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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확률과 통계' 영역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제시한 설명이다. 설명이 옳은 학생을 고른 것은?

정희 : 우리 반 수학 시험에서 남학생 19명의 평균은 84점이고, 여학생 15명의 평균은 86점이니까 반 전체의 평균은 85점이야.
인수 : 주사위 2개를 던져서 나온 두 눈의 수를 곱했을 때 짝수인 경우의 수와 홀수인 경우의 수는 같지 않아.
민지 : 7일 동안 학교 식당 이용자 수의 평균은 146명이었어. 그러면 평균보다 많이 이용한 요일의 식당 이용자 수의 합과 평균보다 적게 이용한 요일의 식당 이용자 수의 합은 같아.
영수 : 주사위를 던져 3의 눈이 나올 확률은 1/6이야. 그러므로 어떤 실험에서 3의 눈이 5번 나왔다면 최소한 30번은 주사위를 던진 것이 확실해.
상미 : 나와 동생은 흰 공 2개와 검은 공 3개가 들어 있는 주머니에서 공을 한 개씩 뽑아 흰 공이 나오면 이기는 게임을 했어. 뽑은 공을 다시 넣지 않아도 누가 먼저 뽑든 공평한 게임이야.

① 정희, 상미 ② 인수, 민지 ③ 인수, 상미 ④ 민지, 영수 ⑤ 민지, 상미

난데없이 웬 확률 문제냐고? 이 문제가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던 반교원(가명)씨에겐 인생이 걸린 문제다. 반씨가 이 문제를 맞힌 것으로 인정된다면 교사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교원 임용고사를 다시 보아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조금 걸리고 머리가 아프더라도 이 문제를 한 번 풀어보기 바란다. 특히 '상미'의 말이 맞는지, 틀린 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마음속으로 답을 정했다면 이제 사건의 내막으로 들어가 보자.

KBS 드라마 <공부의 신>에 나온 수학 공부 비결.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KBS 드라마 <공부의 신>에 나온 수학 공부 비결.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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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임용고사 확률문제, 당신이 선택한 정답은?

2008년 11월, 전국 16개 교육청별로 2009년도 공립초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임용고사)이 치러졌다. 이 시험의 합격자는 1, 2, 3차 시험점수와 대학성적, 가산점 등을 합하여 다득점자순으로 정해졌다.

반교원씨도 이 시험에 응시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아깝게 불합격하고 말았다. 합격자와의 점수 차는 아주 근소해서 만일 객관식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답을 인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첫머리에 소개한 '확률과 통계' 문제였다. 반씨는 이의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반씨만이 아니었다. 서울행정법원을 비롯해 수원, 부산, 대구 등 전국 7개 법원에서 이 한 문제에 당락이 걸린 수험생들의 소송이 이어졌다.  

정답이 몇 번이라고 생각하는가. 시험을 주관한 교육청은 정답을 3번으로 확정했고,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은 '정답 없음'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객관식이 두 가지로 해석돼도 일단 골라야 할까

정답에 도전해보자. 일단 확실히 맞고 확실히 틀리는 설명만 추려내 본다. 인수의 설명은 맞고, 정희, 민지, 영수의 설명은 틀리다. 여기까지는 별로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상미다.

상미의 설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미의 진술 중 '흰 공이 나오면 이기는 게임'이라는 설명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해석 1]
나와 동생이 공을 순서대로 한 개씩 뽑아 먼저 흰 공이 나오는 쪽이 게임에서 이기고 그때 게임이 종료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공을 순서대로 한 개씩 뽑아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게임이 시행되고, 이길 확률은 먼저 공을 뽑는 사람이 3/5, 나중에 뽑는 사람이 2/5가 된다. 상미의 설명은 틀린 것이 된다.

[해석 2]
나와 동생이 각자 공을 한 개씩 뽑아 그 결과를 비교하여 흰 공이 나오는 쪽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으로 해석한다. 게임의 승부가 반드시 가려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뽑는 순서에 관계없이 어느 한 쪽만이 흰 공이 나와 이길 확률은 모두 3/10이 된다. 상미의 설명은 옳다.

즉, [해석 1]로 보면 문제의 정답이 없게 되고 [해석 2]로 보면 3번이 정답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대한수학회 등 관련 학회들의 의견도 갈렸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결은 어떻게 되었을까.

판결 역시 2개의 흐름으로 갈렸다. 먼저, 행정법원과 수원, 부산, 청주지법은 출제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정답 없음'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행정법원 사건의 결과를 뒤집은 서울고법을 비롯해, 대전, 대구지법은 정답을 3번으로 처리해도 문제없다고 판결했다.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던 반씨는 1심에서 구제를 받았으나, 2심(서울고법)에서 다시 불합격 처분되어 현재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학자들도 법원도 엇갈린 정답... 소송은 대법원까지

법원의 결론이 갈린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서울고법 등은 출제자의 재량과 객관식 시험의 특성을 강조했다. 서울고법은 "출제자는 어떤 용어나 문장 형식을 써서 구성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재량권을 가진다"며 "일부 표현이 부정확하지만 출제의도 파악과 정답 선택에 장애를 받지 않을 정도라면 재량권의 남용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같은 입장을 취하는 대전지법도 "객관식 시험 특성상 가장 적합한 하나만을 정답으로 골라야 한다"며 "문제의 일부 용어표현에 있어서 다소 부정확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5개의 답항 중에서 확실히 정답에서 배제되는 항을 빼면, 설명이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는 상미가 포함된 답항(3번)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행정법원 등은 문제 자체의 부정확성이 정답 선택을 올바르게 못 하게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입장이었다. 행정법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가장 가까운 답을 고르도록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애초의 출제의도가 아닐 뿐 아니라 수학문제의 본질에 반한다"며 정답이 없다고 판시했다.

부산지법 역시 "대학수학회 등 상당수 전문가들이 '상미'의 설명은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히는 등 상미의 설명이 수험생에게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주어진 조건이 명확하지 못한 확률·통계문제는 오류가 있다"고 행정법원과 결론을 같이 했다.

"객관식 답은 하나" VS "불확실한 확률문제는 오류"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출제자나 시험 주최 측의 재량권을 다소 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즉, 출제자는 어떠한 내용의 문제를 어떻게 출제할지 재량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다만 그 재량권도 "수험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출제의 내용과 구성에서 적정하게 행사되어야 할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을 때는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쟁점은 이 문제가 출제자의 재량권을 넘어설 만큼 부정확한 문제이냐 아니냐가 될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반씨를 비롯한 예비 초등학교 교사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생겼다. 반씨는 끝내 웃을 수 있을까.

"객관식 시험은 확실히 맞는 것이 없다면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가장 적합한 문제를 골라야 한다"는 의견과 "수학·통계 문제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면 잘못된 문제이므로 답이 없다고 처리해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태그:#임용고사, #아는만큼보이는법, #법원, #출제오류, #객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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