이너터미널 앞을 지나가는 길을 벗어난 뒤로도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길을 가는 도중에 그만 오륙도 방향 표지판을 놓치고, 바로 용호동으로 들어서서는 번잡한 도로 위에서 또 다시 방향을 잃는다. 마침 해가 떨어져 더 이상 달리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진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63㎞. 총누적거리는 4016㎞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신발이 도로 깨끗해지고 있다. 여행 초기 빗물에 젓고 개펄에 빠져 시커멓게 변색이 되었던 신발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회색이 되고 있다. 바닷가에서는 신발마저 풍화 작용 과정을 거친다. 이대로 한 달 정도를 더 버티면, 방금 세탁을 끝낸 것과도 같은 깨끗한 신발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영도다리 위에서 건너다본 부산대교.
 영도다리 위에서 건너다본 부산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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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대포해수욕장, #절영해안산책로, #영도, #영도다리, #부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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