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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5개월 만에 벌거숭이가 된 학교 운동장. 잔디 조성과 트랙조성비로 3억2천만 원이 들었다.
▲ 벌거숭이 운동장 개방 5개월 만에 벌거숭이가 된 학교 운동장. 잔디 조성과 트랙조성비로 3억2천만 원이 들었다.
ⓒ 윤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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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잔디가 환경 호르몬, 화재 위험 등을 안고 있어 논란이라면, 천연 잔디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로 대표되는 '보존'을 둘러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살아 있는 풀이다 보니 밟으면 죽게 마련. 이렇게 보호해야 할 천연 잔디를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에 깔면 어떻게 될까?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위치한 ㅅ초등학교는 지난해 가을부터 운동장에 천연 잔디를 까는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후인 올 4월까지도 잔디가 뿌리 내리는 동안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운동장 출입을 금했다. 때문에 체육 수업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시공한 트랙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4월 하순에 천연 잔디 운동장이 개방됐지만 잔디는 5개월 만에 고사했고 운동장은 벌거숭이가 됐다. 이에 10월에 다시 잔디를 심기 위해 운동장 출입이 금지됐고 지난 11월 1일 다시 개방됐다.

천연 잔디 운동장은 서울시가 '학교 운동장에 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고 도심 열섬화 현상을 완화하며, 공기 정화, 소음 감소 효과로 학습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에코스쿨' 사업의 일환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 시내 8개 학교를 시범 대상으로 선정해 총 29억8200만 원을 들여 천연 잔디 운동장을 조성했다. 각 학교 운동장 규모에 따라 최대 6억 80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이 배정됐다. ㅅ초도 그중 하나다.

"천연잔디 위에서 피구하라고? 선은 어떻게 긋나"

이 학교 김아무개 교사는 "운동장에 천연 잔디를 까느라 수업 결손이 매우 심하다. 공사 전에는 잔디 공사하느라 운동장을 사용 못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잔디 망가진다고 운동장 사용 못하게 하고... 또 몇 달 만에 다시 공사한다고 아이들한테서 운동장을 빼앗아 버려서 무척 미안하다. 아이들 보기 민망하다"고 토로했다.

한 학부모도 "처음에 학부모 의견 조사할 때는 먼지 풀풀 날리는 맨 흙바닥 운동장을 푸른 잔디로 깔아 준다기에 찬성했는데 막상 잔디 깔고 보니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그나마 뛰어놀 장소가 운동장밖에 없는데 그마저 잔디 버린다고 못들어가게 한다고 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밝혔다.

천연 잔디는 심은 뒤 한 달 가까이 물을 주며 뿌리를 내리도록 관리를 해야 하고, 발에 밟히면 고사해 몇 달 지나지 않아 다시 잔디를 심어야 한다. 잔디 공사를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공사 후에도 한동안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다.

ㅅ초의 경우도 지난해 가을 잔디 공사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휴식 시간을 이용해 뛰어놀 공간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올해 4월까지도 잔디 보호를 위해 운동장을 폐쇄하는 바람에 체육 수업에 지장을 초래했다.

한편 교육 관계자들은 다양한 체육수업을 하는 데는 맨바닥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잔디 구장이나 트랙은 학교 주변 주민들이 잠시 이용하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교육활동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 잔디를 깔면 축구를 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체육시간에 축구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된 체육수업에는 피구, 발야구, 전래놀이 등 바닥에 금을 긋고 하는 것이 많은데, 잔디 위에는 우선 금을 그을 수가 없다. 트랙도 달리기 말고는 그다지 효용성이 없어 체육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는 주장이다.

ㅅ초는 천연잔디 조성을 하기 전 학부모 설문을 포함해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과 교육 활동을 고려해 바라봤는가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반응을 봤을 때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서울시 "천연잔디 보수비 1000만원만"... 2011년 예산책정 안 해

보수 공사를 거쳐 11월 1일 다시 개방한 운동장.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러 나와 있다. 군데군데 벗겨진 부분이 보인다.
▲ 보수한 운동장 보수 공사를 거쳐 11월 1일 다시 개방한 운동장.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러 나와 있다. 군데군데 벗겨진 부분이 보인다.
ⓒ 윤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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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초기 공사에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고, 발에 밟히면 잔디가 금방 고사하기 때문에 유지 보수에도 지속적으로 비용이 투입된다.

ㅅ초 천연 잔디 운동장 조성에는 시비 1억6000만 원이 들었고(애초 서울시 배정액은 2억 1600만원), 은평구는 이번 보수에 400만 원 정도가 들었다고 밝혔다. 이 400만 원은 서울시가 초기 사업비와 별도로 은평구에 지급한 유지보수비 1000만 원 중 일부이다. 물주기 같은 일상적 관리는 학교 측에서 하지만 장비를 투입해야 하거나 벗겨진 부분에 잔디를 새로 심는 일 등은 구에서 용역을 주어 하기 때문에 별도로 유지보수비가 책정된 것이다.

[서울시 해명] "2011년 예산 지원할 것" 
서울시는 본 기사와 관련 "천연잔디 운동장 유지관리비를 2011년 예산에 책정 안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해 왔다.

서울시 조경과는 "매년 5억 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해 자치구별로 지원하고 있"으며 "2011년에도 금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학교공원화사업 유지관리비를 수목식재 사후관리비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2월 중 학교공원화사업 조성 학교와 조성 면적 대비 자치구별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아울러 "해당 초교의 천연잔디 운동장은 현재 양호한 상태"로, "이같은 천연잔디 운동장에서 피구를 할 때는 나일론 끈 등을 잔디에 설치하고,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이동하며 할 것"을 당부했다.
서울시는 "한 번 지급된 1000만 원 외에 더이상 유지보수비를 책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말대로라면 구가 관리하고 있는 유지보수비가 고갈된 뒤에는 ㅅ초가 학교 자체 부담으로 유지보수를 하거나 잔디를 걷어내야 한다. 실제 학교 측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에코스쿨 사업과 학교 공원화 사업이 모두 종료돼 2011년에는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고 밝혀 학교 측의 우려는 현실화될 전망이다.

트랙도 마찬가지다. 트랙은 교육청에서 역시 1억6500만 원을 투입해 조성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기존 운동장에도 트랙을 조성한 사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천연잔디 조성과 맞추어 트랙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유지관리는 학교 부담으로, 교육청에서는 따로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괜찮지만 오래되면 유지관리 비용이 학교에 부담될 것이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서울시, #에코스쿨, #천연잔디, #운동장,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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