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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온 후, 1년 만에 여행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모두 5회에 걸쳐 기사를 올릴 예정입니다. 부족하지만, 소중히 정리해 올립니다. 앞으로 올릴 여행기의 목차와 아내와 함께 다녔던 곳은 기사 아래에 있습니다. - 기자 주

이제 돌아가야 한다.
▲ 여행기 끝날 때쯤. 이제 돌아가야 한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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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에서

서울이 지겨웠다. 항상 문을 꼭꼭 잠그고 살아야 하는 나의 집이 지겨웠다. 창문이라도 닫고 있으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지를 전혀 모르는 그런 내 집이 지겨웠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맞닥뜨리는 세상도 지겨웠다. 상처를 주고받아야 하는 생활도 지겨웠고, 온갖 편리한 도시의 문명 또한 지겨웠다. 그 지겨움 앞에서 종종 흘리는 눈물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지겨움과 눈물을 뒤로 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지겨움과 눈물일랑은 고이 접어 서쪽 바다 멀리 버리고 돌아오고 싶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자락에 서 있다. 여행은 확실히 생채기 난 나와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위로는 차고 넘쳐흘렀다. 그 어떤 '빨간약'보다도 효과가 확실한 치료제였다.

길 위에서 참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상처 난 가슴 한쪽을 이제는 노란색으로 변한 들판에 문지르며 위로를 받았다. 누가 들판을 그리 어여쁜 노란색으로 가꾸었는지 그에게 감사했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서울은 처음부터 내게 잘못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서울에 사는 누구도 처음부터 내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다만 태어나고 성장해 익숙한 공간이라는 이유로 괜히 지겨워하고 미워했을 뿐이다.

우리는 쉽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지겹다 말한다. 그래서 가끔 여행지에서 근사한 풍경이라도 본다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살고 싶다고 느꼈을 그곳이 누구에겐가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자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더욱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여행지에 대한 감탄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삶과 지금 살고 있는 그곳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이란 사전에 기록된 단어 이상이 될 수 없다. 행복은 어쩌면 풍경 좋은 여행지가 아니라 먼지 쌓인 바지 주머니 속이나 나의 왼손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안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자신이 언제 태어날지를 미리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여행자라고 해도 자신의 여행이 언젠가는 끝날 것을 안다. 이쯤에서 끝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행의 끝에 서니 가슴 한쪽이 서늘하다. 끝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여행 첫날의 기억이 꿈만 같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날이 되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천천히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었다. 느리게 짐을 싸고, 서둘지 않고 숙소를 나왔다. 방문 앞에서 우리는 잠깐 포옹을 했다. 돌아서 나오는데 아내가 잠깐 훌쩍였던 것 같다. 아내의 눈물을 예상해 위로의 마음을 준비했는데, 다행히도 아내는 다시 덤덤해졌다. 오히려 내 마음이 먹먹하다. 영화의 끝부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처럼 기차 안에서 나와 아내는 조용했다. 마음속으로 지난 여행을 되풀이하고 있었을 테다. 여행은 길었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았다. 밤이 깔린 시간, 우리는 서울에 서 있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일상으로.
▲ 여행이 끝나고 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일상으로.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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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후유증

이렇게 돌아왔다. 세어보니 44일이다. 꿈만 같은 44일이었다. 여행의 모든 장면이 아득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여행이었지만, 이렇게 끝나고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나는 실은 돌아오는 게 무서웠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두려웠다. 다시 밥벌이에 나서야 하며, 다시 도시에 서야 하는 것 또한 겁이 났다. 여행이 끝난다는 사실보다 일상에 다시 서야 하는 게 두려웠나보다. 일상이란 결국 이렇게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내는 말한다.

"난 실은 두려움보다 설레는 느낌이 더 강해. 여행을 하다보니까 말야. 여행이 일상이 된 것처럼, 서울 가서 생활하는 일상도 여행처럼 느끼고 살면 되잖아. 그치?"

그동안 이렇게 나았구나. 서울을 떠나기 전만해도 그리 마음 아파하던 아내가 이렇게 강하고 밝게 변했구나.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 안다.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그렇게 긍정적으로 말해주었지만, 그럼에도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는 일이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일상의 두려움이 엄습할 때 지난 두 달 동안의 기억으로 살자. 길에서 만났던 사람과 꽃과 나뭇잎과 들판에 익어가던 곡식을 보았던 기억으로 살자. 온몸으로 받은 햇살과 바람 내음을 기억하며 살자. 일상으로 돌아와 며칠을 이렇게 내게 주문을 걸고 있었다. 주문의 힘이 언제 깨질지 나도 모른다. 다만, 언제고 다시 주문이 깨지는 날, 그때도 무모하게 여행 짐을 싼다면 행복의 조건 하나쯤은 항상 갖고 살고 있는 거다.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했다. 일상은 부부가 함께 단지 두 달 동안의 여행을 하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말했다. "이렇게 여행을 다녀왔다고, 어디 가서든, 누굴 만나든 뻐기지 않을 거야." 그래, 지난 44일 동안의 기억은 우리 마음속에만 차곡차곡 채워두면 그만이다. 그거면 족하다.

여행을 시작할 때쯤에는 많이 변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조금 더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변하고, 그만큼 마음 또한 넉넉해졌으면 좋겠다고 원했다. 하지만 여행이란 사람을 한순간에 변화시키는 마법이 아니다. 여행 전과 나는 다르지 않다. 여행을 출발하던 그날 아침의 나와 44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날의 밤거리에 선 나는 절대 다르지 않다. 다만 마음의 위로는 충분히 받고 왔으니 이만하면 만족한다. 이쯤이면 되었다.

이제 다시 밥벌이 전선에 선다. 이제 다시 비루하지만 거룩한 싸움을 준비한다. 낯선 곳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던 나와 아내도, 그 시간 밥벌이 전선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당신도 모두 위대하다. 승리도 패배도 없는 전선이겠지만, 그 전선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비루한 인생은 위대하다.

자, 이제 다시! 거룩한 싸움을 시작한다.

이렇게 웃음을 얻고 돌아왔다.
▲ 여행이 끝나고, 이렇게 돌아왔다. 이렇게 웃음을 얻고 돌아왔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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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여행 안내서
■ 목차
― 1. 여행이 시작되기 전
"우리 잠시 어디로든 떠나자. 한 달이나, 두 달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함, 또는 용기
여행도 일상이 될 수 있을까

― 2. 단지 44일 동안①
'카메라를 왼쪽으로 멜까? 오른쪽으로 멜까?'
길, 구불구불한 이 땅의 길
걸으며 느낀 행복

― 3. 단지 44일 동안②
길에서 사람을 만났네
여행을 해도 부부는 싸운다
여행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니!

― 4. 단지 44일 동안③
섬과 노을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우리 여행의 노하우
축축한 마음이 햇빛에 마르던 날
그곳에서의 시간, 오늘이 며칠이지?

― 5. 여행 후
여행의 끝에서
여행의 후유증

■ 참고<지난 여행 일정>
* 1차(9. 1.∼9. 28.)
서울→장성(9. 1.∼2.) → 광주(9. 2.∼3.)→영광(9. 3.∼4.)→백수해안도로(9. 4.∼5.)→백바위해수욕장(9. 5.∼6.)→나주(9. 6.∼7.)→목포(9. 7.∼8.)→우이도((9. 8.∼10.)→목포(9. 10.∼12.)→영암(9. 12.∼14.)→해남(9. 14.∼15.)→완도(9. 15.∼16.)→강진·화순(9. 16.∼17.)→순천(9. 17.∼19.)→고흥 거금도(9. 19.∼20.)→고흥 녹동(9. 20.∼21.)→청산도(9. 21.∼24.)→보길도(9. 24.∼28.)→완도→목포→서울(9. 28.)

* 2차(10. 5.∼10. 20.)
서울→부산(10. 5.∼10.)→통영(10. 10.∼12.)→전주(10. 12.∼13.)→군산(10. 13이∼16.)→고창(10. 16.∼17일.)→부안(10. 17.∼18일.)→전주(10. 18.∼20.)→서울(10. 20.)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timerain95)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부여행, #전남, #걷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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