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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일동안 아내와 떠난 여행 이야기
여행을 다녀온 후, 1년 만에 여행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모두 5회에 걸쳐 기사를 올릴 예정입니다. 부족하지만, 소중히 정리해 올립니다. 앞으로 올릴 여행기의 목차와 아내와 함께 다녔던 곳은 기사 아래에 있습니다. <기자 주>

길을 나섰던 어느 날. 오랜만에 게으르게 일어나 방문을 열고 본 풍경. 거기에 있던 아내의 뒷모습.
 길을 나섰던 어느 날. 오랜만에 게으르게 일어나 방문을 열고 본 풍경. 거기에 있던 아내의 뒷모습.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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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란 늘 예고하지 않고 찾아온다. 내게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바람처럼 예고하진 않지만,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흔들고 가는 그런 존재. 바람이 분다한들 누가 바람을 보았다 할까.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여행에 대한 바람은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없다고는 말 못한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약속하진 않았다. 약속이란 항상 미래를 위한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때론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언제나 깨질 수도 있는 게 또한 약속이다. 해서 많은 약속 같은 건 생략했다. 다만, 될 수 있는 한 많은 여행을 함께 가자고, 또는 혼자 가는 여행도 언제든 기쁘게 보내주자고. 단지 그런 약속만을 했다.

여행을 떠나기 1년 전쯤부터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아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저 가끔 위로해주었다. 또 가끔은 술에 취해 함께 우는 일이 전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게 전부였다. 그러다 나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힘이 빠진 자리를 술로 채우려 했고, 마음이 힘들어 견디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풀이됐다. 그러다 다투고, 다치고, 서로의 꼬인 마음을 풀어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서로가 내뱉은 말은 다시 칼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꽂히는 일이 반복됐다. 이대로는 견디기 힘들어 무언가 뾰족한 대안을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럴수록 복잡해지고 깊게 가라앉기만 했었다. 그러다 아내가 말했다.

"우리 잠시 어디로든 떠나자. 한 달이나, 두 달쯤."

아내는 바다에 아픈 마음을 버리고 왔다. 바다는 아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아내는 바다에 아픈 마음을 버리고 왔다. 바다는 아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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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

아내는 여행을 가자는 말을 내뱉고 거짓말처럼 두 달 만에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사실 나는 안다. 마음이 힘들어 더 이상은 회사를 다닌다는 게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표를 던질 때쯤 아내의 마음은 많이 아팠다. 문득문득 멍할 때가 많았고, 숨 쉬는 것조차 자주 힘들어 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과 밀폐된 지하철을 타는 일을 두려워했다. 차라리 실컷 눈물이라도 흘리면 속 시원할 것을, 아내는 그러지도 못했다. 글을 읽고 있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를 때도 있었고,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아내 또한 당장의 현실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평범했기에 그때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여행이 절실했다. 세상을 구할 영웅에게만 있을 사명감 같은 건 우리에게 없었다. 그저 내 한 몸 편하고, 내 마음 평화롭게 하는 게 당장의 숙제였다. 아내의 마음을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때는 이미 습하고 더운 날씨로 변하고 있었다. 날씨만큼 짜증나던 일상이었다.

실은 내게도 여행이 필요했다. 생채기 난 마음을 끌어안고 우는 아내를 더는 볼 수 없었다. 위로가 거듭될수록 습관이 되었고, 나 또한 마음은 바닥을 쳤다. 빈 마음을 언젠가부터 소주로 채우고 있었다. 나 또한 위로가 필요했지만, 이런 사실도 나중에 깨달았다. 이렇게 떠난 여행이었다.

아내가 회사를 나온 직후 여행을 준비했다. 단지 며칠 동안 떠나는 여행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해서 될 수 있으면 오래 떠나보자 하였다. 생각해보니 가장 오래 떠돌던 여행이라곤 열흘을 갓 넘긴 게 전부였다. 그래, 그렇다면 한 달쯤, 아니 두 달, 석 달, 할 수만 있다면 가서 오랫동안 오지 말자, 그렇게 아내와 함께 다짐했다.

떠나기 여러 달 전부터 이런 결심을 마음속에 꿍꿍이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나쁜 결심이 아닌데도 차마 떠들고 다니질 못했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떠나기 전날까지 나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내 등만한 배낭이 무거운 여행 짐을 한 움큼 집어 삼키고 현관 앞에 앉아 있었음에도 날이 밝으면 기차를 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여행을 위해서는 단 하나, '용기'만 있다면 충분하다. 단지 요만큼의 용기가 부족해 '다음에 가면 되지'하고 마음을 바꾸지만 분명히 '다음'에도 가지 못할 이유가 하나쯤 더 생기는 게 여행이다. 통장의 잔고는 마이너스이고, 당장 월말에 결제해야 할 공과금이 우리를 삼킬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가 한 일이라고는 마음 속에 무모한 용기라는 불씨를 지피는 것이었다.

첫 목적지를 정하고 기차표만 예매했을 뿐  그 다음 행선지는 정하지 않았다. 계획이라고는 주로 남도를 떠돌자는 것, 할 수만 있다면 섬에 들어가 며칠 지내자는 것 정도. 상황에 맞춰 아내와 상의하고, 결정하고, 길을 나서 걸으면 그만이었다. 둘만의 여행이니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 길이었다.

아내 옆에 나 또한 이렇게 앉아 있었다.
 아내 옆에 나 또한 이렇게 앉아 있었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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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그러나 가끔은 혼자인 채로

여행을 가기 며칠 전, 아내가 물었다.

"여행도 일상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여행이 일상이 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아내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일상이 될 만큼 여행을 오래 떠나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또는 '일상'이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지겨움'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매일매일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의 비슷한 생활의 반복. 그래서 우리는 일탈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다만 며칠 동안이기에 여행에서 일상을 느낀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래 지속된다면 여행도 일상이 되고, 지겨움으로 변할 수 있을까. 과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은 옆구리 어딘가에 묻었다. 여행을 떠난다면 아내의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여행을 가기 전,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첫째,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착한 마음으로 인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분들에게 아주 작은 피해도 남기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둘째, 많이 걷되 무리하지 않고, 힘들면 어디든 주저앉아 쉬기로 했다. 그래도 힘들면 버스를 타고, 누군가 차나 경운기의 옆자리를 허락하면 감사히 올라타겠다고 결심했다.

셋째, 끼니때마다 남김없이 먹되 욕심 부리지 않고, 술이라도 마신다면 추하게 취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넷째,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를 카메라에 담는다면 항상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면 보여 드리겠다고 생각했다. 다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가끔은 아내와 따로 걷기로 하였다. 서로에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다짐하고 길을 떠났다. 길 위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날지 나와 아내는 알지 못한다. 여행의 추억을 미리 만드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모든 여행은 설레고, 두렵다. 설렘과 두려움을 이만큼 가슴에 품고 떠난 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44일 동안 아내와 함께 했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처럼, 우리의 배낭도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처럼, 우리의 배낭도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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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여행 안내서
■ 목차

― 1. 여행이 시작되기 전
"우리 잠시 어디로든 떠나자. 한 달이나, 두 달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함, 또는 용기
여행도 일상이 될 수 있을까

― 2. 단지 44일 동안①
'카메라를 왼쪽으로 멜까? 오른쪽으로 멜까?'
길, 구불구불한 이 땅의 길
걸으며 느낀 행복

― 3. 단지 44일 동안②
길에서 사람을 만났네
여행을 해도 부부는 싸운다
여행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니!

― 4. 단지 44일 동안③
섬과 노을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우리 여행의 노하우
축축한 마음이 햇빛에 마르던 날
그곳에서의 시간, 오늘이 며칠이지?

― 5. 여행 후
여행의 끝에서
여행의 후유증

■ 참고<지난 여행 일정>

* 1차(9. 1.∼9. 28.)
서울→장성(9. 1.∼2.) → 광주(9. 2.∼3.)→영광(9. 3.∼4.)→백수해안도로(9. 4.∼5.)→백바위해수욕장(9. 5.∼6.)→나주(9. 6.∼7.)→목포(9. 7.∼8.)→우이도((9. 8.∼10.)→목포(9. 10.∼12.)→영암(9. 12.∼14.)→해남(9. 14.∼15.)→완도(9. 15.∼16.)→강진·화순(9. 16.∼17.)→순천(9. 17.∼19.)→고흥 거금도(9. 19.∼20.)→고흥 녹동(9. 20.∼21.)→청산도(9. 21.∼24.)→보길도(9. 24.∼28.)→완도→목포→서울(9. 28.)

* 2차(10. 5.∼10. 20.)
서울→부산(10. 5.∼10.)→통영(10. 10.∼12.)→전주(10. 12.∼13.)→군산(10. 13이∼16.)→고창(10. 16.∼17일.)→부안(10. 17.∼18일.)→전주(10. 18.∼20.)→서울(10. 20.)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timerain95)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부여행기, #44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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