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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게 뒤떨어지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과 게르만인보다 약하고, 해운력에서는 그리스인만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유대인보다 가난하며, 문화력에서는 오리엔트인에 비해 미개하고, 경작력에서는 카르타고인에게 뒤떨어지는 평범한아니 더 뒤떨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로마, 자그마치 1500년 동안 지중해를 내해라 부르던 제국. 이 제국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빌려 설명하고자 한다....<기자주>

<로마인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다. 나도 열두 살이었던 작년에 처음 읽었고, 올해 다시 읽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사이사이 읽고 싶은 걸 다시 읽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략 전체를 세 번쯤 보게 되었다.

나는 이런 로마인 이야기 같은 긴 책이 좋다. 오래 읽을 수 있고, 길기 때문에 다시 또 읽으면 내가 무심코 지나친 부분이나, 기억을 못 한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짧은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새로운 게 없어서 재미가 덜하다.

이 책은 정말 대단하다. 아니 시오노 나나미가 대단하다. 생생하고 감동적이고 그리고 자세하게 들려주고 어떤 사건만이 아니라 그 사건의 원인까지 분석해준다. 이 책이 너무나 재밌어서 여러 어른들한테도 들려주었는데, 지난여름에는 우리 지역의 '생명평화모임'이라는 어른들모임에 초대받아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열다섯 권으로 이루어져있다. 3권까지는 로마의 탄생과 공화정기, 4-6권은 제정이행기, 7-9권까지는 로마의 최고 절정기, 10권은 로마의 소프트웨어, 11-12권은 로마의 쇠퇴기, 13-15권 로마의 멸망기로 분류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 로마에 대해 나쁜 인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네로가 폭군이라고 오해한 사실이나, 기독교가 로마를 구제했다는 것, 그리고 카이사르가 자기만의 제국을 세우고 싶어했다는 루머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의 설명으로는 기독교는 로마를 타락시켰으며, 네로도 나쁘지 않은 황제였고, 카이사르는 그저 로마를 구원하기 위해 '원로원파'에 대항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로마를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이다. 나는 꼭 <로마인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로마인이야기>는 약10,000쪽이나 되기 때문에 그것을 줄여 로마를 설명 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 책을 세 권씩 엮어 5편의 글을 쓸 것이다. 다음은 1권부터 3권까지의 이야기이다.

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단군신화가 있듯, 로마에도 신화가 있다. 신화에 따르면 로마는 이렇게 세워졌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지상의 무녀와 사랑에 빠져, 쌍둥이가 생겼다. 그러나 신들의 법에 따르면 인간과 신은 결혼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아레스는 테레베 강(로마를 가로지르는 강)에 로물루스, 레무스 두 쌍둥이 형제를 버렸고, 두 형제를 늑대가 키워, 그 둘이 성인이 됐을 때 각기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둘이 싸워 결국 로물루스가 이기고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 로마라는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로물루스는 이 부족에서 떨어져 나온 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옆의 나라, 사비니족의 여자들을 강탈해온다. 그러나 그 두 부족은 곧 서로 화해하고, 사비니족과 로마가 서로 대등하게 합병을 한다. 사비니족으로서는 강한 부족과 동등하게 통일을 하자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로마로써는 인구를 늘려야 하니, 별의 별 수라도 다 써야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태어난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칭찬한 로마의 동화정책은 이렇게 로물루스로부터 탄생한다. 나중의 로마 정치가들도 이 정책을 잘 활용하여 영토를 잘 넓힐 수 있었다.

로물루스는 정말 대단하다. 군사체제와 정치체제는 이 로물루스가 만든 것을 조금씩 시대 상황에 맞춰 변형했을 뿐, 로마1000년 동안 계속 유지됐다.

로마의 위치를 본 사람은 한번이라도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을 것이다. 로물루스는 로마의 위치를 잡고 건설했는지, 이탈리아의 중앙에, 그리스인과 에트루리아의 비무장지대(?)에 로마를 건국했다. 그리하여 로마 초기에 외세의 침략을 면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나중에 대로마제국의 지도를 보면, 딱 수도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가운데에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다시 로마의 역사로 돌아가면 로마초기 왕정은 로물루스를 시작으로 로마의 기틀을 잡은 누마와, 로마 성벽을 만든 세르비우스 등의 왕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왕정은 7대만에 멸망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왕이 무능해서였다. 마지막 왕 거만한 타르귀니우스의 아들이 사고를 저지르자 평민들이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다.

로마의 공화정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원로들과, 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원로원은 로마정치의 국회 같은 역할을 한다. 왕 대신 1년마다 2명의 집정관을 뽑아 정무를 보고, 세금은 재무관에게, 회계는 회계 감사관에게, 로마시의 시장과 법은 법무관에게, 평민의 보호는 호민관에게, 각종 행사를 관리하는 직책은 안찰관에게 맡겼다. 이 모든 직책의 임기는 1년에서 5년 정도이다.

만약, 비상상황이 벌어지면, 6개월 임기의 독재관을 뽑아 군사와 정치를 맡기게 된다. 로마의 군사체제는 로물루스가 만들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60명이 백인대, 1000명이 대대, 6000명이 1개 군단으로 이뤄진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한편 추방당한 타르귀니우스는 에트루리아로 망명한 후 군대를 이끌고 로마와 싸우게 된다. 여기서 로마는 시민들의 높은 사기로 대군을 무찌르게 된다.

이후, 로마는 주변 도시국가들과 로마연합을 만드는데 이것은 로마를 중심으로 나머지 나라들이 서로 동맹하지 않고, 로마 랑만 평등히 동맹을 맺는, 로마연합을 만들었다. 여기서 로마는 각각 부족의 왕들에게는 로마 시민권과 원로원 의석을 주고, 전쟁시 전리품도 나누어 가졌기 때문에, 동맹국은 외적이 몰려와도 독립을 하기보다는, '나도 로마인이니 막아야지' 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오히려 통치보다는 포용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로마연합은 제정 초기까지도 계속 유지 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로마는 행운의 여신의 도움으로 아무 탈 없이 쭉쭉 큰 것이 아니다. 로마도 멸망 직전까지 간 때가 있었다. 켈트족이 로마를 점령한 후, 한동안 만행을 저지르다 살아남은 로마인들이 금괴를 주자, 물러난 사건이 있었다. 이 충격을 회복하기 위해 로마는 반세기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로마는 이후 자신들이 멸망직전까지 간 것은 평민과 귀족의 다툼에 있다고 보고, 평민과 귀족의 사이를 좁히기 위해, 호민관의 권한을 넓히고, 평민 집정관을 임명하는 정책을 폈다.

로마가 확장 중일 때, 이탈리아의 중앙 산맥에 살고 있던 삼니움족이 있었는데, 이 삼니움족과 전쟁을 하자마자 로마가 함정에 빠져, 거의 전멸한다. 그러나 로마는 이 치욕을 극복하고, 다시금 삼니움족에게 복수를 하여, 로마 중부까지 영토를 넓히게 된다.

로마는 남쪽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칠 때 용병으로 고용된 그리스의 왕이자, 한니발의 전술적 스승인 피로스가 코끼리와 포위전술을 앞세워 로마를 공격하자, 매우 고전했다. 그러나 피로스의 예상과 달리, 로마연합이 너무도 건재하자 물러났다. 

로마는 500년 동안 이름 없던 나라였으나, 꾸준히 성장하고,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강성해진 비결은 '포용'일 것이다. 영국과 인도에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한 것이 아니라, 인도인을 영국의 국회로 끌어들이고 평등하게 지냈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은 계급의 유동성화도 있다. 로마의 계급은 원로원계급, 경제인계급, 평민계급, 해방노예로 이루어져 있다. 로마의 노예는 자유를 돈으로 사든 어쩌든 해방이 되어 노예출신으로 원로원에 들어간 자가 있을 만큼 유동성이 강한 사회였다.

사람들이 알기에 로마는, 소수의 자유 시민과 다수의 노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난 로마를 정말 멋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로마인 이야기 2 ·「한니발 전쟁」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해군대국 카르타고와 시칠리아 섬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로마는 육군은 강하여 시칠리아를 점령하지만, 해군이 약해서 번번이 습격을 당하게 된다.

로마는 즉시 갤리선을 만드는데, 항해술이 대단한 카르타고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무기를 개발한다. 까마귀. 이 무기는 적의 함선과 다리를 연결하여 해상전을 육상전으로 바꾸는 무기였다. 해양 국가들은 자기들의 전술에 만족했으나, 로마는 해군의 전통이 없었기에, 요상한 것을 배에 달 수 있었던 것이다. 항상 창의성이 중요하다.

결국, 이 해전을 바탕으로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에, 로마에 복수를 원하는 한니발 장군은 로마와 2차 포에니 전쟁을 벌인다. 로마는 군사들이 평지로 올 것이라 생각했으나,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침략했다.

한니발은 이때까지의 전통 전술을 무시하고 포위전술을 썼는데, 이 전술 덕분에 카르타고군은 소수의 군사로 적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를 휘저었으나, 로마연합은 해체되지 않고, 더 굳건해졌다.

그렇게 로마가 버티고 있는 동안, 로마는 스키피오 3세를 카르타고로 보내서 한니발과 결전을 치르게 하였다. 스키피오는 한니발 전술을 모방하여 승리한다.

이후, 한니발의 전술을 모방한 덕분에 로마는 순식간에 마케도니아, 시리아를 손에 넣는다. 이때 로마의 12000명이 100000명의 군사를 상대하여, 전멸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결국 교만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아녀자들이 몇 만의 로마군에게서 3년간 카르타고 성을 냈다. 그러나 결국 로마의 대공세에 무너졌다. 역시 포기하지 않으면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무기하나 없이 3년을 버티는 건 정말 기적이다.

이 책 이후로는 로마가 국경 밖에서 싸우기 때문에, 스릴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로마가 이 한니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적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사람이나 사고 책임자에게 다시 지휘를 맡긴 데 있는 것 같다. 이는 그들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려는 온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고, 한번 실수를 저지르면 교훈을 얻을 것이라는 까닭이다.

로마는 패배하면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을 토대로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개량하는 성향이 있었다. 이 덕에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여러 번 졌지만, 그래도 결국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한니발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

앞에서 봤듯, 로마는 방위전쟁을 하다가, 우연히 지중해를 손에 넣어 제국이 되었다.

한니발 전쟁이 끝나고 로마는 속주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10%의 속주 세를 걷는 대신, 그 돈을 안전보장으로 사용하는, 공평한 계약이었다. 여기서도 로마는 그 나라의 왕에게는 원로원 의석을 줘서 로마에 편입시키고, 온정을 베풀어 속주와 로마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다. 정말 완전한 포용정책이다. 이런 정책을 실시 한 덕에, 로마역사에서 속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로마는 갑자기 소국에서 대국이 되어버려 법과 정치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적용하기에는 국가가 너무 커져버렸다. 결국 로마가 개혁이냐, 아니냐를 놓고, 내전을 벌인다.

평민파인 그라쿠스 형제가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밀을 준다는 농지법을 만들었지만, 원로원파의 반대로 무자비하게 살해되어 로마는 평민파와 원로원파로 나뉘게 된다. 평민파는 마리우스를 중심으로 로마를 차지하나 그동안 원로원파인 술라는 소아시아 점령을 마무리하고, 군대를 이끌고 마리우스를 죽여, 원로원파와 권력을 갖는다.

술라는 낡은 포대(공화정)을 덧대어 쓰기 위해 스스로 독재관이 돼, 정치를 개혁하고, 이때부터 술라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고, 평민들을 억압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정치체제의 안정을 위해 독재관을 사임한다.

그러나 이 술라체제는 술라의 제자인 폼페이우스에게 무너진다. 폼페이우스는 어린 나이에 총사령관이 돼 해적을 소탕, 시리아를 점령하여 연공서열제를 무너뜨린다. 자기가 로마의 최고 권위자가 됨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술라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사람들은 무조건 민주주의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의 발달이 발달한 이유도 클 것이다. 지금 같은 통신의 발달이 없었던 옛날 국가로서는 권력이 한사람에게 집중돼야 통치가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공화정은 당시 로마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과감히 로마의 정치제제를 제정으로 바꾼 것이 아닐까.

이제는 다음권이 궁금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열다섯 권을 금새 읽어치웠다. 다음 편은 4-6권에 대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세 살 학생 기자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로마 역사, #로마 건국신화, #한니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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