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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9번째 이야기다. 이번에 소개할 판결은 다음 3가지다.

① 국회의원 풍자한 개그맨 노정렬씨, 유죄 받은 사연은.
② 이혼 전력 숨긴 남편, 반 년 만에 쫓겨난 까닭.
③ 15년간 형부와 함께 산 처제, 유족 연금 받을 수 있을까.

[판결 1] "국회의원 풍자는 되지만 동물 비유는 모욕"

[사례 1] 개그맨 노정렬씨는 정치풍자 개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교조는 지난 5월 전국교사대회에 노씨를 초청했다. 노씨는 행사장에 나타나 참석자 앞에서 입담을 과시했다. 당시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면서 시끄러웠던 때다. 조 의원은 명단공개를 중지하라는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공개를 강행했다.

때가 때인지라 당연히 조 의원에 대한 풍자가 빠질 수 없었다. 행사에 참석한 대중들은 노씨의 입담에 박장대소했지만 조 의원은 노발대발했다. 며칠 후 조 의원은 노씨를 형사 고소했다.

노씨는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노씨의 발언이 조 의원을 '모욕'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① 조전혁 의원의 별명이 '초저녁'이라는 말도 있고 '애저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② 조 의원이 뜨기는 떴는데 얼굴이 누렇게 떴습니다.
③ 사람에게 명예훼손이 되는 거지, 개나 짐승 소한테는 명예훼손이 안 됩니다.

조전혁 의원.
 조전혁 의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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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에서 모욕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욕설이다.

그런데 모욕을 주었다고 다 처벌받는 건 아니다. 형법 20조와 판례는 "어떤 글이 모욕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에도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볼 수 있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다.

노씨의 발언을 법원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법원은 ①과 ② 부분은 "조 의원의 행동으로 촉발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비판적 관점에서 풍자하였다고 못 볼 바 아니어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일단 풍자의 영역으로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③ 부분은 "동물에 비유하여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정당한 비판이나 풍자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8일 "노씨의 발언은 일부 풍자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벌금 50만 원형 선고. 

노씨는 "개그맨은 풍자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국회의원에게는 위법성이 조각되는 범위를 넓게 보아야 한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렇게 답했다.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인격권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노씨의 발언은 공인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모욕죄는 친고죄이다. 즉 피해자가 문제 삼지 않는다면 수사를 하거나 재판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고소를 자제하는 아량을 베풀었으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웃을 일 없는 세상, 남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는 개그맨을 법정에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나만의 생각인가.      

이 사건도 2심, 3심을 거치는 길고 긴 레이스가 될 것 같다. 어쨌거나 당분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지 말자. 이 판결의 교훈이다.

[판결 2] "이혼 전력 숨겼다면 사기 결혼... 혼인취소하라" 

[사례 2] A씨(남, 30세)는 올해 초 동갑내기 B씨와 결혼했다. 혼인신고도 마쳤다. 그는 7년 전 다른 여자와 혼인신고를 하여 산 적이 있었다. B씨에게 털어놓을까도 고민했지만 결혼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이 사실을 숨기고 결혼식을 마쳤다.

하지만 비밀은 없는 법. 결혼 석달 후 B씨는 그가 이혼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가족관계 서류를 보게 된 것이다. 속아서 결혼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B씨는 법원을 찾았다.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이혼? 아니다. 혼인 무효? 아니다. 바로 혼인 취소다.

대전지법 가정지원은 8일 "이혼 전력은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A씨가 초혼인양 이혼전력을 숨기고 혼인신고를 한 이상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혼인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즉 이혼 전력을 숨긴 것은 사기 결혼이어서 취소대상이라는 말이다.

과거를 무덤까지 숨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털어놓아라. 어설프게 숨겼다간 피 본다. 내 경험담이기도 한다.

이혼과 혼인무효, 혼인취소는 각기 다르다. 사진은 SBS 드라마 <그대 웃어요>의 한 장면.
 이혼과 혼인무효, 혼인취소는 각기 다르다. 사진은 SBS 드라마 <그대 웃어요>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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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이혼과 혼인 무효, 혼인 취소는 어떻게 다를까. 먼저 이혼은 남녀가 결혼하기로 합의하여 합쳐서 살다가 나중에 갈라서는 것을 말한다. 결혼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살다보니 폭행, 외도, 성격 차이 등의 이유로 헤어지는 것이다.

반면 혼인의 무효와 취소는 애초부터 혼인신고를 하는 데 흠(하자)이 있었던 경우다. 제대로 된 결혼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에 나온 혼인무효의 사례로는 ▲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가짜 결혼, 일방적 혼인신고 등) ▲ 근친(8촌이내 혈족)간의 결혼 ▲ 직계인척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경우(장모와 사위, 시아버지와 며느리 등) ▲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인 경우 등이다. 혼인무효 판결을 받으면 처음부터 결혼 효과가 없던 걸로 돌아간다. 

혼인 취소는 ① 사기나 강박으로 인한 결혼 ② 혼인 당시 상대방의 악질(惡疾) 등을 알지 못한 경우 ③ 근친혼 ④ 중혼(이중결혼) ⑤ 혼인 연령에 미달하거나 동의가 필요한 결혼에 동의가 없는 경우 등이 있다.

이중에서 ①은 3개월 안에, ②는 6개월 안에 혼인 취소 재판을 청구해야 한다. 그러니까 속아서 결혼했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취소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③의 근친혼은 혼인무효의 범위를 제외한 나머지 근친을 말한다. ⑤에 나오는 혼인 연령은 남자는 만18세, 여자는 만16세이다. 이 나이가 되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    

[판결 3] "형부-처제도 15년 살았다면 '부부'... 유족연금 지급하라"

[사례 3] 기구한 운명이었다. C씨(여, 61세)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 65년 결혼한 언니가 20여 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당시 미혼이던 C씨는 조카들을 돌보면서 형부와 가까워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동거를 시작하였다. 자상했던 형부는 부부 겸용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고 부부 동반 모임에 C씨를 데려갔다. 주변 사람들도 두 사람 사이를 부부로 알 정도였다.

그러다가 형부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C씨는 공무원이었던 형부의 배우자로서 유족 연금을 신청했으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유족으로 보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공무원이 사망하면 배우자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법에는 배우자의 범위에 "사실혼 관계에 있던 자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혼인신고는 안 되었더라도 부부로 함께 산 사람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연금제도의 사회보장적 성격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제와 형부 사이는 [사례 2]에서 살펴본 대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실제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 혼인 취소 사유까지 겹쳐 있으니 연금공단의 반응은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연금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도 지난달 25일 이같은 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비록 근친자 사이의 사실혼이라도 반윤리성, 반공익성이 현저하게 낮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리향상이라는 연금제도의 목적을 우선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 처제와 형부간 결혼이 혼인무효 사유였다가 2005년 민법 개정으로 취소사유로 바뀐 점 ▲ 두 사람의 사실혼이 주변에서 받아들여진 점 ▲ 15년간 결혼생활로 부부생활의 안정성과 신뢰가 형성된 점 등을 사실혼 인정 근거로 들었다.

형부와 처제 사이의 결혼,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사회가 충분히 인정해줄 만한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힘들게 살아온 C씨가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생활을 누렸으면 한다.


태그:#노정열, #모욕, #조전혁, #연금,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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