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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치커리는 왕고들빼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쌉쌀한 맛이 꽤나 강하다. 매해 주말농장을 하면서 모종 몇 개만 심어도 여름밥상을 맛있게 한다. 적치커리만 먹을 때는 그 쓴맛이 강하지만 상추에 한 잎씩 올려 싸먹으면 고기가 없어도 심심하지가 않다. 우리 집은 샐러드보다 상추에 얹어 싸먹기를 더 즐긴다. 노지에서 자라난 푸성귀의 쓴맛을 식구들은 좋아한다.


올 4월 주말농장에 각종 푸성귀의 모종을 심으면서 적치커리는 못 심었다. 아쉬웠지만 우선 쌉쌀한 맛을 보여줄 레드치커리와 치커리가 있으니 족하리라 싶었다. '레드'와 '적'의 단어가 의미하는 뜻은 같을 텐데, 모양은 다르다. 레드치커리는 붉은 빛이 도는데 결각 없이 상추처럼 넓적하고, 적치커리는 붉은 빛이 도나 잎이 좁고 길며 고들빼기처럼 결각이 심하다. 맛은 둘 다 쌉쌀하다.

 

 

노지에서 무공해로 푸성귀를 기르다 보면 대충 그 특성이 눈에 들어온다. 청색의 치커리는 오래 가지 못한다. 금방 꽃대가 쭉 올라와 버려서 먹을 수 없게 된다. 대신 레드치커리는 상추가 끝나도록 자란다. 하지만 그것도 입맛 돌리기 용으로 조금 심기 때문에 상추에 계속 얹어 먹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농장에서 뜯어온 쌈만 보면 적치커리는 없냐고 묻는다. 할 수 없이 5월 말에 씨를 사서 심었다. 씨로 심으려니 모종보다는 많게 뿌려졌다. 늦게 심었지만 쑥쑥 잘 자라 밥상에서 효자 노릇을 했다.


7월 장마가 시작되면 노지의 푸성귀들은 녹아 버리거나 대궁이 올라와 더 이상 자라지를 못하고 씨 맺기에 들어간다. 그런데 늦게 심은 적치커리만은 싱싱했다. 뜯어서 나누어 주고 싶어도 사람들은 상추만 찾지 적치커리는 쓰다고 마다한다. 우리도 계속 되는 여름철 장마에 손 쓸 틈이 없어 가끔 뜯어다 먹고는 그냥 밭에 두었다. 그래도 적치커리는 풀과 함께 섞여 잘 자랐다. 비속에서도 녹지 않고 대궁이 더 단단해졌다.

 

8월 중순이 되면 가을 배추농사에 들어가야 한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주말농장이 대부분 그렇듯이 봄에는 말끔하던 밭이 여름에 들수록 잡초에 먹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집들이 많다. 그러다가 배추를 심을 때가 되면 다시 밭갈이에 들어간다.

 

 

우리도 배추농사 때문에 잡초와 함께 여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적치커리를 모두 뽑았다. 한 짐이다. 상추를 사서 그 위에 한 다발씩 얹어 나누어 줄 수도 없고, 난감했다. 남편이 김치를 담가 보라고 한다.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푸성귀라서 물쿼지면 어쩌나 싶어 망설여졌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김치를 담기도 한다고 되어 있다. 쓴맛이 나는 적치커리에 소화를 촉진시켜 주는 물질이 들어있으며,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비타민A. C가 들어있고, 간장질환, 이뇨작용, 해열, 간염, 특히 담석증에 효과가 뛰어나다는 정보도 얻었다.

 

 

김치는 우리 집 고들빼기김치 담듯이 담갔다. 우선 억센 밑동은 조금 다듬고 심심한 소금물에 두어 시간 담가 숨을 죽였다. 풀물에 고춧가루, 멸치액젓, 마늘, 생강, 파를 넣고 버무려 마지막으로 깨소금을 뿌렸다. 겨울에 먹는 고들빼기김치에는 밤도 편을 쳐 넣지만 뺐다. 실온에 하루쯤 두어 간이 배도록 한 후에 냉장고에 넣었다.

 

사오일 뒤 꺼내 먹어보니 쓰고(쌉싸롬하고 향긋한 맛이 아니라) 뻣뻣하고 질기다. 푸성귀였을 때는 사각사각 했는데 물기가 빠져 질겨졌다. 시어지면 좀 나아질까 싶어 날씨가 푹푹 찌는데도 실온에 이틀을 방치해 두었다. 그리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 당분간 잊기로 했다.

 

 

담은 지 보름 쯤 지난 엊그제 꺼내 먹어 보았다. 맛이 있다. 약간 뻣뻣한 느낌은 들어도 쌉싸래한 것이 고들빼기김치만큼 입맛이 돌게 한다. 실온에 방치를 했어도 억지로 익힌 맛이나 시큼하지 않았다. 이제 식구들한테 검증을 받아야 한다. 식탁에 내 놓으니 따끈한 밥 위에 얹어 잘 먹는다. 입맛 까다로운 큰딸도 맛있단다. 이렇게 한때 처치곤란을 느꼈던 적치커리가 우리 집 밥상에서 대우받는 음식으로 재탄생 되었다.


태그:#적치커리김치, #주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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