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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학년 아이들이 수학시간에 15시간 보충해야 할 수학학습내용입니다. 교과부에서 학교에 교사용 교재와 CD만 제공하였습니다.
 올해 5학년 아이들이 수학시간에 15시간 보충해야 할 수학학습내용입니다. 교과부에서 학교에 교사용 교재와 CD만 제공하였습니다.
ⓒ 교과부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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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까지 우리 반(5학년) 아이들과 '소수의 나눗셈'을 공부하였다. 4학년 때 '나머지가 있는 나눗셈'을, 5학년 2학기 초반에 '소수의 곱셈'을 배웠고, 이번에는 소수의 원리를 이용해 소수점 아래까지 몫을 구하는 공부였다.

마지막에는 반올림까지 이용해 소수의 몫을 구하는 과정이 나왔다. 그 다음으로 내용이 연결되는 소수와 분수의 관계, 이상·이하 같은 개념에 대한 보충학습에 들어갔다.

5학년은 올해까지만 7차교육과정으로 배우고 2011년부터는 2007개정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2007개정교육과정 내용이 어려워져 지금은 고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이 아래 학년으로 내려가게 됐고, 이런 이유로 못배우게 된 내용에 대해
보충학습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수업에선 수학책도 수학 익힘책도 없이 TV만 보면서 아이들에게 내용을 이해시켰다. 보충학습하는 내용이 지금 쓰는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고, 교과부가 학생들에게 준 교재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과부에 수차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니 보충교재를 전국적으로 인쇄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충교재가 없어 공부를 못해요. 책 좀 주세요. 그림의 떡 초등 교과서, 신중한 교과개정 아쉽다 )

소수와 분수의 관계에 대한 교재 내용입니다. 7차교육과정에서는 6학년에 배웠던 것을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5학년에 배우게 됩니다. 수의 범위는 4학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수학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나마 이 아이들은 교과부에서 책도 받지 못한 상태로 공부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소수와 분수의 관계에 대한 교재 내용입니다. 7차교육과정에서는 6학년에 배웠던 것을 2007개정교육과정에서는 5학년에 배우게 됩니다. 수의 범위는 4학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수학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나마 이 아이들은 교과부에서 책도 받지 못한 상태로 공부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 교과부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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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에서 모른 체 하니 내가 있는 학교에서는 12월 추경예산을 편성해 아이들 수만큼 인쇄해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보충교재를 인쇄하지는 않았지만 수업을 해보니 연관된 내용이라 지금 보는 게 좋을 것 같았고 그런 이유로 교재없이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다음에 학교에서 인쇄한 교재로 복습할 것이라고, 교육과정이 바뀌는 과정이라 이런 식으로 공부할 게 있다고 안내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교과부의 은밀한 유혹... "선생님 학교 부수만 알려 주세요"

교과부장관이 교과부메일링을 하는 교사들에게 보내는 긍정의 편지입니다. 장관이 직접 현장과의 소통을 위해 블로그도 만들고 학교 현장을 직접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교과부장관이 교과부메일링을 하는 교사들에게 보내는 긍정의 편지입니다. 장관이 직접 현장과의 소통을 위해 블로그도 만들고 학교 현장을 직접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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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구할 기회는 전에도 있었다. 9월 29일, 교과부장관 정책담당비서관이라며 전화가 왔다. 장관이 선생들에게 보낸 전체 메일에 내가 답장을 썼고, 쓰면서 4, 5학년 학습 결손을 보충할 교재가 없다고 적었는데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비서관에게 제발 이번에는 책을 좀 보내달라고 하니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쯤 지나 장관 비서실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대뜸 우리 학교에서 필요한 부수가 얼마냐고 물어본다. 이유를 물어보니 전국 학생들에게 책을 주려면 5억원이 필요한데 예산이 부족해서 우리 학교만 인쇄해준다는 것이었다. 

교과부 비서실 "예산이 부족해서"... 교과부에 5억원이 없다구요?

너무 기가 막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내용은 대강 이렇다.

"일선 학교에서도 예산이 부족하면 사업을 다시 점검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거나 긴축재정으로 급한 일을 해결하는데, 교과부에서도 가능한 방안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

"돈도 돈이지만 전국에 인쇄해주는 것에 대한 의견이 다 다릅니다. 어떤 장학사는 당연히 해 줘야 한다고 하고, 어떤 장학사는 해 줄 필요가 없다고 하고요."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고, 아이들이 배워야 할 내용인데 당연히 교과부에서 책을 주셔야지요."

"그러면 좋겠지만 예산이 부족해서요. 그래서 선생님 학교에라도 인쇄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만 해주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예산편성해서 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런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고 있는 학교들이 많아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있을까봐 그 동안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물론 전국 학생들에게 주면 좋지만, 한 학교라도 문제를 해결하면 좋지 않겠어요? 장관님이 현장과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시는데요."

"됐습니다. 우리만 하는 건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이 말을 들은 동료 교사들은 젊은 장관이라 세세한 데까지 관심을 쏟는 줄 알았더니 결국 이렇게 나오냐며 실망한 모습들이다. 교육과정 심의회에 참여한 선배교사는 기가 막혀 하며 "나라가 맞냐?"고
한소리를 했다.

교과부의 학습권 침해는 어떻게 해결하나?

교과부는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위해 2%인 학습부진아를 골라낸다며 전국 일제고사에 해마다 170억 원 이상을 쏟아왔다. 시·도별로 채점하느라 들어가는 돈만해도 수십억원이다. 그런데 교과부가 교육과정을 바꿔놓고 죄 없는 초등학생들에게 책도 안주고 어려운 내용을 해결하라고 한다. 교과부가 나서서 부진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과부의 직무유기이고, 학습권 침해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학교 골라가며 책 주겠다는 건 학생들을 차별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인가?

교과부는 그동안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연가투쟁을 한 전교조 교사에게 학습권 침해 운운하면서 징계를 했다. 사전에 수업을 조정해 수업을 못받은 학생들이 없어도 무조건 학습권 침해라며 징계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교과부가 나서서 수업을 못하게 하는 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교과부가 본인의 학습권 침해는 어떻게 해결할지 전국의 교사와 학부모는 궁금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2010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학습결손 문제를 해결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장관님도 이 사실을 아신 이상 한 명의 아이들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교과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바랍니다.



태그:#학습결손, #2007개정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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