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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연서戀書

.. 연서戀書를 쓸 때 그러했듯, 그 편지는 수십 번 썼다 지우게 마련이다 ..  <곽아람-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아트북스, 2009) 53쪽

보기글을 보면 첫머리에 '연서'라 적으나, 바로 뒤에서는 '편지'라 적습니다. 글쓴이로서는 '연서'가 '편지'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글을 썼을 텐데, 앞이나 뒤나 '편지'라고 또렷하게 적어 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한쪽은 '편지'라 적고 다른 쪽은 '글'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 연서(戀書) = 연애편지
 │   - 애인에게 연서를 보내다
 ├ 연애편지(戀愛便紙) : 연애하는 남녀 사이에 주고받는 애정의 편지
 │   - 여자로부터 사랑은 고사하고 연애편지 한 장 받아 보지 못했다
 │
 ├ 연서戀書를 쓸 때
 │→ 사랑편지를 쓸 때
 │→ 사랑글을 쓸 때
 │→ 사랑 담은 편지를 쓸 때
 │→ 사랑 실은 글을 쓸 때
 └ …

'연애(戀愛)'하는 사람이 주고받는 '애정(愛情)의' 편지를 일컬어 '연애편지'라 하고, 이 낱말을 줄여 '연서'로 적는다고 합니다. '연애'와 '애정'으로 이루어지는 편지라는 이야기인데, '연애'란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가리키고 '애정'이란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적는 한자가 조금 다릅니다만, '연애'이든 '애정'이든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말뜻 그대로 낱말을 빚지 않고, 이와 같은 말느낌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사랑편지] 사랑하는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라 한다면 '사랑편지'라고 적어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아니, 마땅히 '사랑편지'라고 적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랑하는 숱한 사람들부터 그렇고, 문학하는 사람들 또한 그러하며, 사전을 엮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 또한 그러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는 뜻과 느낌과 쓰임 그대로 쉽고 알맞게 갈무리해야 하며, 우리 둘레에서 사랑과 얽혀 이루어지는 일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사랑-'이라는 낱말을 앞가지로 삼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사랑이야기
 ├ 사랑소설
 ├ 사랑문학
 ├ 사랑영화
 ├ 사랑시
 ├ 사랑노래
 └ …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면 '사랑이야기'입니다. '연애담(戀愛談)'이 아닙니다. 사랑이야기를 줄거리로 삼았다면 '사랑소설'입니다. '애정소설'이 아니에요. 영화일 때에도 시일 때에도 노래일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말 한 마디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춤 한 판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며, 만화 한 칸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은 '사랑사진'이고 그림은 '사랑그림'입니다. 글은 '사랑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사랑지기'나 '사랑님' 같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랑을 즐기는 사람은 '사랑꾼'이나 '사랑즐김이'가 될 테지요. '사랑나눔'과 '사랑드림'처럼 새말을 빚으면서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을 차곡차곡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쓰신 분은 '연서'도 '연애편지'도 아닌 '연서戀書'를 이야기합니다. 왜 이처럼 글을 썼는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한글로 '연서'라고만 적어 놓으면 알아보기 어려우니 한자를 덧달았구나 싶지만, 이처럼 '연서戀書'라 적어 놓을 때 "사랑 담은 편지"라는 뜻과 느낌과 내음과 맛이 한껏 살아나는지 궁금합니다. '사랑편지'나 '사랑글'이라 적을 때에는 "사랑을 담아 띄우는 글"이라는 멋과 맛과 빛깔과 마음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한다고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ㄴ. 부정(父情)

.. "딸내미한테 용돈 주고 싶은 마음과 카츠키의 권투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마음. 일석이조의 부정(父情)이라구." ..  <아다치 미츠루/금정 옮김-KATSU! (1)>(대원씨아이,2002) 123쪽

"카츠키의 권투하는 모습"은 "카츠키가 권투하는 모습"으로 고쳐 줍니다. '일석이조(一石二鳥)의'는 '두 가지를 생각하는'이나 '둘 다를 노리는'이나 '둘 모두 바라는'으로 다듬습니다.

 ┌ 부정(父情) :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정
 │
 ├ 일석이조의 부정(父情)이라구
 │→ 두 가지를 생각하는 아버지 마음이라구
 │→ 둘을 생각하는 아버지 사랑이라구
 │→ 둘 모두 바라는 아버지 뜻이라구
 │→ 둘 다 어우러진 아버지 생각이라구
 └ …

딸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 마음을 일컬어, 한자말로는 '부정'으로 적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딸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 마음이란 '모정'이라 적습니다.

 ┌ 아버지 마음 / 아비 마음 / 아빠 마음
 └ 어머니 마음 / 어미 마음 / 엄마 마음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마음이라 한다면 '아버지 마음'이라 적어 놓으면 넉넉하고, '아버지마음'처럼 한 낱말로 적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또한, 아버지가 딸아들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아버지사랑'으로 적을 수 있고, 어머니 마음과 사랑은 '어머니마음'과 '어머니사랑'으로 적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있는 그대로 하는 말이거든요. 꾸밈없이 나누는 말이기도 하고요.

우리 마음을 펼치는 말이요, 우리 생각을 고이 가꾸는 말이기도 합니다. 널리 어깨동무하는 말이며, 두루 손잡는 말입니다. 내 사랑을 살며시 건네는 말이며, 내 믿음을 가만히 보내는 말입니다.

손쉽게 적으면 한결 넉넉하고, 살가이 적어 본다면 더욱 즐겁습니다. 따스하게 일구려 애쓴다면 차츰 기쁠 테며, 너그러이 손질하거나 추스를 때에는 한껏 멋스러우면서 아름답겠지요.

 ┌ 아이마음 / 아이사랑
 ├ 어른마음 / 어른사랑
 ├ 아빠마음 / 아빠사랑
 ├ 엄마마음 / 엄마사랑
 └ …

우리 깜냥껏 우리 마음을 꽃피우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우리 슬기대로 우리 사랑을 북돋우면 훨씬 좋으리라 봅니다. 서로서로 내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서로서로 내 사랑을 티없이 나누어 받습니다. 말 한 마디에도 사랑을 담고, 글 한 줄에도 애틋한 마음을 싣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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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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