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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 소년병들이 7일 오후 국가보훈처 앞에서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달라"는 시위를 벌였다.
 한국전쟁 참전 소년병들이 7일 오후 국가보훈처 앞에서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달라"는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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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방부는 '6·25 참전 소년·소녀지원병'(약칭 '소년·소녀병')의 실체를 공식 인정했다. 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9년만의 '사건'이었다.

국방부의 규정에 따르면, '소년·소녀병'이란 '18세 미만의 병역 의무가 없는 자로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국군·국제연합군 또는 전투경찰대에 지원·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하고 제대한 자'를 가리킨다.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고 '병적표'가 존재하는 소년·소녀병의 규모는 1만4400여 명에 이른다.

특히 '정권 실세'로 불리는 박영준 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재오 현 특임장관이 각각 국무총리실 차장과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소년·소녀병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재오 장관은 지난 2월 소년·소녀병들을 직접 만나 "어린 나이에 나라를 구하겠다고 전장에 뛰어든 여러분이야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소년·소녀병의 '실체'만 인정받았을 뿐 '진전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위로금 명목의 참전명예수당(7만 원)만 지금도 나올 뿐이다. 소년·소녀병들은 줄기차게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정부도 국회도 이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이지 않았다. 

백발의 소년병들, 국가보훈처 앞에서 피켓 들고 구호 외치고...

결국 백발의 소년·소녀병들이 처음으로 국가기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1996년부터 '소년·소녀병 문제'를 제기해온 '6·25참전 소년병 전우회'(회장 박태승, 소년병 전우회)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소년·소녀병 약 200명과 함께 7일 오후 국가보훈처 앞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 참석자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있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국가보훈처 앞에서는 "미성년자들을 전쟁터로 보낸 국가는 보상하라" "소년병 때 흘린 피값 죽기 전에 받아보자" "소년병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존재했겠나" 등의 구호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로 시작하는 노래 '전우여 잘 있거라'를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에서 "병역의무가 없는데도 자의·타의에 의해 1만4000여 명이 국군에 입대해 군번을 부여받고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시작으로 전·사상자의 빈자리를 메워가며 휴전 때까지 싸웠다"며 "그러나 비군인에게는 특별기여로 서훈과 국가유공자 예우로 연금을 지급하면서 3년을 전선에 묶어두고 국토를 수호한 소년병들에게는 신체상 이상이 없어 예우를 못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당시 성숙치도 못하고 감상적인 몽상의 나이에 져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목숨을 걸고 국가수호를 위해 전장에서 남다른 공헌과 희생을 했다"며 "신체·거주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제한받아 배움의 적기를 놓쳐 제대 후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책임이 우리의 잘못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들은 "'소년·소녀병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란 한 마디가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혀 있던 우리를 알아봐 주는 것 같아 감격했다"며 "국회에 발의된 법률안(국가유공자법 개정안) 통과로 형평을 맞추고 지속적 예우가 있어야 하며 특별법에 의한 보상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살려 값진 국가안보와 애국심으로 승화시켜 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은 "늙은 소년·소녀병들은 인생 80을 목전에 두고 앞다투어 떠나고 있는데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며 "위기에 처한 나라 위해 전쟁에 뛰어든 애국심은 간 곳 없이 어린 것을 전장에 내몰았다는 도덕성에 함몰되어 덮어둔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당시 3개 사단에 몸담으며 전투를 치렀던 김창준(경북 상주 거주)씨는 "열대여섯살 학생을 낙동강 전투 총알받이로 참전시켜놓고 보상하나 없으니 참으로 억울하다"며 "정부가 이렇게 무관심해도 되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씨는 "당시 이장이나 반장하던 집들의 애들은 징집을 안 당했고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만 징집됐다"며 "정부는 '지원병'이라고 하지만 지원한 게 아니라 피난길에 무조건 잡아갔다"고 말했다.

한편 소년·소녀병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은 김소남 한나라당 의원 발의로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률심사소위(위원장 이사철 의원)에 올라가 있다.

이날 국가보훈처 앞 집회가 끝난 뒤 박태승 회장과 윤한수 사무총장 등 소년병 전우회 간부들은 이사철 위원장을 만나 법률개정안 통과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병역의무도 없는데도 전쟁에 참가한 소년·소녀병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해줘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태그:#소년·소녀병, #소년병 전우회, #박태승, #김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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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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