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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어느 가을날, 학력고사 100일을 앞둔 고3 여고생들이 학창 시절 마지막 가을소풍을 떠나는 버스 안이었다. 관광버스 통로에 걸터앉은 반장이 통기타를 매고 선창한다.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담다디다담 담다디담~"

 

곧 닥칠 큰 시험을 앞둔 터라 무릎 위에서 단어장을 놓지 못했던 단발머리 여고생들은 어느덧 한 목소리로 버스가 떠내려가라 악을 쓰며 노랠 부른다. 세 시간 자면 붙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3당4락의 공포 속에서 나 아니면 모두 경쟁자요 적이었지만, 이상은의 담다디를 함께 부를 땐 친구였고 동지였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여고생들은 어느덧 중년의 아줌마가 됐고, 아이들의 수능을 걱정하며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좋다는 과외선생 추천 받느라 커피 값 아까운 줄 모른다. 그들에게 '담다디'는 이미 추억 속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나도 광팬이었다. 교복 없이 학교를 다녔던 우리는 이상은 스타일을 고집했고 그의 춤을 따라 췄다. 우리 세대의 아이돌 스타.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렜다. 잘 나갈 때 확 접고 유학을 떠난 이상은, 적어도 그는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가수와 기자... 그리고 20년

 

그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노랠 부르면서 일본과 뉴욕, 런던 등 세계를 돌고 그 나라의 문화예술을 국내에 전파하는 동안, 나는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고 평범한 아줌마요, 생계형 기자로 살고 있다.

 

육아와 가사, 노동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서 왕년의 그를 만나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마치 전업주부로 살며 친구들에게 김치 냄새 풍길까 봐 동창생을 만날 때면 갖고 있는 향수 중 제일 진한 향을 뿌린다는 내 친구 정희처럼 나도 그 앞에선 초라하지 않을까 적이 걱정됐다.

 

예나 지금이나 몸매는 여전했다. 목소리는 쿨 했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처음부터 그는 동갑내기란 걸 직감한 듯 말했다. "나보다 한두 살 아래신가요?" 살짝 기분이 좋았다. 두개골 뒤편에 빼곡히 자리잡은 흰 머리칼을 못 본 게 확실했다.

 

태풍 곤파스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9월의 첫날, 나는 그렇게 서울 여의도 MBC 본사 3층 커피숍에서 가수 이상은(41)씨와 마주 앉았다.    

 

- 매일 오전 MBC 라디오(이상은의 골든디스크, MBC FM4U 91.9)로 대중과 만나고 계신데, 어떠세요?

"올 봄 김기덕 선배 뒤에 바통을 이어받아 솔직히 부담스러웠어요. 특히 MBC FM 라디오는 항상 틀어놓고 계시는 불특정 다수가 있기 때문에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나 초기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다른 데서는 듣기 힘든, 약간 어려운 맛은 있어도, 좋은 음악을 틀어주는 방송으로 자리잡고 있지요. 그간 '재야인사'로 살았는데  메인 스트림에 딱 던져진 느낌이랄까. 석 달간 잠을 잘 못 잤어요. 쉬워 보이지만 사실 눈물로 밤을 지새운 일도 많았답니다.(웃음)"

 

- 라디오라는 매체가 갖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TV보다 훨씬 정감 있는...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살았을 때 느낀 건대, 어딜 가나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왔어요. 그때 참 행복했지요. 요즈음 일본의 라디오가 황폐해졌다고들 하는데 내가 살 땐 괜찮았습니다. 하하. 요샌 토크쇼 분위기, 만담...

 

사실 <이상은의 골든디스크> 프로를 맡을까 말까 고민했었어요. 난 만담에 능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라면 맡아보겠다고 했죠. 점차 황무지로 변해가는 음악시장에 뭔가 좋은 음악을 소개한다면 그 사명감을 가지고 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골든디스크> 프로를 맡은 국장님(PD)께서 '음악방송의 부활'을 꿈꾼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고보니 음악방송의 부활은 멀고도 험한 길이네요. 하하.

 

좋은 음악을 위한 일종의 실험이 부드러운 혁명으로 이어지려면 하루 이틀 갖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진행하는 이 음악 프로가 선순환되어 음악시장의 활성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시도하려는 자세는 의미 있는 것인 것 같아요. 일본도, 우리도, 지금은 음악시장 자체가 무너졌으니까요. 마치 환경이 파괴된 다음에 어떻게든 예전의 환경을 살려보려고 노력하는, 그런 마음 같죠? 후훗."

 

밥맛 떨어지는 뉴스 대신 고품격 음악프로?

 

- 가수 김창환씨가 아침에 TV를 켜면 밥맛 떨어지는 뉴스들이 많이 나오는데 차라리 MBC-TV <라라라> 같은 고품격 음악프로를 틀어주면 어떻겠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동의하세요?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가 시장을 움직여 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마치 아이들이 건강에 필요한 밥은 잘 안 먹고, 해로운 사탕만 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사탕은 몸에 안 좋으니 먹으면 안 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세상이 지속되면 문제점이나 병폐는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심각하게 망가져야 정신 차리려나.(웃음)"

 

- 최근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게 '방송사 걸그룹 가슴단속'이잖아요. 벗어라, 벗어라 해놓고 정작 벗으니 규제하겠다고 나선 격이라는 비판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멋이라는 게 결국 문화를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보는데요. 아날로그적으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걸그룹이 섹시한 옷을 입고 춤추는 걸 멋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내 생각은, 멋의 종류가 너무 적다는 점입니다. 이야, 이거 정말 멋있구나, 그 멋의 맛을 알아야 하는데 우린 멋의 맛을 알 수 있는 멋의 종류가 많지 않아요. 또 어른들이 멋의 맛을 알도록 하지 않았지요. 나는 펑크를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외국에 나가서 펑크 문화의 맛을 봤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어른들은 여러 포인트에서 멋의 맛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규격화된 멋을 보여주고 그것만 멋있다고 해왔지요. 그러니 아이들은 그게 멋이 없다고 전쟁을 하는 격 아닐까요. 그런데 나는 이 둘 모두 의미 없는 전쟁이라고 봐요. 진정한 대화나 소통은 없는.

 

문제의 핵심은 멋이 다양한 것이라는 걸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모 아니면 도. 둘밖에 없는 건 멋있지 않아요. 언젠가 모두 콱 부딪쳐 팡 산산조각 깨져 버리는 건 어떨까요. 하하. 시장을 장악하려는 쓸데 없는 생각은 버리고, 다양한 멋의 맛을 알게 해주는 단계로 우리 문화의 수준이 좀 넘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문화다양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어른들의 문제로 이해하면 될까요?

"제 나이에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유감이지요. 결국 문화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즐길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결국 즐길 문화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추하고 창피한 걸로 나타나는 거라고 봅니다. 창피한 줄 알아야죠."

 

작가주의 음악 그리고 홍대 문화

 

- 3년 만에 14집 앨범을 내셨는데요. 이 앨범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 이번 음반이 나왔을 때 관심을 보여준 얼리 어답터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숫자가 좀 더 많았으면 좋으련만 소수라...(웃음)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으려고 하고, 최소한 문화선진국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그 좋은 면을 배우고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반가워요. 나는 그 무리에 속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들도 나도 서로 새로운 문화를 주고받고 하지요.

 

기성세대와 10대 문화 이외에서 새롭게 뭔가 대안을 찾는 제3의 문화가 재미있다는 걸 알리고 알려가는 과정에 있는데요.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에서도, 팝도 가요도 아닌 제3의 음악들을 간혹 틀어요. 새로운 문화가 좀 더 대중들에게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제3의 문화는 어떤 문화를 말하는 건가요?

"가슴골 노출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기성세대겠지요? 걸그룹을 좋아하는 것은 10대일 테고. 기성세대와 10대 사이에 끼여 있는 중간세대들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30~40대는 왜 아무 소리 못하고 사는 건지. 너무 조용하지 않아요?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질려 버린 것들에 대해 얘기를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선진국은 주로 30대의 입김이 센데, 우리나라는 10대와 50대 이상의 입김이 세요. 젊은 사람들이 맥을 못 추는 나라? 한 국가의 중추세대가 아무 소리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요, 관망하는 건가, 아니면 때를 기다리는 걸까요. 10대와 50대 이상의 세상에서 20·30·40세대가 아무 말 없이 지내는 게 문제 같아요."

 

- 10월에 공연하신다면서요. 콘셉트는 뭐예요? 2009년처럼 와인파티 하시나요?

"내가 워낙 한 분야에만 열중하는 '오타쿠'적이라. 홍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의 콘서트가 될 거예요.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게 될 텐데. 물론 소수를 대상으로 해요. 20~30대 퓨어(순수)한 음악팬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을 할 거예요. 일반인? 그들을 배려할 때도 있지만 작가주의를 내세워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3040세대는 이상은 하면 가장 먼저 '담다디'를 떠올립니다. 히트 친 빅스타였는데 돌연 그 판을 떠났어요. 왜 그러셨어요?

"열아홉 살 때인데요. 보기에는 룰루랄라 신나게 보이지만 그 자리는 정말 힘든 자리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내가 그걸 어떻게 견뎠나 싶어요. 지금이야 나이가 마흔이 되고 보니 나름 헤쳐 가는 지혜도 생기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금 아이돌 가수들처럼 나도 그땐 달려가 녹화해야지, 인터뷰해야지, 하루하루 그건 정말 신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었어요. 훌쩍 그 판을 떠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망가지거나 어디 고장 나서 정신적으로 감당을 못해 이상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웃음) 솔직히 그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행복이 제일 중요한 가치 아닌가요? 기질이 자유로운 사람은 억만금을 준다 해도 못하는 일이 있고, 또 억만금을 주면 행복하지 않아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전자예요. 그렇게 훌쩍 떠난 뉴욕에서의 생활은 무척 행복했어요. 돈을 무지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재미가 있고 행복해야 또 보람이 있는 것 아닌가요? 한동안 밖에 있다가 도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조금씩 다시 알아주고, 벌이도 조금씩 나아지는 기쁨이 있습디다. 하하.

 

틴에이저는 스타가 되면 솜사탕처럼 달콤한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달콤한 꿈을 꾸어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난 어린 나이에 일찍 깨달은 게지요."

 

"틴에이저 스타였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 최진실씨 같은 불행한 경우도 있지만, 오래도록 사랑받는 대중스타로 살겠다는 욕심이나 탐욕 이런 건 없었나요?

"나는 기독교 신자인데, 성경에 다 나와 있잖아요.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하.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당부. 모든 가정의 부모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나요?

 

얼마 전 제가 우리 국장님(PD)께 이런 말을 했어요. 아, 우리 프로 듣고 대기업이 투자를 해서 음악 전문 방송국을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자유로운 영혼들에게 대기업은 상당히 힘들다고 하시더군요. 비인간적이고 돈이 안 벌리면 안 되고. 만일 내가 어떤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치면? 아우,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담다디가 대히트를 친 건 내가 대기업에 입사한 것과 똑같았다고 비교할 수 있어요. 너무너무 바빴던.... 그런 일정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인기스타가 돼서 수억씩 벌어들이는 것이고. 나는 실력이 부족해서... 너무 자유로워서... 솔직히 재미없었어요. 스타로 사는 게 재밌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은데, 진짜 강한 사람이 아니면 힘들 거예요. 나는 역시 대기업 체질은 아니구나, 초상업적 상황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상위 1%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 빅 스타의 자리를 스스로 놓은 뒤 인디문화로 새롭게 만나는 대중은 어때요? 더 좋아요?

"예전에는 어린 친구들이 학알에 뻥튀기를 보내줬지요. 하하. 물론 인디문화로 만나는 친구들은 그런 것 안 줍니다. (웃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그들과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느껴요. 만족감이 크고 아주 행복합니다.

 

그들은 내가 뭘 원하는지 아니까 라디오 프로에서도 그 방향으로 '펌프질'을 해준다고 해야 할까? 좋은 음악을 던져주고, 아주 훌륭한 글을 직접 남겨주지요. 뭐랄까, 톡 톡 톡 쳐서 그 방향으로 가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있어요."

 

한국의 저항 뮤지션은 왜 U2가 되지 못했을까

 

- 책도 쓰셨어요. <뉴욕에서>는 어떤 책이에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의 뉴욕이 너무 궁금했어요. 사실 제가 부시 집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하. 그런데, 오바마 취임식 때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거예요. 대통령 취임식이 감동적이었던 건 처음이었지요. 다시 미국이 당기네~ 했습니다. 서점에 가면 오바마가 좋아하는 책에 손이 갔고, 읽어 보면 감동적이었어요. 또 어떤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을 하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쓴 책 <블랙 라이크 미>도 굉장히 찡했습니다.

 

지금의 뉴욕엔 인디문화가 황홀하게 꽃피고 있었어요. 오바마의 영향이죠. 뉴욕이 가진 양면성이 있잖아요. <섹스 앤 더 시티>처럼 돈과 부, 패션을 상징하는 뉴욕이 있는가 하면 바스키아의 그림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디 워홀, 존 레논, 오노 요코, 윌리엄즈 버그의 가난한 아티스트들, 가난한 예술가들을 상징하는 뉴욕의 정신....

 

공화당이 우세할 때와 민주당이 우세할 때 각각 정권에 따라 문화도 달라지게 마련인데, 지금 뉴욕은 인디의 전성시대예요. 첼시에 있는 전시장이나 뮤지엄도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인도처럼 제3세계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곳이 많더군요.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책에 적어놓고 싶었어요."

 

- 한국의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의 인디문화를 비교한다면 좀 어떠세요?

"정권이 바뀌면 문화의 취향도 바뀌는 건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게 성숙한 태도죠. 그저 답답한 게 있다면 지금의 뉴욕을 가보라고, 지금 너무나 재밌는 게 많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 같은 세대가 관심 있어 하는 대안적이고 문화적인 것들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내가 10대와 소통하는 건 아니니까. 50대?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마치 30대의 대변인처럼 돼 버렸는데 물론 나는 X세대죠. 어마어마한 반항아였고, 안 보이지만 지금도 품고 있는 반항적인 기질이 있죠. 어머어머한 니르바나 세대였고, 탈상업주의였습니다. 다시 한 번 그런 문화혁명이 일어나면 좋으련만. 하하."

 

- 이상은씨와 같은 세대는 거리에서 화염병 투척하는 이들이 많았잖아요. 그 시절 한국의 현실이... 그들과 비교하자면 이상은씨는 제도권 안에서 좀 다른 생활을 했던 것 아닌가요.

"우선 나는 데모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일본과 미국의 학생운동 세대는 재미있는 문화를 남겼는데, 우리는 그 부분에서 실패한 것 아닌가 싶어요. 존 레논, 아일랜드 출신 록그룹 U2, 아이티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앨범을 냈다가 영국 싱글차트에서 1위를 한 유명 록밴드 R.E.M이 그 꽃들이지요.

 

학생운동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게 상업적으로 돈도 되며 그 세대를 상징하는 문화로도 성장하는, 서양의 경우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어디선가 멈춰 버린 느낌이랄까요. 물론 우리도 커가고 있지만, 진짜 영향력 있는 U2 등은 사실 그게 문화 비즈니스가 되고 있으니까요."

 

- 우리의 경우엔 어디서 멈췄다고 보시나요?

"게임이 더티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음악을 통해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온 U2의 보컬 보노 혼자 똑똑해서 그 그룹이 그런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들은 해치지 말아야겠다 뭐 이런 공감대가 그들 사회에 형성됐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아티스트들을 해쳐 왔어요. 음악을 하는 순결한 영혼을 해치는 것은 페어 플레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해치고 싶은 아티스트들이었더라도 한국 문화의 까치밥 차원에서 좀 남겨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들국화도 보노가 될 수 있었고, 어떤 날(조동익, 이병우)도 R.E.M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우린 굉장히 폭력적인 시대를 거쳐 왔다고 생각해요."

 

꿈을 꾸는 당신이여, 떠나라!

 

- 영국 런던의 문화예술과 인디문화에 관한 여행서가 또 나온다고 들었어요.

"그 책은 저와 제 동생들 얘기예요. 올 추석쯤 발간될 텐데. 홍대 근처 옥탑방에 살면서 그 안에 작업실을 만들고 어떻게든 인디문화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데리고 런던에 가서 겪은 화학 변화를 기록한 책이에요. 그냥 그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싶었어요. 실제 함께 영국에 갔던 이 가운데는 지금 베를린에서 사는 친구도 있어요. 하하. 옥탑방에 살며 가난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 모두 떠나라! 말하고 싶네요."

 

- 떠나서 뭘 좀 보라고 얘기하고 싶으세요?.

"일단 굉장히 자유로워요. 젊은 사람들에 대해 관대하고, 뭘 하든 그냥 내버려두니까요. 그 정도의 내공은 되는 나라들이죠. 그런데, 정말 그걸 가르쳐 줘야 알까요?"

 

- 연애소설 얘기는 뭐예요?

"한 출판사에서 연애소설을 써달라는 제안이 왔고 현재 고민 중이에요. 연애소설...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연애소설에 국한하지 않으려고 해요. 연애소설인 줄 알고 다 읽었는데 읽고 나니 딴 얘기더라... 뭐 이런 게 재밌지 않을까 상상 중입니다. 하하." 

 

- 연애소설은 쓰게 됐지만 정작 연애는 많이 못했다는 기사가 있더라구요. 아직 미혼이시죠? 그런데 이상은씨는 연애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나라의 홍대 앞 문화라든가 뭐 그런 것? 햇빛 못 보고 자란 콩나물처럼 비실비실했던 것들이 조금씩 잘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즐겁고 좋아요. 재밌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나름 행복하답니다."

 

- 인디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뉴욕처럼 잘 발달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런 걸 소개하는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털 같은 곳에 잘 정리돼 있다면, 인디정보를 알려면 어디로 가면 돼! 뭐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문화신문' 같은 형태여도 좋고 온라인이어도 좋은데, 영국에는 NME라는 음악잡지가 있어요. <가디언>과 연계돼 있는데, 음악상도 줘요. 인디음악과 록음악을 활성화하는 데 상당히 큰 도움을 주는 매체지요.

 

핑크 플로이드부터 최근 인디 밴드들까지 총망라해서 소개하고 분석하는 언론인데요. 대중음악이 하나의 매체로 아카이브화 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형식은 대형 마트인데 내용은 인디 문화인 뭐 그런 매체죠. 우리도 누가 정리해서 정돈을 잘 해주면 좋겠는데... 이제 우리도 슬슬 그럴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진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 대중음악과 인디문화 발전에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긴가요?

"신문의 역할은 너무나 커요. 우리 음악을 영국 같은 유럽식으로 볼 것인지, 미국식으로 볼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긴 한데, 미국의 그래미상과 달리 우리도 영국식으로 얼터너티브 음악에 대해 언론이 상을 주는 것도 고민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NME가 그래미상과는 다르지만 유럽권에서 얼터너티브 음악을 다루는 아주 권위 있는 매체니까. 롤링스톤즈, 밥 딜런 그들을 다루는 계보를 이어서 최근 블록파티같은 친구들까지 아주 다양하게 다뤄줘요. 어딜 가서 항상 음악신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쉽지 않네요."

 

- 지난해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무대에 올라 큰 박수를 받으셨습니다.

"음... 아무 때나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내 차례가 돌아올 때 말하는 것도 어른스러운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서 나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에게 기회가 오면 그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역사적으로 저쪽에 발언권이 있는 시대니까 좋게 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일단 듣는 것도 좋은 태도 아닐까요? 지금까지는 계속 듣고 있는 중이에요."

 

 

"역사적으로 저쪽에 발언권 있는 시대... 듣고 있는 중이에요"

 

- 이명박 정부 이후 600명의 음악인이 함께 하는 '탐욕과 통제의 시대를 거스르는 대한민국 음악인 선언'에도 참여하셨던데요.

"음... 내가 진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 누가 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내 양심에 비춰볼 때 이건 잘못됐어, 이건 너무해, 이럴 때 움직이죠. 나는 자동 인형처럼 되는 건 싫어요. 좌익 쪽도 너무 기계처럼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솔직히 답이 정해진 것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좌익, 우익 편 가르는 것보다는 양심에 비춰 내게서 눈물이 날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움직입니다. 너무 시끄러운 것은 시끄러운 거고."

 

- 한국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상은씨는 세계시민주의자로 보면 되나요.

"내 삶의 기준을 한국이나 현세대에 맞출 생각은 전혀 없어요. 언젠가 <자본론>이 국내에서 해금됐다는 말을 듣고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그 책의 추천사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부탁을 받았는데 냉큼 썼지요. 내가 혹여 그 책에 추천사를 쓰면 최소한 이상한 책으로 분류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재밌다고 하면 사람들도 그냥 재밌다고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이상한 느낌은 갖지 않고. 일종의 편견 제거용? 하하. 문화예술이 발달된 외국에 갈 때마다 눈물이 철철 흐르도록 생기던 질투와 자괴감 이런 것들이 조금은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만일 서울이 파리였다면 한 싱어송라이터가 <자본론>의 추천사 정도 쓰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비록 그녀가 상당히 패셔너블할지라도 말이에요. 그냥 문화예술인으로서 멋있다고 생각할 텐데, 뭐 그런 수준으로 한국의 문화가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외국에 나가서 느꼈던 한맺힘, 그걸 풀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면 깊은 슬픔이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한국 대중문화의 현실은 여전히 걸그룹들의 가슴골 얘기나 나오는 수준이죠. 좀 더 파리스럽게 되는 길에 벽돌 한 장 놓는 느낌으로 살고 있습니다."


태그:#이상은, #담다디, #골든디스크, #라라라, #인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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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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