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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볼로냐 경제모델의 비밀이다. 인구 40만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 북동부 중소도시 볼로냐. 1970년대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 한때 빈민의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던 곳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 볼로냐를 이끌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도 볼로냐가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경제전문가와 협동조합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볼로냐 취재팀은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건설 등 각 분야 협동조합과 기업 등을 방문한다. 또 사회경제의 권위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볼로냐 대학) 등 주요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빨간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도시 전체에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중세 르네상스양식의 건물들을 가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9세기이후 좌파 정치 성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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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정리 : 정원각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볼로냐 시를 중심으로 전국에 분포하는 레가협동조합은 생협운동을 해온 나에게 운동의 가능성과 상상력을 크게 확장해 주었다. 생협이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뛰어 넘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줄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여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에 고용되어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주택, 여행, 문화 등도 협동조합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3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열심히 땀 흘리면 가능하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레가나 스페인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인 몬드라곤이나 '천사들만이 사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는 그들의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그 곳 역시 끊임없는 탐욕과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영리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 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업체라는 의미일 것이다. 협동조합이 영리 기업과 다른 것은 이윤을 자본가 소수가 독점하는 자본 기업과 달리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사업을 함께 책임져서 협동의 결과인 잉여를 나누는 것일 뿐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한국의 생협이 이제 협동하는 삶을 위해 출발했다면 레가는 이미 상당 부분 이루어 냈고 그 영역을 이탈리아와 세계에 보다 많이 퍼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레가협동조합 모델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 생협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적어볼 예정이다.

협동조합의 꿈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삶의 현장 볼로냐

우선 레가협동조합이 우리에게 던져준 것은 협동조합과 생협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이다. 볼로냐에서 만난 레가협동조합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서민들에게 물가를 안정시키며, 집이 부족하면 집을 건축하고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직한 사람에게는 물건 가격을 10% 할인해 주고 심지어 노숙자도 협동조합을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게 지원한다. 꿈을 꾸는 사회와 개인에게 희망이 있다. 그런데 그 꿈은 구체적이고 손에 잡혀야 한다. 레가협동조합은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두번째는 특수성을 가지면서, 일반성을 지향하고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성공하는 협동조합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정체성(또는 특수성)을 가져야 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일반적, 보편적인 방향 속에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레가가 더 많은 조합원, 더 넓은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러므로 협동조합이 특정 지역, 계층, 이념,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워야 '조합'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탈리아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우 매장 운영과 제품 취급 과정에서 그들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는 값싸고,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과 함께 공정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지고 있다. 사진은 볼로냐 인근 지역 농민들이 직접 재배, 생산한 야채와 과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우 매장 운영과 제품 취급 과정에서 그들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는 값싸고,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과 함께 공정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지고 있다. 사진은 볼로냐 인근 지역 농민들이 직접 재배, 생산한 야채와 과일을 보여주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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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에 충실한 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만난 레가협동조합의 관계자들은 자본과 경쟁하는 사업체로서 협동조합의 목적과 역할 등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고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와 민주적 운영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 기업이 영리 추구를 위해 시도하는 노동자 해고와 달리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노동자의 안정된 고용과 물가 안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업을 위해 외국 협동조합과 연대하고 ICA(국제협동조합연맹)와 소통하고 있다. 이는 대자본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나 세계 협동조합의 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레가생협이 초국적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여 프랑스 생산자협동조합과 협력하는 것은 몬드라곤 생협이 독일, 프랑스의 생협과 연대하여 까르푸와 경쟁하는 것과 함께 의미가 크다. ICA나 유럽의 협동조합과 교류도 거의 없고 공정무역에도 인색한 우리나라의 일부 생협이 주의 깊게 봐야할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협동조합 내부 경제의 완결성을 강화하고 있다. 레가에서는 생산자, 소비자 등이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협력하고 기계, 건축, 건설, 유통, 농업, 식품, 금융, 서비스 등 협동조합을 통해서 못하는 분야가 없다. 특히, 완성 제품을 만드는 기계와 설비를 외부 영리 기업이 아닌 협동조합이 만들게 한다. 협동조합과 관련된 건물이나 집을 지을 때도 협동조합에서 한다. 이는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비도 가능하게 한다. 

1920년 일제때 시작한 한국생협의 실패와 한계

이제 눈을 우리나라 생협으로 돌려보자. 우리 생협의 역사는 1920년대 일제침략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시작된 민간 협동조합 운동은 1930년대 총독부의 탄압, 1950년 전쟁, 1960, 70년대 독재 정권의 방해와 경영 실패 등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환경오염이 등장한 1980년대 중반, 시대를 반영하여 지금과 같이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생협'으로 재건했다.

그런데 친환경 농산물은 생산량이 적어 전체 농산물 중에서 10% 이하며 가격이 비싸다. 그러다보니 조합원 수나 매출 규모가 작다. 출범한지 25년이 지났지만 전체 조합원은 30만 세대가 조금 넘어 전체 1692만(2009년 기준) 가구 중에 2% 정도고 매출은 약 4000억 원이다. 이는 친환경 농산물 시장의 10%, 전체 100조가 넘는 식품산업의 0.5%도 되지 못하는 규모다.

한국 생협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로써 성과와 한계가 함께 있다. 온난화 등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생각했을 때에는 성과지만 경제적인 약자들에게 품질 좋은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한계가 많다. 다행히 2010년 3월 다양한 생필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제 우리 생협이 해야할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 레가와 같이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5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정치, 경제, 사회적 사건이 터지고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두 세대 가까이 지나야 하는 50년은 너무나 긴 시간일 수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고 긴 호흡이 필요한 운동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 희망을 생협, 협동조합이 그려야 한다.

두번째는 생협에 경제적 약자들이 참여하고 노동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대응해야 한다. 현재 중산층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생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하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의 안정된 일자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초기 협동조합의 본래 정신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생협은 장기적으로 다양한 생필품의 취급과 취급하는 물품의 가격 그리고 노동자협동조합과 연대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

지난 7월 23일 오후 자연드림 양천생협 신정점에서 한 주부가 친환경 유기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자연드림 양천생협 신정점에서 한 주부가 친환경 유기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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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전망과 생태환경 보전, 경제적 약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야

셋째는 생태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 환경문제는 특정인,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기부터 환경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한국 생협은 계속 활동해야 한다. 특히, 생태계에서 가장 약한 종이 제일 먼저 멸종하듯이 환경이 파괴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 약자인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그리고 노인과 어린이, 여성과 장애우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점차 본격화되고 있는 대자본의 공세를 막아낼 능력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아 대자본이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형 유통 자본들이 친환경농산물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우리 밀 분야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ICA)를 비롯하여 다른 나라 생협, 협동조합과 협력, 교류, 연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의 다양한 협동조합. 생협 운동을 알 수 있고 자본의 공세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제3세계와 공정무역을 더욱 강화하여 생산지가 협동조합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어려울 때 ICA를 비롯하여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았듯이 이제는 제3세계에 도움을 주는 생협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 보편적인 정신, 협동조합의 가치를 실천하는 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아이쿱생협은 한국의 여러 생협 가운데 하나로 한국 생협의 한계는 극복하고 장점은 이어가려고 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친환경 농업을 지지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자, 서민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생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충북 괴산에 건설 중인 친환경 식품가공, 연구 단지인 '자연드림 클러스터'다.

그리고 노동자협동조합의 하나인 직원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고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들과 공정무역을 강화하며 국제협동조합연맹에 참여하고 있다. 아들, 손자 때에 꽃피울 협동조합 운동을 위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생협 운동에 이글을 읽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 본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현지 취재 : 김종철 기자(팀장) 이승훈 기자, 편집 자문 : 정태인 경제평론가, 신성식 경영대표(아이쿱 생협), 정원각 사무국장(아이쿱 생협연구소)


태그:#유러피안?드림, #볼로냐, #협동조합, #아이쿱, #에밀리아로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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