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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판결 4번째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신생아 수혈 거부 사건, 선거법 위반 당선무효형  판결들, 야동 셀카에 무죄를 선고한 사연 등을 소개한다.

종교적 이유로 신생아에 수혈 거부... 법원 판단은

[사례①] 생후 1개월 된 강소생(가명) 양은 선천성 대동맥 판막협착증, 심방심실 중격결손증 등 이름도 생소한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강양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A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았다. A병원은 완치를 위해서는 '폰탄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3단계까지 거치는 이 수술은 1단계를 수혈의 방식으로 시행하면 30~50%, 무수혈로는 5% 미만의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병원측은 예측하였다.

병원측은 수혈 방식의 수술 계획을 세우고, 강양의 부모에게 동의를 구했는데 뜻하지 않게 난관에 부딪혔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강양의 부모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완강하게 수혈을 거부한 것이다. 병원 측은 윤리위원회를 거쳐 또다시 설득하였으나 강양의 부모가 "수혈을 안 하고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겠다"고 여전히 거부하자 법원을 찾게 되었다.

병원 진료행위에서 환자의 동의와 선택(자기결정권)은 필수 요소다. 법원도 헌법상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 본다. 신생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신생아는 의사를 표시할 능력이 없어서 친권자인 부모가 대신 동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의사가 최선의 방식이라고 제시한 치료방법을, 환자의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동부지법은 "친권행사가 자녀의 생명 신체의 유지, 발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존중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법원 "수혈 거부, 정당한 친권행사 범위 넘어서는 것"

SBS 드라마 <산부인과> 홈페이지 화면
 SBS 드라마 <산부인과> 홈페이지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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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강양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적절하고 필수적인 치료방법은 수혈을 수반하는 수술"이라며 그런데도 "종교의 교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고 있는 부모들의 행위는 정당한 친권행사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강양의 의사에 대해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임을 고려한다면 강양은 수혈에 동의하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비록 부모들이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어 수혈에 대한 동의를 강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생명권은 다른 기본권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긴급한 사정 등을 볼 때 수혈을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지난달 21일 "부모들이 수혈 행위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병원 측의 진료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의 판단은, 생명권이 없으면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다른 어떤 기본권도 있을 수 없으므로 생명권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수혈거부와 관련 대표적인 판례 하나가 있다. 1980년 대법원 판결이다. 어느 11살 소녀가 전격성간염에 걸렸다. 장내출혈의 증세까지 보여 병원에서는 최선의 치료법으로 수혈을 권유하였으나 소녀의 어머니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완강하게 거부·방해하였고 얼마 후 소녀는 사망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 대법원은 어머니에게 유기치사죄를 적용, 처벌하였다. 마치 딸을 위험한 장소에 두고 떠나서 죽게 한 경우와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야동 셀카 유포 무죄"... 이유는?

[사례②] B씨(40대·남)는 평소 친분이 있는 C씨(여성)가 운영하는 노래연습실에 자주 갔다. B씨는 인적이 뜸한 시각 C씨와 단둘이 룸에 들어갔다. 그는 휴대전화로 C씨의 하반신 은밀한(?) 곳을 촬영하였다. 게다가 이 사진을 자신의 친구에게 전송하기까지 하였다.

B씨는 무슨 죄로 처벌받았을까. 예상과 달리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B씨는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C씨를 폭행, 협박한 점도 함께 재판받았는데 그 점은 유죄로 인정되었다). 

검찰이 기소한 죄목은 성폭력범죄처벌법 13조 카메라 등 이용촬영이다. 이 조항은 이른바 화장실, 지하철 등에서 몰카를 찍거나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촬영 ·배포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상대방의 승낙을 얻었을 때에는 적용할 수 없다.

법원은 B씨가 문제의 사진을 찍을 당시 C씨가 개의치 않았고 그 뒤에도 계속 친분관계를 유지한 점 등으로 보아 강제 촬영이 아니기 때문에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나아가 B씨가 친구에게 전송한 행위 역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정리하자면 남녀가 합의해서(혹은 묵인 하에) 야동 또는 야한 사진을 찍었다면 죄가 되지 않고, 더 나아가 나중에 유포되더라도 적어도 당사자끼리는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야동 수준의 셀카를 유포하면 아무런 죄가 되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만일 인터넷에 유포하면 일반 야동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처벌법 제12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해당되어 처벌 대상이다. 오프라인에서 CD로 구워 돌렸다면 형법 243조의 '음화반포'에 해당한다. 만일 영리 목적으로 배포하였다면 더 무거운 죄목이 적용될 것이다(만일 위의 사례에서도 검찰이 다른 죄목으로 기소하였다면 유죄로 인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애인 사이였을 때 찍었던 야동이, 헤어진 뒤 흉기로 변할 수 있으니 청춘 남녀들은 이별 후를 대비할 필요도 있겠다.

선거는 결과만 중요? 지방선거 당선무효 판결 속출

SBS 드라마 <시티홀>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시티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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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그냥 듣기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인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1, 2심에서 약 30명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③] D군수는 자칫하면 임기를 다 못채우게 생겼다. 말 한마디 때문이다. 그는 지방선거 직전인 5월 26일 거리연설 도중 상대 후보자를 향해 "여러분의 가슴에 많은 괴로움을 끼치고 지금도 재판중인 E후보를 심판하는 날이 되셔야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이날을 포함, 사흘 동안 비슷한 연설을 하였는데 상대 후보는 재판중이 아니었다. B군수는 당선무효 기준선인 벌금형 1백만 원을 훨씬 넘는 5백만 원을 선고받았다.

상대후보가 재판중이라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난달 18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일반인이 들었을 때 도덕적·윤리적인 문제로 당시에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며 이렇게 판결했다.

D군수는 "수사와 재판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채 한 발언"이라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원은 "행정학 박사로 대학강의를 했던 D군수가 수사와 재판을 구분 못 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수사기관 진술 등을 볼 때 재판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법원은 "동일한 내용의 연설을 3회 반복한 점, 당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상대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 점 등을 감안,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며 중형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례④] F씨는 2만표 차이로 현직 구청장을 따돌리고 구청장에 당선되었다. 철도기지창 이전 사업 공약이 주효했다. F씨는 자신의 노력으로 구 전체의 숙원사업이었던 철도기지창 이전 적지를 찾아냈고 인근 자치단체로부터 이전 부지 제공약속까지 받아냈다는 내용을 선거공보에 실었다. 이 공약은 주민들에게 먹혔다. 하지만 낙선한 상대후보는 허위공약 때문에 선거에 졌다며 그를 고발하였다.   

F구청장은 "선거일정이 바빠 선거공보의 구체적인 문구를 확인한 적이 없다"며 실무자의 실수로 돌렸지만 법원의 판단은 냉정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달 28일 D구청장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였다.

법원은 "철도기지창 이전공약이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고, 상대후보자가 재임기간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항의전화를 받는 등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D군수와 F구청장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한 상태다.


태그:#여호와의증인, #셀카, #선거법, #당선무효, #수혈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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