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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연중 특별기획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그 네 번째 대상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집단들의 평화로운 합의'를 이루어낸 '사회협약의 나라' 네덜란드다. 미국식 소득의 양극화 없이 고용성장을 이룬 인간적인 모습의 사회협약모델을 심층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글 : 구영식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네덜란드편' 특별취재팀

네덜란드 헤이그 중심가인 스파우 거리에 있는 한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
 네덜란드 헤이그 중심가인 스파우 거리에 있는 한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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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정치수도 헤이그(Den Haag)에 도착한 13일 저녁, 민박집 '튤립하우스'의 주인 이정열씨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그는 10년째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데, 네덜란드인들의 '대화기술'을 이렇게 전해주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말이 많은 편이다. 대화를 잘 한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은 술이 좀 들어가야 말문이 트이는데, 이곳 사람들은 와인 한잔 가지고도 몇 시간 동안 얘기한다. 유럽 사람들 대부분 그렇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특히 대화에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논박하지만 윽박지르거나 폭력을 쓰는 경우는 없다."

흔히 '낮은 땅' 네덜란드'를 생각하면 '풍차'와 튤립'을 떠올린다. 제방에 난 구멍을 막아 네덜란드를 구했다는 한스 브링커의 이야기도 틀림없이 기억해낼 것이다. 또 예술이나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렘브란트와 고흐, 스피노자를 생각해낼 수 있고, 평소 사회적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라면 '마약·성매매·안락사 합법화'를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제 네덜란드를 '사회협약' 혹은 '사회적 대화'의 나라로 기억하자. 더욱이 노사정 협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가 파산상태에 이른 한국에서는 네덜란드가 그렇게 특별히 기억되어야 할 절박함이 있다.

'강해지려면 사회적으로 대화하라'

1581년 네덜란드의 작은 주 7개가 모여 처음으로 하나의 국가임을 선포한 유트레히트 동맹에 사용된 깃발들이 헤이그 시내 다리에 걸려 있다.
 1581년 네덜란드의 작은 주 7개가 모여 처음으로 하나의 국가임을 선포한 유트레히트 동맹에 사용된 깃발들이 헤이그 시내 다리에 걸려 있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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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네덜란드병'으로 이름 붙어진 '4중고'의 처지에 빠져들었다. 공공지출은 GDP의 60%를 넘어섰고, 실업률은 11.6%에 이르렀으며, 사회보장제도는 파산 직전에 처한 것. 결국 1980년대 초 대규모 재정적자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노사는 1982년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바세나르협약'을 체결했다. 노사가 '주고받기'(give-and-take)에 성공한 것. 이어 1993년 파트타임 고용확대와 비정규직 법적 지위 강화 등에도 합의했다(뉴코스협약). 이후 네덜란드는 성장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이룩했다. 높은 경제성장률, 낮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회안전망 완비, 정부 재정적자 감소 등 '네덜란드 기적'을 이룬 것.

네덜란드 사회협약이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노사는 지난 1998년과 2003년, 2004년, 2008년에도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고용유연성 및 안정법'도 제정했고, 세계금융위기에도 적절히 대응했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파트타임 증가 등 노동시장 유연화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사회협약은 노동재단(1945년), 사회경제위원회(1950년)와 같은 '제도화된 사회적 대화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 기구가 노사 혹은 노사정 사이의 협의 채널로 작동하며 중요한 사회경제정책을 협의하고 합의해 온 것이다. 특히 노사가 함께 설립한 노동재단에서는 임금·고용문제를 놓고 노사간 대화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과 같은 철학자 스피노자의 언명과 빔 콕 전 총리의 선거 슬로건에는 네덜란드 사회협약 모델의 근본정신이 잘 집약돼 있다.

"이 번영의 나라에는 어떠한 계급과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함께 공존하며 살아간다."
"강해지려면 사회적으로 대화하라(Strong and social, '사회적으로 대화하면 강해진다'로도 번역됨)."

노사정위 복원하지 않으면 '선진국 담론'은 허구   

98년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의 불참 등으로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올해 9월 30일 본위원회 모습.
 98년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의 불참 등으로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올해 9월 30일 본위원회 모습.
ⓒ 노사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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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1998년 1월 노사정 합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일명 '98년 노사정 대타협')에 합의하며 고통분담을 결의했다. 하지만 정리해고와 파견노동 등이 포함된 대타협은 노동진영에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노사정위원회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에 이용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네덜란드식 주고받기'와는 크게 달랐던 셈이다.

특히 '민주파 정부'로 불렸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조차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점은 참으로 뼈아픈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가 출신이 집권한 이명박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가 파산 상태에 이른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인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세계적 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 목록에도 없는 '무노조 전략'을 고수하고, 노동운동은 대화보다 투쟁에 더 많은 힘을 쏟는다. 정부는 보수-진보 성향과 관계없이 '법과 원칙'만 외치며 강경진압작전에 몰두한다. 그러는 사이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사회적 대화는 완전히 실종됐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G20 회의를 주최했다"며 '선진국론'을 설파한다. 하지만 노동과 자본의 파트너십, 노사정 사이의 사회적 대화 수준 등에서 보면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그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담론은 허구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고용없는 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대화는 절실하다. 당연히 파산 상태인 노사정위원회을 복원시켜야 한다. 이것이 사회협약 모델을 통해 고용없는 성장을 극복한 네덜란드를 찾아온 가장 큰 이유다. '제도화된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동재단과 경제사회위원회는 모두 헤이그에 자리잡고 있다.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에서 '고용안정'(employment security)으로 이슈를 이동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의 노동재단처럼, 경총(자본)과 민주노총·한국노총(노동)이 공동으로 출자해 상시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노사협의기구를 만드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오마이뉴스>는 현지시각 15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와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노동재단과 사회경제위원회, 노총, 경영자연합을 방문한다. 네덜란드 사회협약의 모델이 된 바세나르협약의 주역 중 한명인 빔 콕(Wim Kok) 전 총리도 만날 예정이다.

그 전에 노무현 정부 시절 왜 네덜란드 모델을 진지하게 검토했는지 알아보고, 수십년에 걸친 네덜란드 사회협약의 역사도 훑어보려고 한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네덜란드편' 특별취재팀 : 구영식 기자(팀장), 조명신 기자, 인수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자문)


태그:#유러피언드림, #네덜란드, #노동재단, #노사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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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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