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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세서리들이 늘어져 있는 자판대에 서서 이것저것 살펴본다. "와 이거 진짜 예쁘다!" 남자친구가 들으라는 듯이 과장된 목소리톤으로 말한다. 이게 정말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이걸 나한테 사주면 난 네가 날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왜 나는 이런 장면들 앞에서 정해진 각본이라도 있는 듯 짜여진 상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까. 여자는 '이거 예쁘다'라고 말하고 남자는 '잘 어울린다 내가 사줄게'라고 말한다. 여자는 행복하다. 남자가 이만큼 나에게 신경을 써주고 있구나,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결해 줄 것 같은 믿음마저 생긴다.
 
이게 저 당시 여자의 머릿속을 채우는 망상이며, 기대이며, 환상이다. 왜 남자친구가 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면 화가 날까 생각해보면서 또 왜 저런 기대를 가지고 있나 의문이 든다. 굳이 물질적인 이야기를 예를 들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다른 비물질적인 기대들(예를들면 전화횟수)까지 포함해서 나의 환상속의 연애는 항상 '그래야만 한다' 하는 작은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사회의 분위기를 통해 온몸으로 습득해버린 남자에 대한 환상, 연애에 대한 환상인 것이다. 내가 연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가 좋기 때문에 만난다는 원초적인 이유를 떠나서, '연애'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여러가지 상황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데이트를 계속 하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패턴과 나의 환상이 연애 할 때 나의 머릿속을 채운다면, 역으로 상대방도 자기가 생각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터. 그 환상들이 여러 부분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환상이 유입되는 경로가 비슷하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주체들이 모두 같은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패턴이 있다고 해도, 보편적인 환상이 있다고 해도 그건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 이유로 수많은 연애소설이 쓰여지고, 또 모든 남녀가 이젠 질렸다는 사랑에 다시 빠져 연애를 하고,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사람이 없어져도 죽기는 커녕 다른 사람에게로 마음이 옮겨가는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환상 속의 그대들을 내 환상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매력적인 호기심 말고도 단순히 연애는 남들과 별다를 것 없다는 위안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혼자 보내는 주말을 외로워 견딜 수 없어지고, 주위에 커플이 하나 둘 생기면 생길수록  불안해지고. 한 사회가 부추기는 커플 체제 속으로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욕망인 양 발벗고 뛰어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연애에 대해 말할 때 사랑을 분리시켜 이야기 할 수는 없는데, 사랑은 연애의 전제조건이 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동안 직면하는 의문 중에 가장 정곡을 찌르며 치명적인 것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다.

 

이것은 "왜 나는 너와 연애하는가"보다 더 궁극적인 질문이며 모든 연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결말을 보면 예측가능하다. 작가(주인공)는 사랑의 파국 앞에서 통제력을 잃고 허우적거리지만, 배신에 복수의 칼을 갈며 자신을 망가트리지만 허무하게도 '다시' 누군가에게 빠져들고 있다. 마치 '왜' 라는 질문은 사랑에 있어서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혼란스러운 감정의 근원, 불안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다시 사랑을 되찾는 법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심오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작가 자신이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을 결말로 함으로써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지 수많은 사랑의 방식 중에 작가의 사랑방식을 더했을 뿐이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나 두 사람이 가진 환상의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의 방식으로 사랑에 지쳐가고 두 사람의 방식으로 사랑을 매듭짓거나 이어 나간다는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자신의 사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심리적인 요인과 이유들을 들어 설명해도 그것에 공감을 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통할 수 있는 진실은 아닌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힌트다. 나만의 철학을 담아내며,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사랑은 자의식,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나의 공허함에는 나만 인정한다고 해서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고, 넌 특별하게 보인다고 말해주는 어떤 누군가이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한 인간 내부의 외로움에 있어 가장 독보적이고 보편적으로 공허함을 채워준다.

 

사랑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긴 해설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다면, 이제 사랑을 시작해보자. 작가의 해석은 나의 해석이 될 수 없다. 또 다시 결말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사랑을 작가도 시작하려 하지 않는가.

 

'왜' 너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네가 웃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한층 더 밝아지는 것 같은 착각, 네가 좋다고 했던 노래를 나의 엠피쓰리에 넣고 외워질 때까지 들어보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초콜릿을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상대방의 말에 초콜릿 알레르기를 감춘 채 더블초콜릿케이크를 주문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는 사실이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07)


태그:#알랭 드 보통,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연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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