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창녕향교

창녕읍 교리의 창녕 향교는 언제 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때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이를 1904년에 보수하고 1987년 동재와 서재를 복원하였다. 출입문인 외삼문, 명륜당과 동·서재, 대성전과 동·서무 등의 건물이 있으며,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 대성전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향교는 역시나 문이 잠겨 있었지만 높은 기단을 올라가면 다 건물이 보인다. 기단에는 사찰에서나 쓰일 만한 돌들이 많이 보인다.

창녕향교 전경
▲ 창녕향교 전경 창녕향교 전경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연꽃 조각이 돋보이는 큰 네모난 돌로 배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이다. 그 외에도 용도는 알 수가 없지만 분명 사찰이나 절터에서 있던 석재들이 여러 곳에 보인다.

새로운 것들이 우연치 않게 보이면 그 현장을 벗어나기가 어려워 한 번 크기와 유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창녕향교석재
▲ 창녕향교석재 창녕향교석재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창녕향교에 석재들은 옮겨온 것이 많다.
▲ 창녕향교석재 창녕향교에 석재들은 옮겨온 것이 많다.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술정리 동삼층석탑과 하씨가옥

국보 제34호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 답사에서 가장 필수적인 코스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마침 11월 7일 답사 당일에는 동탑제가 열리고 있었다. 탑 주변에서 차도 무료로 주고 민요 등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술정리 동탑제
▲ 술정리 동탑제 술정리 동탑제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크기와 조각수법이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한 위풍당당한 작품이다. 탑의 명칭에 동(東)자를 붙인 것은 한 절터 안에 2개의 탑이 세워져 있어서가 아니고, 술정리에 2개의 탑이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지킴이 혜일 스님이 행사 관계로 바쁘셨지만 잠시 뵙고 인사만 드리고 왔다.

하씨가옥

하병수 가옥으로 전에 알려진 이 가옥은 시장 골목길 안에 있지만 정비되어 술정리 동탑에서 옆으로 가는 길이 있다. 현재 술정리 하씨 초가라 불리며 하병수 어르신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집에 계셨다. 입구 대문채를 지나서 사랑채로 돌아들면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다. 안마당에 깔린 잔디 위로 징검다리처럼 돌을 깔아 마치 줄을 맞춰 놓아 안채로 가게 된다.

술정리 하씨 가옥
▲ 술정리 하씨 가옥 술정리 하씨 가옥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서쪽으로부터 작은방, 대청, 큰방, 부엌이 있는 구조로, 동쪽에 앉은 것이 특이하다고 한다. 못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며 지붕은 쇠풀로 덮은 초가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다. 시골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추억 속의 집이라 푸근함마저 느껴진다.

술정리 서삼층석탑과 직교리 당간지주

술정리 서탑은 동탑과 거리를 두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며 이중기단에 세운 이 석탑은 동탑과 같은 절에 있던 것은 아니라고 대체로 보고 있다. 어디선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다.

술정리 서삼층석탑은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 술정리 서삼층석탑 술정리 서삼층석탑은 주변이 잘 정비되어 있다.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주변이 공원화되어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으나 문화재 안내판의 위치가 조금은 옮겨서 설치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지금은 거의 설치되지 않는 예전 형태의 큰 안내문은 다소 의외였다. 몇 차례 안내문의 형태를 달리해 세웠는데 최근 것보다는 예전의 형태가 더 주변과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었다.   
직교리 당간지주
▲ 직교리 당간지주 직교리 당간지주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술정리 서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월을 비켜간 듯 주택가의 좁은 골목에 서 있는 직교리 당간지주는 한쪽 지주 상부에 작은 기둥을 깍아 놓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빠른 시일 내에 주변을 정비해 충분한 공간이 확보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을 와서 봐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정비되리라. 

사리 석조광배

작은 단칸 전각 안에 광배만 모셔져 있는데 머리 광배와 몸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새겨진 문양이 뚜렷해 주목되는 작품이다. 타원형의 몸 광배에는 덩쿨무늬와 꽃무늬를 새겼고 머리 광배와 몸 광배의 바깥 부분에는 불꽃무늬를 배열했다. 경계선에는 구름에 앉아 있는 작은 부처를 대칭으로 조각했는데 정상에 1구, 좌우에 각 3구씩 모두 7구를 조각했다.

사리 광배 문양이 화려하다.
▲ 사리 광배 사리 광배 문양이 화려하다.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불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지만 통일신라시대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되며 주변에는 대좌가 있는데 역시 문양이 우수한 편이다.

영산 만년교와 연지, 석빙고

영산면 동리에는 보물 제564호 영산 만년교가 있다. 만년교는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돌다리로,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린다. 주변은 공원처럼 잘 정비되어 있어 다리의 분위기가 한결 돋보인다. 조선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다시 쌓아 놓은 것이다. 대대적인 전면 보수를 해서인지 예전의 모습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영산 만년교
▲ 영산 만년교 영산 만년교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영산 연지는 만년교 바로 앞에 있다. 3.1 민속문화제가 시작되는 3월에 학업 성취, 건강기원, 사업번창 등 군민과 관광객들의 소망을 담은 3000여 개의 소망등이 연지 못을 환화게 비춘다고 한다. 주위에 영산면 사무소와 만년교 등이 있고 도로변이라 찾기도 쉽다.

연못에는 섬이 5개 있는데 이 섬 가운데 하나에 향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조선 고종 2년때 만들어진 못으로 영산면을 감싸안고 있는 영축산의 화기(火氣) 때문에 마을에 자주 불이 나자 화기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는 휴식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어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영산 연지
▲ 영산 연지 영산 연지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영산면 교리 길가에는 사적 제169호 영산 석빙고가 있다. 주변이 한참 정비가 이루어지는지 공사 현장처럼 보인다. 다른 석빙고들은 보물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이곳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얼음 창고로 조선 후기의 읍지에 따르면 현감 윤이일이 세운 것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높고 뒤로 갈수록 낮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이다.

영산 석빙고
▲ 영산 석빙고 영산 석빙고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내부는 거칠게 다듬은 큰 돌로 쌓은 네모진 형태로 규모가 다소 작다.

하루 종일 둘러본다고 해도 여유롭게 둘러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유적지를 간직한 고장 창녕. 돌아오는 길에 유명하다고 하는 도천 진짜순대를 맛보고 답사를 마무리했다.

도천 진짜 순대
▲ 도천 진짜 순대 도천 진짜 순대
ⓒ 김환대

관련사진보기



태그:#창녕향교, #술정리동탑, #영산 만년교, #영산 석빙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