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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서울 명동에 있는 자그마한 M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신도가 200명 정도였고, 청년 회원은 20명이 채 안 되었다. 그때 나는 K대학 졸업반으로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그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교회 청년회에는 여자 반 남자 반이었다. 조금 운동권(?) 냄새가 나는 교회라 청년들의 옷차림은 다들 수수했다. 그런데 강남 X날나리 같이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 회원이 한 명 있었다. 반쯤은 공중부양한 듯 튀는 말투에 지독히 발칙한 행동에, 저런 애가 왜 이런 교회를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미움이 사랑의 시작이었다. 대하면 대할수록 호기심이 생기고 맘에 들었다. 날씬하다 못해 앙상하기까지 한 몸매, 덧니에다 별로 이쁘지 않은 얼굴에 도드라지지 않은 가슴, 무엇이 나를 그녀에게 빨려 들게 했는지 나도 모른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같이 나누다 보니 보기와는 달리 그녀는 속이 깊었고,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더 끌리게 됐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교회 친구들 말로는 한 해 전 성탄절에 교회에 같이 왔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다니는 K대학 S학과 한 학년 후배 남학생이었다.

당시 학과의 한 학년 정원이 200명이었고, 그녀를 만나기 전에 친하진 않았지만 이미 알고 지내던 후배였다. 그녀의 애인인 후배 녀석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다. 그녀는 일찌감치 졸업 후 일본계 무역회사에 취업하고 있었다. 그녀는 곧 결혼을 해야 만하는 나이였다. 당시 나로 말하면 아직 졸업도 못한 취업 준비생으로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러던 어느날 난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래선 안 된다고 내 안의 도덕은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후배의 애인에게 작업을 거는 패륜(?)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적기도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말이 잘 통했다. 우리는 몰래 인사동과 평창동, 영화관으로 데이트를 했다. 그러다 밥을 같이 먹다가, 난 "나 너 좋아한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물론 그녀는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무 답도 듣지 못한 채 헤어졌다.

나는 C중소기업에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는, 교회를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눈치채지 않게 그녀에게 꾸준히 안부 전화를 했다. 가끔 만나기도 했다. 그녀도 처음엔 어려워했지만, 나중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그녀가 문제가 아니었다. C기업에 들어오기전에, 내가 목표로 한 언론사에 떨어진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휘청거렸다. 그리고 작은 기업의 직원이란 모습으로는 그녀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몇 달 있지 않아, 나는 다니던 C기업에서 S대기업에 특채됐고, 친한 남자 친구 몇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E대 앞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즈음 말 못할 큰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구를 책임질 자신이 서질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사귀자고 했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말이었다. 난 별 변명도 못한 채, 내 상황이 널 사귈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그때도 나는 그녀는 좋았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어둠이 깔린 거리에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근처의 그녀 집에 바라다 주지 않은 채 돌아섰다.

나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과도 소식을 끊고, 교회 다니는 것도 관두었다. 간간히 그녀가 나의 소식을 수소문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느날 어찌 알았는지 내 이메일로 그녀로부터 메일이 왔다.

만약 이번에도 연락을 하지 않으면 오빠를 영원히 보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난 연락하지 않았다. 3개월 후 교회청년회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교회 회원들의 축하 댓글들도 읽었다. 결혼 상대가 그 후배였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별로 알고 싶지 않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버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사람은 말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의 힘 앞에서 헤어날 수 없는 때도 있다는 것을, 지금의 그녀는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난 정말 헤어지는 순간에도, 헤어진 후에도 줄곧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노래말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도 있나 보다.

덧붙이는 글 | 잘못된 만남 응모글



태그:#내가사랑한그녀, #잘못된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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