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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씨, 안녕하신가요? <오마이뉴스>는 13일 뗏목을 타고 당신의 편치않은 뱃속으로 들어가 청진기를 들이대려고 700리 뱃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첫날 내성천 회룡포를 지나 삼강주막에서 출발, 상주 경천대까지 내려온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뗏목이 파손돼 부득이하게 뭍으로 올라와 새로운 육상 여행을 시작합니다.

홍수예방, 수질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창자를 파헤치고, 농지리모델링이란 급조된 명분을 내세워 비옥한 땅을 불모지로 만드는 4대강 사업. 당신의 장기를 파헤치는 공정이 30%정도 진행됐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살아있는, 그래서 살릴만한 가치가 충분한 당신의 '생얼'을 그대로 보여줄 예정입니다. 현장 상황은 실시간으로 트위터 등을 통해 생중계할 예정이며, 동영상 기사로도 송고됩니다. 시민기자와 누리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15일 오후 경남 창녕군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현장 부근 한 마을 입구 도로변에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여러개 내걸려 있다.
 15일 오후 경남 창녕군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현장 부근 한 마을 입구 도로변에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여러개 내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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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 붙인다고 해서 옛날처럼 쫄고 잡혀가고 그런 거는 없어요. 지금은 우리의 권리를 찾는 그런 단계입니다. 우리 권리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회에 불만 많은 '의식화'된 시민이 아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땅밖에 모르는 농민(김창수 경남 창녕농민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4대강 사업 콩고물이 떨어지는 낙동강변에서, 그것도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경남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주민들이 쌍수 들고 4대강 사업 환영한다는 낙동강 상류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 '땅의 여자', 4대강뒤 어찌될지...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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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시골 동네, 4대강 반대 플래카드에 '발칵'

15일 오후 경남 창녕군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현장 부근 한 마을에 'MB정부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구호가 현수막으로 내걸려 있다.
 15일 오후 경남 창녕군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현장 부근 한 마을에 'MB정부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구호가 현수막으로 내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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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경청하라 - 송진1구 경로회 회원 일동

지금까지 '외부사회단체의 4대강 반대 집회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만 신물 나게 봤던지라,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혹 다른 곳에서 온 사회단체들이 붙인 거 아닌가, 내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명하게 써 있었다. '송진1구 경로회 회원 일동'.

조현기 함안보피해대책위 집행위원장.
 조현기 함안보피해대책위 집행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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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는 정부 말 그대로 믿고 공무원들 말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착한 농사꾼들만 있는 '시골'이 아니었다. 경남 창녕 도천면 송진리 주민들은 15일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 떡 하니 4대강 사업 반대 플래카드 10장을 붙였다. 덕분에 군청이고 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단다. 이 지역 공무원들, 앞으로 좀 피곤하시겠다.


"여기는 정치적 성향으로 보면 한나라당 이쪽이고요. 대부분 사람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몰랐고, 설명을 들은 적도 요구한 적도 없었습니다. 아~ 당연히 국책사업이니까,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까 했지요. 보가 10m 이상 올라온다고 할 때도 이거 좀 이상하네, 그 정도로만 생각했죠."


명색이 함안보피해대책위 집행위원장인데 구호까지는 아니어도 신랄한 비판이 쏟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현기 집행위원장의 말소리는 참 조용조용하고 느릿느릿했다. 다른 주민들도 비슷했다. 목에 핏대 세우며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랏님 하는 일에 싫은 소리 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일까. 그래도 보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답이 척척 나왔다. 조 위원장 말마따나 '학습효과'다.

투수계수도 모르던 농민들, 두달만에 2.5m를 끌어내리다

15일 오후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에서 건설중인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 현장.
 15일 오후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에서 건설중인 '4대강 사업' 함안보 공사 현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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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사업 구간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함안보. 또 낙동강 사업 구간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함안보피해대책위. 이들이 처음부터 함안보를 반대한 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박재현 인제대 교수는 함안보로 인한 침수 가능성을 제기했다. 높이 7.5m의 함안보가 세워지면 낙동강과 남강의 수위가 상승해 가뜩이나 저지대인 인근 지역이 침수된다는 것. 적은 곳도 아니고 1350만 평이 습지로 변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수자원공사에 알아봤더니 그 주장은 잘못됐다, (토양에서 물빠짐 정도를 나타내는) 투수계수가 1만7000배 과다계상됐다, 이러더라고요. 사실 저는 투수계수라는 말도 모르고 1만7000배가 어떤 정도인지도 몰랐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침수' 악몽을 기억하는 마을 주민들은 되레 박재현 교수에게 화를 냈다. 당신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하느냐, 정말 맞는 말이냐고. 조 위원장은 그걸 양심적인 학자가 호되게 당했다고 표현했다. 이후 함안군을 비롯 침수 예상 지역인 창녕과 의령군의 요구로 열린 설명회에서도 수자원공사는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받을 수는 있겠지만 박재현 교수의 주장은 잘못됐다는 것.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불과 2개월 만에 입장을 바꾼다. 함안보 관리수위를 7.5m에서 5m로 낮춘 것. 문제없다고 해놓고 왜 관리수위를 낮췄는지 설명을 요구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박재현 교수가 근거를 하나하나 제시하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5m로 관리 수위 낮출 때 투수계수를 뭘 썼느냐고 물었더니 박재현 교수 것을 썼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에 5m로 낮춰도 침수된다고 박 교수가 말했다고 했더니 또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더군요. 수자원공사가 처음에는 박재현 교수 보고 학자가 공갈친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니 인근 지역 주민들은 정부 말을 하나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처음에는 문제없다고, 학자가 주민들 현혹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야금야금 그 지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국책사업' 함안보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함안보 만들 수도 있다... 단 낮게 하자"

조명래 경남 함안수박생산자협의회 사무국장.
 조명래 경남 함안수박생산자협의회 사무국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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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우려하는 문제는 3가지 정도. 관리수위 5m를 유지해도 8m까지는 침수 피해를 입게 된다. 농사 짓는 게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둬 놓으면 댐효과를 불러와 냉해, 서리, 안개 피해가 나타난다. 이는 농작물 생장에 영향을 주게 돼 농민들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또 댐 주위 사람들이 관절 등 건강문제를 많이 호소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 임희자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조건을 만드는 게 보 설치"라고 단언했다.

함안은 전국 최대의 수박 생산지다. 벼농사보다 소득이 월등히 높고 겨울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이모작이 가능해 함안의 효자 소득원이다. 문제는 수박이 물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

"함안보를 쌓으면 수위가 올라가고 저지대에는 지하수가 역류하게 됩니다. 수박이 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물이 많으면 뿌리가 썩습니다. 또 이곳은 원래 안개가 많이 끼는데 보가 생기면 더 많아져 작물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조명래 함안수박생산자협의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역시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조용조용하게 말을 이어간다. 저지대로 상습적인 침수 지역이라 물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일정 부분 인정했다. 수박 농사를 많이 하는 대산면 지역 역시 지대가 낮아 낙동강을 정비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 또 갈수기에 너무 물이 없어 피해를 입기도 하기 때문에 보도 필요하다고 했다. 요지는 적절하게 정비하고 적절하게 물을 가두는 건 동의하는데 너무 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창수 경남 창녕청년회 사무국장.
 김창수 경남 창녕청년회 사무국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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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마을도 의견은 비슷했다. 도천면 송진리의 김창수 창녕청년회 사무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갈수기가 되면 농업용수가 모자라서 강물을 끌어들이기 어렵습니다. 그건 물길을 대는 조그만 공사를 하면 됩니다. 모래를 조금만 덜어내면 되지요. 굳이 강물을 5m까지 가둬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 설치하는 거 좋다, 그럼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게, 농작물이 피해 안 가게 정비만 해달라, 5m까지 물 가둬서 피해주지 말라. 함안보 인근 주민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일반 수중보처럼 만들면 절대 반대 안 한다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처럼 결사 반대도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2m만 더 낮추자"... 촌부들의 국책사업 싸움 성공할까

이곳 주민들은 아직도 정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듯했다. 조명래 국장도 "저희는 정부를 믿고 있습니다, 농업에는 지장을 안 주게끔 우리 농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소박하게 밝혔다.

"궁극적인 목표는 보를 안하는 겁니다. 그런데 꼭 해야 한다면 양보할 수밖에 없지요. 보를 하되 3m로 관리수위 낮추자는 겁니다. 우리 보고 죽으면서까지 자기네들을 살찌워 달라고 하는 거, 이건 아니지 않나 합니다. 농민들에게 이렇게 피해를 주는 게 국책사업은 아니잖아요."(조현기 함안보피해대책위 집행위원장)

순하디 순한 시골의 촌부들이 정부가 하는 국책사업에 시비를 걸었고 결국 7.5m에서 5m로 관리수위를 끌어내렸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국책사업이면 무조건 오케이했던 농민들은 2m를 더 끌어내릴 수 있을까.

* '낙동강은 강이다' 특별취재팀(트위터 해시태그 : #낙동강은강이다_)
취재 : 김병기 국장, 김경년 부장, 박순옥-최지용 기자
사진 : 권우성 팀장
동영상 : 박정호-오대양 기자


태그:#4대강, #함안보,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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